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그늘] 우리 모두는 하나입니다.

보리수 그늘

2007-12-07     안동진

   너와 나 우리 모두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는 큰 하나 속에 있습니다.
   까닭에 나의 모든 것이 너의 것이며, 너의 모든 것 결코 너만의 것은 아닙니다.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며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며, 나의 모든 것 너의 것입니다.
   우리는 큰 하나로서 그 어떤 부분일지언정 둘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가 아니며 절대입니다.
   오른쪽 귀가 고장이 나면 왼쪽 귀도 같이 고통을 당해야 하고 한 쪽 다리가 없거나 아파서 땅을 디딜 수 없다면 그 남은 한 쪽 다리가 몸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알았을 때 거기에는 화목과 기쁨이 있을지언정 절대로 투쟁과 질투나 미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둘이라는 것은 미혹이지 참이 아닙니다. 코로 냄새를 맡거나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보거나 입으로 맛을 보아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심히 불완전한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은 참다운 것을 가리고 거짓에 잘못하면 속을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알리시려 일찍이 사바세계에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참 말씀을 모르고 너와 내가 하나 아닌 둘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불행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인 것을 알았을 때 저절로 보현보살의 십종행원의 실천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우리는 항상 번뇌와 망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며 불행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실은 행복이란 말도 불행의 상대적 의미이기 때문에 불행이 없다면 행복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는 행복뿐인 것을 알게 됩니다.「바라밀」이라는 것도 실은 이름뿐이지 불행이 없다면 그것도 없는 것입니다. 차안이 있기 때문에 피안이라는 말도 필요한 것처럼 실은 모두가 하나임을 사무치게 아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행복과「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이 있을 뿐입니다. 떠난 사람은 반드시 와야 하고 온 사람은 반드시 떠나야 하는 것처럼 실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 않으며 가지 않았기 때문에 오지 않는 것, 이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죽음이다 삶이다 하는 것도 그것을 둘로 보는 착각일 뿐이지 생사가 따로 없음을 부처님께서 밝은 눈으로 보시고 우리들에게 간곡하게 이러한 실상을 일러 주시는 것입니다.
   까닭에 우리 모두는 괴로워하지 말 것이며 따로이 기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히 하나입니다.
   죽었다고 하는 사람을 보고 흔히 돌아가시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본래 그 자리로 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당신과 나, 불행과 행, 삶과 죽음이 본래 하나인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기는 당신과 내가 둘이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눈같이 불완전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의식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실상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명예가 있고 지위가 높으며 아무리 돈이 많다 할지라도 이제부터 백년 후에는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의 무대 위에서 열심히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리면 우리 모두는「하나」같지 않습니까. 실상이 이럴진대 번뇌와 망상 속에서 그래도 당신과 내가 둘이라고 고집하시겠습니까?
   잘한 연극은 칭찬을 받고 잘못한 연극은 비난을 받기에 연극이지만 열심히 해야 합니다. 결코 니힐리즘(허무주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변재며 형용사를 구사하더라도 실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45년 간 팔만 사천 법문을 하시고도「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신 마지막 말씀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행복을 우리 다 같이 기뻐합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하나」임을 알았을 때 여기가 분명「바라밀」국토임을 다시 알며, 우리는「한 몸」이기에 찬탄하며 감사하고 영원히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