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불안이'를 위한 『주역』

2025-02-12     최호승
'인사이드 아웃 2'에서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불안이'.

불안의 시대, 삶의 든든한 중심을 잡다!
동양철학 최고의 고전에서 배우는
좀 더 성숙한 인생 경영의 지혜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예측하거나 단정하기 어렵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요? 고사성어 새옹지마를 직역하면 “변방 노인의 말[馬]”입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전쟁이 잦은 북쪽의 변방 노인이 기르던 말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도망간 말을 사람들이 걱정할 땐 “복이 될지 어찌 알겠소?” 하고, 도망간 말이 많은 야생말을 데려와서 축하받을 땐 “화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라며 덤덤했고,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자 위로받을 땐 “이게 다시 복이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노인은 반문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전쟁이 터졌고 집마다 전쟁터로 끌려간 젊은 남자들이 거의 전사했습니다. 말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된 아들은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았고 끔찍한 난리 통에도 살아남은 것입니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하는 게 인생입니다.

인생은 예측불가입니다. 그래서 흥미롭지만, 그래서 불안하기도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복과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손님이 행복이면 몰라도 불행이라면 더 불안합니다. ‘복무쌍지 화불단행(福無雙至 禍不單行).’ “복(福)은 쌍으로 오지 않고, 화(禍)는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불행이 언제 올지 몰라 초조하고, 닥쳤을 때 해결하지 못할까 불안합니다. 그렇다고, 늘 노심초사하며 살아야 할까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 새롭게 등장한 ‘불안이’의 초조한 모습이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안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이 시대를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삶의 든든한 중심이 필요합니다. 동양철학 최고의 고전 『주역(周易)』은 흉한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인생에 화가 찾아올 때 혹은 흉한 일이 닥쳤을 때 필요한 괘를 설명합니다. 역설적으로 가장 흉한 국면을 제시하는 곤괘(困卦, ䷮)로 위로와 격려를 전합니다. 사실 곤(困) 자체가 ‘괴롭다’는 뜻입니다. 괘의 모양이 연못(☱)이 위에 있고 물(☵)은 아래에 있는데, 물이 연못에 담겨 있지 못하고 아래로 쭉 빠져 내린 모양새입니다. 말하자면 몸에서 피가 쭉 빠져나간 형국입니다. 이보다 더 흉할 수가 없습니다. 『주역』은 이 괘의 의미를 이렇게 풉니다.

“곤(困)은 형통하고 곧은 대인(大人)이라서 길하고 허물이 없다. 말을 해도 믿지 않으리라.”
“기쁘게 험난한 길을 가기에, 곤고하지만 형통함을 잃지 않으니, 군자라야 그러하리라!”

『주역의 눈』 | 이선경 지음 | 272쪽 | 20,000원

『주역』에 담긴 ‘역의 사유’ 묘리가 여기 있습니다. ‘역의 사유’로 『주역』을 바라본 『주역의 눈』 저자 이선경 박사는 한국의 역학 ‘정역(正易)’ 연구의 일인자 학산 이정호(1913~2004), 행촌 이동준(88, 성균관대 명예교수)을 이어 3대째 동양철학 연구에 매진하며 쌓아온 내공을 이 책에서 펼칩니다. 『논어』, 『맹자』, 『중용』 등 동양철학으로 해석한 곤괘를 통해 좀 더 성숙한 인생 경영의 지혜를 전하는 것이지요.

“오늘 하루 작지만 의롭고 양심에 떳떳한 선택, 나 자신을 참되고 아름답게 가꾸려는 지금의 노력이 중요하다. ‘마음을 잘 보존하고, 본성을 잘 기르는 일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라는 것이 맹자의 가르침이다. ‘나침반은 흔들리기 때문에 바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듯, 오늘도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길을 찾으며 가는 우리 모두를 격려해 본다.”

『주역』이 인문학이 되는 순간,
“역의 사유는 나를 아끼는 지혜”가 된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지나간 일에 마음이 붙들려 걱정하고, 아직 오지 않은 일로 불안하고 초조하면 오늘을 망치게 마련이지요.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내일은 오늘이 만듭니다. 지금의 행동이 내일의 나를 만드니, 현재의 자리에서 자신을 더 아끼고 가꾸는 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주역의 눈』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오랜 세월 증명받아온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삶의 든든한 중심을 잡도록 이끕니다. 이 같은 사례는 이 책에 부족함 없이 담겨 있습니다. 일이 안 풀릴 때도 이렇게 격려합니다.

“나와 나의 관계 정립이란 몸과 마음 모두에 걸친 일이다. 나는 정서적으로도 나를 아껴줘야 하지만, 나의 몸도 아껴줘야 한다. 폭식, 폭음, 폭언, 폭행은 모두 금해야 할 일이다. 쉽게 분노를 폭발하는 일도 정서적으로 나를 학대하는 일이다. 턱을 움직여 음식물을 씹는 모양인 주역의 이괘(頤卦, ䷚)에서는 ‘말을 신중하게 하고, 음식을 조절해서 먹는다’고 했다. 덜어냄을 뜻하는 손괘(損卦, ䷨)에서는 ‘성냄을 징계하며 욕심을 막는다’고 했다. 이런 일들은 맹목적 금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아끼는 중요한 방법이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더라도 건강하게 먹고 마음을 편안히 해서 때를 준비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역』이 인문학이 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그 순간을 ‘역의 사유’로 들여다보면서 사람이 사는 이치를 풀이하지요. 이는 곧 ‘나를 아끼는 지혜’로 이어집니다. 『주역』이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라는 사실을 이 책으로 증명한 셈입니다. 저자는 『주역』을 공부하는 목적이 “지금 이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잘 아끼고 사랑하는 힘을 기르는 게 ‘역의 사유’이자 『주역』의 핵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책을 편집한 편집자는 『주역』이 왜 ‘마음을 씻는 경전’ 세심경(洗心經)으로 불리는지 이제는 알 것도 같습니다.

왼쪽부터 탄허 스님, 공자, 칼 융.

사족을 붙이자면, 세계적 인물들이 『주역』을 탐독했다고 하네요. 유불선을 꿰뚫은 ‘한국 정신문화의 큰별’ 탄허 스님은 “불교를 제외한 최고의 철학”으로 『주역』을 극찬했습니다. 500번이나 탐독했습니다. "배우면 큰 허물은 없을 것"이라며 뒤늦게 오십에 『주역』을 접한 공자는 죽간(竹簡, 대나무 조각을 엮어 만든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었습니다. 무의식과 『주역』을 접목해 MBTI에 이론적인 실마리를 제공한 세계적 정신분석학자 칼 융(1875~1961)은 『주역』에서 음양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배워 외향형-내향형 등 심리를 구분했다고 합니다. 칼 융은 1949년 독일의 리하르트 빌헬름이 번역해 출간한 『주역』 서문에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책"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은 왜 『주역』을 읽었을까요? 『주역의 눈』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시는 것도 2025년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을 살아가시는 데 정말 유익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