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람살라에서 간간히 기사를 보내는 이의 글을 통해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됐다. 그가 가족이 있었고 가족들도 그 주변에 살고 있었으며 죽어서도 무심했다는 이야기…
그를 처음 본 것은 약 20여 년 전일 것이다.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느라 알지 못했다. 봤으나 보지 못했고 지금이나 그때나 나의 삶과는 무관했을 뿐이다.
그에 대해 궁금해진 것은 몇 달을 다람살라에 머물며 일을 하던 때였다. 다람살라에서 가장 복잡한 시장통 뒤편 사원 옆의 철망으로 만든 상자가 그의 거처였다. 사람이 살기엔 기괴하고, 우리나라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개 사육장이거나 다람살라 뒷길의 고기간의 그것과도 닮은 모습이었다.
그는 당시에 아주 늙어서 줄어들고 줄어들어 소년과도 같은 몸집이었다. 늘 웅크려 자신의 거처에 앉아있었다. 혹자는 삼십여 년 전에도 그를 보았다고 한다. 그때도 같은 모습이었다고 했다. 거지들의 존경과 공양을 받는 이라 흔히 거지들의 왕이라 불렸다. 거지들의 두목을 뜻하는 거지왕초와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처음 그의 자리는 시장통 사원의 뒷편에 있었으나 그곳에 큰 상점을 짓느라 위치를 옮기고 쇠로 만든 기괴한 처소도 만들어주었단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티베트 상인들이 간간히 먹을 것을 전해주었다. 나는 근처 야채가게에서 바나나 한 손을 사올 때면 몇 개씩 떼서 주곤 했다. 먹을 것을 주어도 그는 아무런 말,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 마치 바위처럼 정물처럼 원래 있던 거리의 시설물인 듯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람살라에는 유독 거지들이 많았다. 그곳엔 늘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달라이 라마가 있는 곳이라 불교가 가르치는 자비심에 잠시나마 젖어있었고, 무엇보다 돈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거지들은 티베트 축제가 있을 때면 전국에서 몰려든다고 했다. 이른 새벽 사원을 가는 길에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거지들도 보았다. 남들 보다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란다.
거지들의 사정이란 이곳이나 그곳이나 거의 비슷했다. 구걸을 위해 안고 다니는 아이를 빌려주는 이들도 있다고 했고, 돈은 필요 없다며 아이 먹을 우유나 사달라는 어미도 있었다. 물론 우유를 사주면 다른 가게에 팔아 넘겼다.
한 거지가 구걸에 성공하면 다른 거지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평등을 강요했고, 자신에게 적선하지 않는 차별을 항의했다. 인도 거지들의 특징은 그 턱 없는 당당함에 있었다. 자신들이 있어 금생에 선을 쌓았으니 고마워하라는 터무니 없는 논리도 있었다. 구걸을 강요하다 실패하면 사기를 치려 하고 그 마저 여의치 않으면 강탈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걸인은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부끄러움도 주저함도 없었다. 한닢의 동전이거나 한푼의 돈을 위해서 필요한 비굴한 표정과 사악한 심정과 표독한 몸짓을 그들은 익히고 있었다.
산 아래 거지마을이 있고 어려서부터 거지로 키우기 위해 먼곳에서 유괴를 하고 아이를 사고 팔며 다리를 부러뜨리고… 온갓 이야기들이 들렸다. 그것은 이 땅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할일 없는 서구의 여행자는 몇 년 동안 다람살라 거지들의 족보를 만든 일도 있었다. 그만큼 사연도 많고 이야기도 많았다.
티베트 승려들이나 망명자들 중에도 비슷한 이들이 있었다. 사원에 들른 이에게 병을 가장하여 약값을 달라거나 한적한 사원길에서 당당히 적선을 요구하거나 가짜 해시시를 팔며 강탈을 일삼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온갖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며 사는 곳이 세상이니 그저 그러려니 할만한 일이다.
시장통의 노인은 구걸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를 그냥 지키고만 있었다. 거지들은 크게 돈을 많이 얻은 날이면 그에게 먹을 것을 사다 주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은 커녕 표정 조차 변치 않았다.
우리들은 입은 옷에, 생긴 모습에, 사는 곳에 따라 사람을 분별하지만 그에겐 그런 기준이나 판단 조차 미치지 못했다. 스님들도 간혹 먹을 것을 가져다 주기도 했고, 돈을 놓고 가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돈이란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일 뿐이었다. 그의 거처를 지날 때면 언제나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성스럽다 하고 어떤 것을 속되다고 할까? 그의 거지 같은 모습은 성스러움의 표현일까 속된 모습일까. 성과 속의 분별은 본디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가족이 있으면서 그를 방치했다고 분노했다. 그의 모습에서 처참한 속된 처지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에게 가족은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행적은 수행이랄 것도 없고, 구걸이라 이름 붙일 바도 없었다.
출가승을 지칭하는 비구(比丘, biksu)라는 말은 본디 ‘구걸하는 이’라는 뜻이다. 역경사들은 걸사(乞士)라 옮겼으니 우리말로는 거지이다. 빌어 먹는데도 법도가 있다. 속이면 사기이고 빼앗으면 강탈이다. 불교의 성자를 뜻하는 아라한(阿羅漢, arhat) 또는 나한은 '빌어 먹을만한 이'라는 뜻이다. 응공(應貢)이란 말의 원뜻이다.
얼마 전, 쓰던 책 때문에 신종교의 고위인사와 만날 일이 있었다. 이야기 끝에 그는 한 마디 개탄을 남겼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던 시대가 이제는 세상이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며 덧붙인 그의 말은 “한국 종교의 위기는 종교가 생계형이 됐기 때문이다.”고 했다.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종교적 재앙들의 본질을 짚은 이야기다.
다람살라 시장통의 그 노인은 종교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거지였을까. 분명한 것은 그는 누구에게도 구걸하지 않았고 어떤 비굴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으며 누군가를 속인 바도 없었고 빼앗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평생 고요히 앉아 있었을 뿐이다. 성과 속은 겉에 있지 않고 우리들의 내면에 있다.
그자리에 앉아 계신 어르신 중도가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