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여, 소나무여, 언제나 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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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여, 소나무여, 언제나 푸른….
  • 관리자
  • 승인 2009.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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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매주 일요일 오후 텔례비전을 틀면 감동과 눈물을 주는 프로가 있다. 바로 우정의 무대의 '그리운 어머니' 프로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감동의 깊이는 덜해지지만 병사들의 붉어진 눈물을 보면 현실의 어머니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기간일 수도 있는 군대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그리움과 편안함으로 떠오를 것이다.

 또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으면 다른 모습의 어머니를 발견한다. 아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사랑은 마침내 모든 소외받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어머니로 다가간다. 여기서 우리는 강한 어머니를 보게 된다. 이렇게 어머니의 모습은 때로는 강하게 힘겨운 상황속에서는 그리움의 포근한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내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 엄마의 모습은 포근함 그 자체였다. 외아들에다 막내였던 나는 항상 보채고 다섯 살까지 젖을 빨았을 만큼 어머니는 가장 '만만하고' 따스한 대상이었다.

 뒤늦게 치뤄냈던 홍역은 어머니의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게 했다. 사람이 죽어서라도 앓게 된다는 홍역은 이삼 일간 나를 괴롭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여서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까지 잃을까 무척 걱정을 하셨던 모양이다.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밤새워 간호하시며 아픈 시늉이라도 할라치면 깜짝짬짝 놀라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던 어린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모습은 사뭇 다르게 그려진다.

 생계를위해 직장에 다니시면서 나의 밥상을 챙겨주시지 못할 때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고 하는 나 때문에 가슴 아파하시던 일, 우리 남매들의 기를 죽이기가 싫으셔서 끝끝네 지금까지도 친척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받으려고 하지 않으시던 대쪽 같은 성품, 중학교에 진학한 뒤부터 공부에 열의를 보이지 않자 당신 탓이라고 몹시 후회를 하시던일.

 그렇지만 나는 그즈음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두시고 내 뒷바라지를 하시겠다는 것을 반대했다.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대로 파출부일이나 허드렛일을 하시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도 창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험회사 영업소장이라는 어머니의 자리는 남에게 말하기가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의 바람대로 어머니는 직장을 계속 다니셨다. 나이가 드시고 대졸출신의 젋은 사람들과의 경쟁아닌 경쟁이 무척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 앞에서는 내색 한번 하지 않으시고 항상 꼿꼿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이신다. 그런 모습을 보고 종종 '소나무여 소나무여 언제나 푸른…. 이라는 노래를 불러 실없이 어머니를 웃음짓게 한다.

 우리 남매는 한편으로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을 한없이 요구하고 마음에 차지않으면 반발하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불만을 말씀 한마디 없이 감수하시며 바르게 자라준 것을 고맙게만 생각하셨다. 아직도 내가 찾는 길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안타까움 또한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강한 나의 어머니, 자식에게 모든것을 양보하시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라는 말을 새삼스레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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