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 산책] 78. 적(笛)과 금(魁)

불교문화 산책78/ ‘산사의 소리 ’ 이야기4

2007-10-07     관리자


해마다 이맘 때면 풀피리 입에 물고 논둑길 뛰어놀던 동무들이 그립다. 긴 줄기 가려 뽑아 입에 물면 싸하게 전해오는 비릿함, 입 베인다는 할머니 걱정은 아랑곳 않고 새 잎새 찾아 두리번두리번… ….

기원과 모양새
티벳의 피피(Pi-Pi)나 위구르의 디리(Diri)를 필율(馭郎, 語郎, 悲郎)로 한역하여 비리(bi-ri)라고 발음하던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피리로 불려졌다. 일반적으로 중앙아시아 신강(新疆)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으로 부는 악기를‘피리’라고 통칭하지만, 피리는 대나무 관대에‘겹서’라는 떨림판을 끼워 부는 악기이고, 적과 금은 대나무 관에 입김을 불어 넣어 울림을 얻는 악기이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적’은 중국 하남성 무양현에서 발굴된 약 6,000년 전 제작의 골적(骨笛)이 가장 이른 것으로, 연주법에 따라 횡적과 종적으로 나뉜다. 금은 겉모습은 적과 유사하나 갈대 속의 얇은 막을 채취하여 말린 청(淸)을 붙여 다양한 떨림을 만들어 내는 차이가 있다. 집안의 고구려 장천1호분에는 적을 연주하는 천인을 확인할 수 있어 삼국시대부터 애용되던 악기임을 알 수 있다. 일본에는 현재도 고려적이라 하여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적과 동일한 형식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피리의 아름다움
『삼국유사』 기이 제2에는 “신문대왕 때 감은사 앞 바다에서 얻은 신묘한 대나무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어 국보로 삼았다”고 한다. 감은사지 서3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기의 주악천인 중 1구는 적을 불고 있는데 혹여 만파식적이 아닐까.
갑사 부도(사진3)는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의 8각형 중간 석재 모서리마다 꽃모양 장식을 돋을새김하였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 8구를 새겨 놓았다. 마모가 심해 세부표현은 알 수 없으나 횡적을 연주하고 있다.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 홍척(洪陟)이 창건하였는데, 백장암 역시 동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이다. 사진1의 탑신 2층 각 면에는 주두와 난간이 표현된 목조건물 내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을 2구씩 새겼다. 자세로 보아 횡적으로 추정되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입 안 가득 바람을 머금은 소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사진2는 포벽과 평방에 그려진 별화(別畵) 부분으로 투박한 녹색 단청 사이로 백의관음이 왼쪽으로 살짝 몸을 틀어 선재동자를 응시하고 있다. 창방에는 본래 용이 있었는데, 이것은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의 좌보처이며, 우보처가 용왕인 것을 도상화한 것이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사천왕상은 투구가 보관(사진4)으로 대체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조선 후기부터 나타나는 특징이다. 꽃잎을 하늘 삼아 금을 연주하는 천인의 모습을 나무결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신중탱에는 화면 우측 동자상(사진5)과 같이 다양한 연주 장면이 곧잘 등장한다. 특히, 화면 우측에 배치되어 사실적인 연주모습을 보이던 적이나 금이 19세기를 기점으로 좌측에 배치되거나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관음청 중 향화청(香華請)에는 “白衣觀音無說說, 南巡童子不聞聞(백의관음은 말씀 없이 말씀하시고, 남순 동자는 들음 없이 들으시네)” 라고 한다. 마곡사 관음은(사진2) 피리소리로 남순 동자(선재)를 부르고, 선재는 피리소리를 찾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