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치유를 위한 부처님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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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치유를 위한 부처님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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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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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불교 새 물결
지난 호에서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치료를 위한 처방전으로 생각하고 치유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들여다 볼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불교공부를 하는 것이 마음치료를 위해서 치유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것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불교공부를 할 때 자기 마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만일 자기 마음을 가지고 하지 않는다면 그건 불교공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불교공부는 마음을 치료하는 처방전이기 때문이다.
상처 난 다리를 치료하겠다고 병원을 찾은 환자가 상처 난 다리를 보여주지 않은 채 치료해 달라고 하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자기문제, 탐욕, 고통, 괴로움을 외면한 채 불교를 공부하면, 불교가 보이지 않는다. 불교가 어려워진다. 불교는 온통 우리들의 탐욕, 과대망상, 무력감, 분노, 불안, 신경증, 편집증 등을 마주보고 그것을 통해서,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고통을 피해서 가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거름으로 만들고, 행복으로 변형시키는 길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간순간 탐욕하고 미워하고 무력해지고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마음과 함께 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마음을 외면하고 도리어 괴로운 마음을 피해가려는 도피처로 불교공부에 전념하게 될지도 모른다(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마음으로 불교에 입문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함께 가고 싶지 않은 괴로운 마음이지만, 그 마음을 피하지 말고 반드시 마주보아야 한다. 함께 가고 싶지 않지만 함께 가야 한다.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면하면 할수록 괴로운 마음은 온갖 모양과 형태를 바꾸어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탐욕이 분노로, 분노가 우울로 변한다. 무력감, 외로움, 불안, 두려움 등등 형태만 다를 뿐이지 결국은 같은 마음이다.

처방전은 처방전일 뿐, 그 마음을 직면하라
그러면 여기서 잠깐 마음치유를 위한 부처님의 처방전을 살펴보자. 처방전은 그런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일단 도망가지 말고 그 마음을 직면하라고 한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이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직면하라고 한다. 괴로운 마음과는 달리, 우리가 집착하고 매달리는 즐거운 마음을 붙잡지 못하는 것도 알고 보면 무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 더러는 무상 자체를 공부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처방전을 기억하고 외우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처방전은 그냥 처방전일 뿐이다. 너무 이해하기 힘들면 그냥 믿고 행하면 된다. 이해 없이 무조건 믿는 것은 옳지 않지만, 무상은 부처님께서 특별히 도장을 찍어서 공인하신 세 가지 가르침[삼법인(三法印)] 가운데 하나기 때문에 따져보지 않고 그냥 믿어도 된다.
고통스런 마음과 직면하는 것이 두렵지만, 언젠가는 변한다고 믿고도망가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들의 탐욕, 분노, 우울, 무력, 불안, 질투 등 고통스런 마음과 직면한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방전은 인정하라고 한다. 비판도 하지 말고 변명도 하지 말고 그냥 그 마음 그대로 수용하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신이 탐욕, 분노, 우울, 무력, 불안, 질투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더러는 거부감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리는 순간에 가졌던 행복, 사랑, 너그러움 등이 우리가 아니었듯이, 우리가 분노하고 좌절할 때 일어나는 미움, 질투, 무력증도 우리가 아니다. 즐거운 마음을 붙잡을 수 없듯이 고통스런 마음도 붙잡을 수 없다. 다만 고통이 즐거움보다 오래 우리 안에 머무는 것은, 즐거움은 붙잡으려고 하고 고통은 밀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차별하지 않고 그냥 수용하면, 고통도 즐거움도 그냥 순간순간 우리들을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함께 가라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 과대망상, 불안 등의 고통스런 마음들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그러한 마음들을 우리는 왜 수용하지 못하고 애써 거부하고 부정하려는 것일까? 처방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 미움, 질투가 곧 우리 자신인 줄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 마음이 불안해지면 불안이 곧 우리 자신인 줄 안다. 우리 마음이 분노하면 분노가 바로 우리 자신인 줄 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생각이 바로 우리 자신인 줄 알고 그것과 동일시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거부하고 변명하고 억압한다. 그것이 우리들 내면의 갈등을 초래하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게 된다. 그런 우리들에게 처방전은 탐욕하고 분노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가짜라고 가르친다. 진짜 우리는 부처라고 말한다. 자기가 어리석고 열등하고 무가치하고 못났다고 괴로워하는 우리들에게, 그게 진짜 우리가 아니고 진짜 우리는 부처라고 말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고 수용하라고 가르친다.
이번에는 이런 질문이 일어날 수 있겠다. 분노하고 탐욕하는 마음이 진짜 우리 자신이 아니라면 굳이 수용할 필요가 있냐고? 왜 수용해야 하냐고? 처방전은 말한다. 우리 마음에 찾아온 손님이니까. 우리는 부처니까 반가운 손님이든 반갑지 않은 손님이든 차별하지 않고 그냥 잘 대접해야 한다고.
이번에는 어떻게 수용하냐고, 묻고 싶을지 모르겠다. 날마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고통의 손님들(질투, 미움, 섭섭함, 무력함, 불안, 망상)을 어떻게 수용하는가?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처방전은 수용하기 전에 화해하는 법을 가르친다. 싸우지 말고 화해하라고. 분노나 우울의 손님과 화해하는 방법은 연민심을 내는 것이다. 분노와 탐욕으로 인해서 고통 받는 그 마음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평화와 행복, 기쁨이 가득해지라고.
불법을 따라가는 길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가는 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자주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에 내 마음도 함께 하고 있는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에 내 마음도 함께 가고 있는지, 마치 정다운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우리 마음과 함께 이야기하며 가야 한다. 그럴 때만이 불법은 우리들이 가는 길에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되어주고 아픔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 당분간 연재를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까운 날 다시 뵐 것을 약속드리면서,
항상 월간 「불광」 독자분들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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