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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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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

 오래전 부터 꿈은 내게 있어 생활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 현상된 필름처럼 그날그날의 생각이나 행동의 단면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은 물론이고, 하루나 이틀 심지어는 한달 일년후의 시간 까지도 앞질러, 내가 해야할 일의 상태를 지시해 주곤 한다. 일상을 반영하는 지극히 정직한 그림자다. 달빛이나 정오의 볕에서 그림자가 그 길이나 폭의 변화를 달리하듯, 꿈은 늘 나의 사고행위에 따른 철저한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매일의 24시간은 언제고 색다른 장애물 경기로 와 대기하고 있다. 어느땐 뛰어 넘어야하고, 어느땐 낮은 포복으로 기어 빠져 나가야하고, 또 어느땐 기름 짜내듯 전신을 축소시켜 가시망을 뚫어야 할 경우가 있다.

 실패를 염두에 두지않고 과감히 뛰어들면, 다소의 상처가 남겨지는 결과라도 통쾌히 맞을 수가 있다. 하지만 지레 겁을 먹고 돌아서 무사한 몸으로 하루를 마무리 할때면, 상처보다 더 깊은 아픔이 부끄러움으로 남겨진다. 도전이 없는 생활은 죽은 시간이다. 자갈밭에 씨를 뿌리고 결실을 기다리는 일처럼 무의미 하다. 몸놀림이나 마음 놀림이 그저 단순한 반복 행위에 불과하고, 희망의 여지가 보여지지 않는다. 도전이라고 해서 뭐 꼭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상의 고정적인 틀에 대한 최소한의 변화나 개선, 그것을 꾀하려는 긍정적인 의지라 말하고 싶다. 그 의지가 스스로의 무질서와 안일에 묻혀 리듬을 타지 못하면, 하루는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새로운 각오와 계획으로 늘 다음날을 기대해 보지만, 거의는 부실공사로 끝나고 만다. 기초가 허술하니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반대로 의지가 신선한 탄력을 띄게되면 생활은 예상외의 발전을 가져온다. 생각이나 행동을 긍정적으로 몰아가다 보면 무한한 가능성이 용솟음 친다.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수시로 변화하는 걸 느끼게 된다. 뭐든 다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부추기다보면, 능력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자기 몫이 되어지곤 한다. 이렇게 해서 하루의 승패는 많은 날의 전망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서 늘 새롭고도 생소한 하루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순간의 포착이 일종의 두려움을 유발시켜 주기도 한다. 엉킴없이 순조롭게 풀어갈 수 있는 실타래를 만들어야 만들어야 한다는 긴장감이,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꿈은 일상의 대변자다. 낱낱한 움직임의 거짓없는 실상이다. 주어진 시간에서 치뤄낸 좌절이나 자신감이 그 자체로 끝나는게 아니고, 실물 그대로 찍혀 재현되고 있다. 그래 늘 괴로움이나 기쁨은 극치를 달리게 마련이다. 극치에서 맛보는 여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장되기 때문에, 어둠과 밝음은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게 된다. 한없는 퇴보가 아니면 한없는 발전, 둘 중의 하나다. 이것을 물론 일관된 현상이라 말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경우다. 이렇게 해서 나는 늘 일상의 양면성이 주는 동일성을 살고 있다. 그날 그날 나사의 조립을 정확히 해야만 안정된 휴식에 닿게된다. 방심하면 영락없이 허물어져 주저앉게 된다.

 바람 잦은 들판에서 만난 도깨비 바늘처럼, 나의 일상은 온통 흩어지고 부서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어진다. 이래서 항상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일상에 대한 책임과 꿈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져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루를 아니, 나 자신을 온전히 건사하지 못했을때 꿈으로 대신 가해지는 고통은 짐작을 불허할 정도로 심하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에서 오는 성취감 또한 가히 일품이다. 이래서 나는 어쩔 수없이 습관처럼 꿈에 매여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좋은 꿈을 꾸기위해 노력하다 보면, 하루는 어느새 신선한 리듬으로 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덕성여자 대학원 국문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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