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에 한번씩 얼굴이나 보고 소식이라도 나누자며 대학교 같은 과 친구들 몇몇이 만나는 모임에 가면 항상 즐겁고 이야기가 많다.
두어달 전 한식집에서 만날 때도 그랬다. 미리온 친구들끼리 사는 이야기며 아픈 친구 소식으로 걱정들을 하다가 아이들 이야기로 들어가고 있는데 지방으로 왔다 갔다 하는 친구가 들어 왔다.
이 친구는 "너희들 애들 얘기 하는 거니?"라며 앉자 마자 그렇지 않아도 아들에게 당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면서 자기 애기부터 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평소에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뭔가 있긴 있나보다 생각하고 "그래 그럼 네가 먼저 해"라며 한 친구가 얼른 양보를 해 주었다.
"얘 어제 나 우리집 큰놈한테 얼마나 열 받았는 줄 아니?"라며 친구는 지금도 분하다는 듯이 씩씩거렸다. 그 친구는 지방에 내려간 김에 부모님을 죄러 갔다가 어머니가 주시는 고추장 담근 단지며 반찬거리 등 짐을 잔뜩 가져오게 됐다는 것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집에까지 가져갈 일이 막막해진 그 친구는 집에 전화를 했다.
마침 집에 있던 아들이 받길래 "내일 엄마가 8시 기차 탈거야. 오후 한시쯤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짐이 좀 많다."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구는 서울역에 도착해서 아들이 차를 가지고 마중 나왔을 것으로 생각하고 역사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 보아도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초조하게 기다려도 아들이 나타나지 않자 화가 나기도 하고 혹시 차사고가 났나 싶어 걱정을 하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온 친구는 생각할수록 아들이 괘씸했다. "이놈 들어오기만 해봐라 . 나쁜 놈 같으니라고 .전화까지 했는데" 속으로 단단히 벼르고 있는데 12시가 되어서야 아이가 들어왔다. 집에 들어온 아들은 "어머니 잘 다녀 오셨어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만 할 뿐 서울역 마중건에 대해선 한마디 사과 없이 제 방으로 쑥 들어가더란 것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친구는 "너 도대체 어디 갔었어? 왜 오늘 차 가지고 서울역에 안 왔니? 내가 짐이 많다고 했잖아."라며 큰 소리로 아들에게 따졌다. 그랬더니 그 집 큰놈은 오히려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엄마가 언제 저에게 차 가지고 역에 나오라고 하셨어요?"라며 되묻더라는 것이다. 척하면 삼천리지 그걸 모른다니 도무지 내가 아이는 낳아서 버리고 태만 키웠나 싶어서 어이가 없더라는 것이다.
친구 말로는 요즈음 대학생들은 부모들이 공부하라고 떠받들어 키워서 저만 알고 철딱서니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받아서 거기 모인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도무지 자기 아들딸들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고 하였다.
귓청이 떠나가는 시끄러운 노래만 틀어놓지를 않나, 밤 10시는 초저녁인양 어기고, 새벽 1시 넘어 귀가하는 야행성인데다가 저년 늦게까지 남의 집에 전화하는 것, 그리고 늦잠자고 밥 안먹고 허둥지둥 학교가는 일 등 우리 세대의 상식에 비추어 보면 못마땅한 것이 한 둘이 아니라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떤 친구는 밤 늦게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잠도 못자게 밤중에 남의 집에 전화하느냐고 야단을 쳤다. 그랬더니 그 사건을 계기로 아들과의 대화가 끊어졌다. "엄마가 너무 교양없이 행동해서 친구에게 챙피하고 그런 엄마하고 말하기 싫다."는 아들의 항의를 받은 친구는 자신의 상식과 너무 다른 아들에게 충격을 받았다면서 역시 이해가 안되더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가족생활에 대한 과제물을 받아보면 많은 학생들이 부모와 대화가 안된다고 실토하고 있다. 다정할 것 같은 모녀 사이도 일상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외의 깊은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이런 현상들은 한마디로 부모 자식간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와는 다른 사회 경제적 여건속에서 자란 자식세대와 부모세대의 사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커다란 장벽이 가로 놓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산업화 정보화로 치닫고 있는 급변하는 사회의 물결을 타고 자란 자식세대는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 사고방식, 행동상태를 가진 신세대 신인간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단적인 예가 이들은 컴퓨터 세대라는 점이다. 입력하지 않으면 출력이 안되는 것이 컴퓨터의 특징이다. 이들은 부모 세대같이 눈치와 짐작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세대는 이미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가속되는 다양한 수준의 사회 변화속에서 어제의 부모의 경험과 지혜가 오늘의 자식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들은 변화와 새로운 정보에 어두울 수밖에 없고 감각이 둔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의사를 전달하고 대화하는 방식에서 또는 행동양식이 신세대와 엇물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네가 입력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출력이 되겠느냐"고. 그리고 컴퓨터 세대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는 또박또박 입력을 잘해야 된다고.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황윤정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