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여성불교] 전통안에서 개혁시도한 비구니들

2007-10-07     진우기

지난 호까지는 서양 여성불교의 개관과 미국 여성불교를 개척한 선구자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는 승가라는 틀 안에서 비구니 신분을 유지하면서도 서양의 풍토에 맞는 불교를 전하기 위해 약간의 개혁을 시도한 여성들을 살펴보려 한다.

다음 호부터는 승가라는 틀을 벗어나 개혁을 위한 독립을 시도하거나 대단한 변화를 주도한 여성들이 소개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티벳불교에는 비구니 전통이 단절되었다. 현재 서양에서 활약하고 있는 티벳불교의 여성 비구니들은 거의 다 홍콩이나 타이완의 중국계 비구니에게 수계를 받았거나 렉시 소모 스님처럼 한국계 비구니 법맥에서 수계를 받은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이 직계 은사에게는 그리하라는 허락을 받고 난 후 해외 법맥에서 수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좀더 보수적인 티벳 스님들 사이에서는 그런 해외법맥에서 수계를 받는 것이 과연 순수한 티벳불교 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는가, 또는 그 해외법맥이 붓다시대부터 맥이 끊기지 않고 비구니수계의 전통을 제대로 이어받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며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티벳불교 행사에서 이들은 비구니로 불리지 않고 또한 비구니 위상에 맞는 예우도 받지 못한다. 법맥 내에 ‘사미니’ 신분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만 여느 사미니처럼 대우를 받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이들을 의기소침하게 하는 일은 없다.

오랜 세월 자신을 가치있는 인간이라 여겼던 여성들이 사회제도와 남성들이 강요하는 이등시민의 지위를 조용히 거부하고 무시했던 것처럼 이들 서양여성 비구니들도 그런 푸대접에 개의치않고 다만 자신이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실은 아메리카와 유럽대륙에서 이들의 법문과 가르침을 원하는 여성들(그리고 남성들)을 만나고 격려하는 일만 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란다.

텐진 팔모 스님

작년에 우리나라에 다녀간 텐진 팔모 스님(불광 2003년 9월호 기사 참조)은 인도 북부에 동규가찰링이라는 비구니 강원을 세우고 티벳인 여성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고 있다.

지금 티벳불교계의 비구니는 거의 전부가 서양여성들로 이루어져있고 티벳인들은 한 두 명의 비구니를 제외하고는 약간의 사미니들만 있을 뿐이다. 팔모 스님은 인도의 티벳인 지역에서 티벳인들을 가르쳐 사미니, 비구니들을 배출함으로써 티벳불교의 비구니법맥을 살리려 하고 있다.

팔모 스님 자신이 비구들만 있는 승원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몇 년을 고생했고 그러다가 후기에는 혼자 석굴로 들어가 미라래빠처럼 명상으로 깨달음을 얻는 방도를 취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이들 여성들에게는 좀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팔모 스님은 1973년 홍콩에서 비구니 수계를 받았다.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나 일생을 정신 수행을 한 팔모 스님은 지금도 그 때와 같이 가식이 없고 진솔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이 팔모 스님은 곁에 다가오는 사람을 바로 가슴속 깊은 곳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곁에 서면 마음의 벽이 절로 무너져내리고 눈에서 그저 눈물이 흘러내리는 체험을 자주 한다.

페마 초드론 스님

페마 초드론 스님은 북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스님들을 배출할 수 있는 강원 겸 수행센터인 감포 승원을 캐나다에 세운 사람이다.

그녀의 나이 40세에 칼마파는 비구니계를 받으라고 독려했고 티벳불교에는 그런 것이 없었으므로 초드론은 프레다 베디의 조언을 받아들여 1981년 홍콩에서 집단 수계식을 통해 비구니계를 받았다. 이후 그녀는 감포 승원 책임운영자로서 3년명상코스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지금까지 40여 명이 졸업했고, 후에는 젊은이들(16~25세)을 위한 1개월 단기출가도 여름방학기간에 매년 실시하였다.

1985년부터 10년간 만성피로증후군을 앓았지만 그 동안에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은 베스트셀러를 3권 저술하였다. 페마 초드론 스님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랑과 미움, 배신을 절절하게 겪으며 죽도록 고통스러워했던 과거의 체험이 이제 신선한 치료약으로 변신하여 사람들의 가슴에 지름길로 다가가는 것이다.

툽텐 초드론, 아야 케마, 지유케넷 스님

툽텐 초드론(불광 2004년 12월 기사 참조) 스님 역시 1977년 사미니계를 받고 1986년 대만에서 비구니계를 받았다. 이후 그녀는 미국에 쉬라바스티 승원을 설립하고 비구와 비구니가 공히 수행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가고 있다.

상좌부불교 비구니인 아야 케마(불광 2004년 3월 기사 참조) 스님은 1979년 56세에 스리랑카에서 사미니계를 받고 1987년 로스엔젤레스의 시라이사에서 비구니계를 받았다.

상좌부 내에 비구니 법맥을 재건하기 위해서 평생 많은 노력을 한 아야 케마는 스리랑카에 비구섬에 버금가는 비구니섬을 만들어 서양의 재가나 승가 여성들이 언제라도 찾아가 장·단기 수련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녀가 그 수행센터를 만들면서 얼마나 지난한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대승불교 조동종 비구니인 지유 케넷(불광 2004년 1월 기사 참조) 스님은 조동종에서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다 받고 정식으로 밟아야 할 코스도 다 거쳤다.

서양에서 활동하는 서양 비구니들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한 법맥에서 정식교육을 다 받고 순조로운 코스를 거친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통적 승가를 꾸려가며 사는 서양 비구니들 중에서 가장 많은 개혁을 실행한 사람이다.
지유 케넷 스님이 캘리포니아에 설립한 샤스타 승원과 영국의 트로셀홀의 수도원에서는 조동종의 형식을 따르지 않은 독립형 불교가 수행되고 있다.

이들은 남성 여성이 한곳에서 함께 수행하며, 이름도 ‘수사(monk)’라는 한 가지로 부르고 있다. 또한 영어 독경을 하며 카톨릭 성가처럼 음율에 맞춘 챈트도 한다.

되살아나는 비구니법맥

1998년 2월 14일에서 23일까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인도의 보드가야에서는 전세계 비구니들에게 의미깊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대적인 ‘국제 비구니 수계 프로그램(The International Full Ordination Program)’이 불광산종의 싱윤선사에 의해 주최되고 있었던 것이다. 22개국에서 온 참석인원 146명 중 132명이 여성이었다.

수계식에서 새로 탄생한 비구니는 서양인 18명, 스리랑카인 20명, 인도의 불가촉천민 28명, 네팔인 8명이었다. 5세기에 중국으로 비구니법맥을 전했던 스리랑카에 11세기 이후 끊어졌던 법맥이 이제 21세기에 이르러 다시 중국으로부터 원래 왔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수계식에는 이전에 비구니 법맥의 재건을 강력히 반대하던 스리랑카의 지명도 높은 비구 9명이 참석하였고, 역시 비구니 법맥에 부정적이던 타일랜드와 미얀마의 비구가 1명씩 참석하여 더 뜻깊은 행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