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태국 4 수코타이의 불교 유적
태국 고대 도시 수코타이의 불교 유적
'행복의 새벽' 이라는 뜻을 지닌 수코타이는 13세기 태국 최초로 독립왕국이 성립된 도시이 다. 수코타이 왕조는 오늘날까지 태국의 확고한 종교적 위치를 확립한 상좌부 불교를 받아 들였고 거대한 번영의 도시임을 알려주는 수많은 불교 유적을 남겨 놓았다. 우리 나라로 말 하면 경주와 같은 유서깊은 도시이다.
중국 운남지방에서 점차 남하를 거듭한 타이 민족의 조상은 12세기 경 인도차이나 반도 서 쪽 중심부에 도착, 도시를 건립하고 최초의 수코타이 왕조(1238∼1378)를 일으켰다. 1350년 아유타야 왕조가 출현하기까지 태국의 영토확장, 문자고안, 상좌부불교 신봉, 미얀마와 크메 르의 문화 유입 등으로 짧지만 화려하게 역사의 서막을 장식하였다. 현재 수도인 방콕에서 약 427㎞, 태국인의 젖줄인 차오프라야 강에 합류하는 욤강을 끼고 발달한 수코타이 왕조.
화려한 불교 문화의 영화로운 체취가 남아있는 이 고도로 향하는 마음은 설레일 뿐이다.
현재 수코타이는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는다. 왕국의 도시였던 유적들은 이 곳에서 서쪽으 로 12㎞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현지 사람들은 '오래된 도시'라는 뜻으로 '무앙카우'라 부르 고 있었다. 유적들이 한 곳에 모여있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으므로 충분한 시간을 필요 로 한다. 교통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나, 오랜 도시답게 자전거 인력거가 있어 운치 있는 행진을 할 수 있었다.
수코타이 역사공원 안에 유적들은 먼저 성곽을 둘러보면서 시작된다. 이곳은 세계 불교공원 으로 지정되어 있고, 타이 예술국이 유네스코의 협력을 받아 역사적 공원으로 정비, 보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성곽은 남북 길이 2㎞, 동서 1.6㎞나 되는 세 겹의 성벽에 둘러싸인 부분과 성벽 외부의 동서남북 지역 등 합계 5장소로 구성되어 있다. 성 내에는 왕궁과 더불 어 35개의 불교사원과 연못, 수로 등이 있다고 하지만 성 내외부로 오늘날까지 발굴, 정비된 유적만도 300곳이 넘는다는 말에 고개를 절로 흔들게 된다.
성곽은 흙으로 쌓은 방어벽으로 네 개의 문이 남아 있다. 성의 중심에 위치한 왕궁은 터만 남아 있는데, 당시에는 목조로 지어진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왕궁터의 서 쪽 옆에는 이 곳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원인 왓 마하탓트가 자리한다. 수코타이 건국과 동시에 왕실사원으로서 역할을 해 온 중요한 사원이다. 왕가와 백성들에게 깊이 신봉되어 온 불심의 표현으로, 왕조 기간 중 수차례 중수를 거듭했던 것 같다.
서쪽과 남북쪽이 연못처럼 보이는 수로인 개울로 둘러싸인 가로, 세로 약 200미터의 규모와 185기의 탑, 18군데의 기도처가 있다. 연꽃이 은은하게 꽃망울을 드러내는 연못 또한 유적과 더불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당시에 황금으로 빛나던 거대한 불상은 초췌한 모습이 지만 전형적인 수코타이 양식의 불상으로 손색이 없다. 대개의 사원은 비슷한 형식으로 조 성되어 있어 왓 마하탓트를 참배하는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태국 불교양식을 결정지 은 건축기법이 돋보이며 바라보는 시각마다 각각의 사원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가장 현저한 모습은 연꽃봉오리 모양의 거대한 체디(불탑)이다. 스리랑카에서 전래된 부처님의 진신사리 를 모신 불탑이라 한다.
부근에는 예배하는 부처님의 제자상, 대좌 위에는 부처님의 좌상이 배열되어 있다. 그 양쪽 에는 높이 8미터의 불상을 모신 1쌍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기둥 사이로 높은 벽돌 토대 위에 앉은 거대한 좌불상이 마치 고대의 시간을 넘나드는 듯 그윽한 모습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아유타야왕조 시대에 증축이 이루어진 장소라 한다. 지극히 찰 나의 순간에 수백년을 거슬러 나는 그 법당 앞에 엎드려 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수코타이 불교 유적의 특징은 호수같은 연못들이 점재하는 곳에 사원터가 마주한다. 깨끗한 하늘, 맑은 물, 푸른 대지 위에 붉은 벽돌의 기둥과 불상이 이정표가 될 뿐이다. 불교의 이 상이 수코타이 사람들에게 안락과 평안을 가져다 주기를 얼마나 기원하였을까? 중국으로부 터 쫓겨온 민족이 크메르족과 미얀마족의 틈바구니에서 터전을 일구며 살아오기 얼마나 힘 이 들었을까? 그들의 중심을 이루는 구심점은 불교의 가르침과 신앙이었으리라. 일찍이 불 교를 나라의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왕가의 염원이 서려있는 듯 푸르른 연잎이 잔잔한 물원 을 그려내고 있다.
왓 마하탓트의 남서쪽에는 왓 스리사와이가 있다. 라테라이트라는 경질적토와 벽돌의 2중 울타리 속에 있는 특이한 3기의 프랑(크메르식 탑당)이 온후한 중량감을 준다. 이 프랑에는 내실이 조성되어 있으나, 중앙의 것만 예불당으로 이어져 있다. 수코타이 시대 이전의 크메 르의 앙코르 왕조 때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힌두신의 조 각상이 있었으나, 후에 불교사원으로 바뀌었다. 크메르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인 타이인들은 이후 프랑이라는 옥수수 모양의 불탑을 태국 사원에 도입하여 포용적인 불교문화를 수용하 는 초기 형식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사원의 서쪽으로 왓 트라팡노엔이 있다. 은못(銀池)이라는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고, 가운 데 떠있는 섬에 사원이 있다. 예불당은 무너져 토대와 기둥만이 남아 있고, 그 옆에는 완만 한 산을 배경으로 연꽃봉우리 모양의 체디가 물가에 제 모습을 비추며 뽐내고 있다. 이곳의 북쪽으로는 스리랑카식의 체디가 있는 왓 차나송크람이 있으며, 본당이 있는 와 사시가 근 처의 섬 위에 있다.
그리고 산타파뎅 사원은 수코타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서, 앙코르 왓을 건설 한 수리야바르만 2세 때에 조성, 약 200년을 앞선다. 작은 힌두교 사당 내에는 앙코르 왓 양 식의 힌두교 신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왓 마이는 수코타이에서 말엽에 지어진 사원으로, 아유타야 건축양식의 예불당이 있다.
성곽 동문쪽에는 랑캄행 국립박물관이 있다. 수코타이 고대 미술과 공예품을 둘러 볼 수 있 다. 이 곳에 있는 큰 연못을 금못(金池)이라 한다. 그 가운데 왓 트라팡통이 위치하는데, 은 못의 왓 트라팡노엔과 대칭되는 사원이다.
성곽 밖 북쪽으로 500미터 정도 나가면, 수로에 둘러싸인 왓 프라파이루앙을 참배할 수 있 다. 당시에는 이곳이 도시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크메르 시대의 힌두교 사원을 불교사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왕실 사원인 왓 마하탓트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사원이다. 사원내에는 왓 스리사와이의 크메르식 탑당처럼 3기의 비슷한 프랑이 있었으나, 힌두교와 불교 양식으로 치장된 북쪽의 1기만 남고 붕괴되었다. 3기 프랑앞에는 예불당과 불좌상에 둘러싸여 있는 체디(불탑)가 있다. 이런 구조물 앞에는 하나의 몬도프(태국식 불당)가 있는데 네 가지 모습 으로 서있는 불상의 유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한때 힌두교신의 시바와 링감(남근의 상; 시바신의 상징)이 조성되어 있기도 했다.
프라파이루앙 사원에서 1㎞정도 서쪽에는 왓 시춤이 있다. 지붕이 없는 사방 32미터, 높이 15미터, 벽의 두께가 3미터인 본당에는 거대한 좌불상이 모셔져 있다. 수하항마인의 모습을 한 불상은 아차나불이라고 불리며 지금도 사람들이 참배하는 불상이다. 터널식의 두터운 벽 의 내부와 천장에는 자타카(전생담)를 그린 50장의 선각석판을 볼 수 있는 사원이다.
성벽의 서쪽지역, 왓 시춤에서 남서쪽으로 가다보면 언덕 위에 서있는 불상이 보인다. 왓 사 파힌이라는 사원이다. 사파힌은 돌다리를 말하며 돌을 깐 길이 200미터 언덕의 꼭대기까지 계속되어 있다. 중간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체디가 있고, 정상에는 벽돌의 벽을 뒤에 두고 오른손을 든 12.5미터의 '아타로'라 불리는 대불상이 동쪽을 향하고 서있다. 조망이 좋아, 언 덕에서 짧지만 빛나는 영화를 불태운 도시, 수코타이의 유적을 바라볼 수 있다. 떨어지는 저 녁노을이 그윽한 향기로 내뿜는 듯 바람도 싱그럽다. 더 가고 싶었다. 떨어지는 노을따라 붉 게 물들고 싶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나현정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