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우리에게 남은 시간
상태바
[삶의 여성학] 우리에게 남은 시간
  • 관리자
  • 승인 2009.08.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의 여성학

  금요일은 야간 강의가 있어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그날도 금요일이라 늦게 귀가하였는데 먼저 집에 와 있던 남편이 친구로부터 `내일 만나는 약속을 1시간 뒤로 늦추자며 이의가 있으면 늦더라도 전화하고 아니면 내일 약속장소에서 만나자` 는 전화가 왔음을 알려주었다.

  그 친구와는 다음날 교외로 바람을 쐬러 나가기로 하였었다. 둘 다 일에 쫓겨 자기자신을 망각할 때가 있음을 서로 이야기 하다가 망중한(忙中閑)을 만들기로 작정한 것이다. 친구의 회사에 하루 휴가를 신청해 놓고 마치 회사에 출근하듯 집을 출발하여 바람을 쐬고 퇴근하듯 시간에 맞춰 집에 가기로 스케줄을 만들었다고 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만나 가까운 문산으로 향했다. 문산행 기차 안에서 우리는 바쁜 시간 여행을 했다. 고등학교시절부터 대학시절, 직장생활 그리고 시댁관계와 자녀 키우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물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었다. 친구는 최근에 시간관리에 관한 책까지 구입하여 읽었다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이클 포티노라는 사람은 미국의 남자성인을 대상으로 보통사람들의 생활시간사용을 1년 이상 관찰하였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평균 7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일생 동안 5년 간은 줄서는 데 보내며 6개월을 신호등 대기에 보낸다고 한다.

  그들은 우편함을 여는 데 8개월, 물건 찾는데 1년, 자리에 없는 사람을 찾아 전화를 바꿔주는 데 2년, 가사노동에 4년, 식사 하는데 6년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8시간을 잔다고 가정하면 수면시간은 약 23년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무려 43년이나 되므로 일생에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시간은 약 27년으로 이는 하루 9시간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 우리 나이가 40을 바라보니 인생의 반 이상은 살았다면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슬거머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 동안 내가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친구는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역시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나이 스물 여덟 살에 내란읍모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사형집행시간 바로 직전에 황제의 특사로 인해 목숨을 건졌다고 하는데 바로 그 때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사형집행예정시간을 생각 하면서 시계를 보니 자신이 이 땅 위에 살 수 있는 시간이 5분 남아 있었는데 28년간을 살아왔지만 이처럼 단 5분이 천금같이 여겨지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제 5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였는데 형장으로 같이 끌려온 동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마디씩 하는 데 2분, 오늘까지 살아온 생활과 생각을 정리하는 데 2분, 그리고 남은 1분은 오늘까지 발을 붙이고 살던 땅과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을 마지막 한 번 들러보는데 쓰기로 하였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벌써 2분이 지났다. 이제 자기 자신의 삶을 정리헤 보려고 하는데 문득 3분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나면서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찔해졌다. 28년 간의 세월을 순간 순간 아껴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이제 다시 한 번만 살 수 있다면 순간순간을 값있게 쓰련만! 그는 깊은 뉘우침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는 풀려나 시베리아 유배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지막 5분 동안 절실하게 생각되었던 시간을 금쪽같이 소중하게 아끼며 살았다고 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순간의 의식의 변화로 그의 남은 시간은 정말 귀중하게 사용되어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과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돌아올 시간아 다 되었다.

  둘 다 피곤한 상태였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몸은 지치고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을지라도 각자 자기의 일에 만족을 하고 있었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법구경에는 "노력해야 할 때 노력하지 읺??게으름에 빠져서 목적의식이나 생각이 나태해진 사람은 아무리 힘이 세고 젊다 하더라도 결코 지혜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다. 또한 부처님은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더욱 열심히 살자는 무언의 약속을 나누었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만드느라 오늘 할 일이 내일로 미루어지긴 했지만 우리에겐 아직 여분의 시간과 여분의 에너지가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