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의 발견] 간다라 지역과 길기트 『장아함경』

새로운 불교 사본의 발견

2024-10-26     최진경

불교 문헌 연구에 있어 인도와 중국을 잇던 실크로드 상의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출토된 불교 경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불교가 일찍이 소멸했고, 장기 보존에 취약한 야자수 잎에 쓰여 전해지던 불교 경전 대부분이 인도의 덥고 습한 기후로 제대로 살아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같은 시대의 라이벌이자 현재까지도 인도 현지에서 그 명맥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종교다. 이 자이나교 사원에서 아주 극소수의 불교 문헌이 발견된 예를 제외하면, 실제로 인도에 전승되는 불교 문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각국의 탐험가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발견한 산스크리트를 비롯한 인도어로 쓰인 불교 경전이 없었다면, 현대 불교 문헌 연구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오직 빨리어, 한역, 또는 티베트어역으로 된 자료만을 중심으로 하는 바퀴 하나 빠진 수레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를 주름잡던 서구 열강의 쇠퇴와 더불어 수그러든 탐험 조사의 열풍은, 중앙아시아에서 불교 사본은 더 이상 발굴되지 않을 것으로 여기는 학계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던 중 1996년 6월 26일, 영국 런던 대영도서관(영국도서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새로 발견된 불교 사본을 입수해 소장하게 됐고, 미국 워싱턴 대학의 리처드 살로몬 교수의 연구팀과 이 사본에 대한 공동연구를 계획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도판 1] 1996년 런던 대영도서관이 공개한 사본 다발. Stefan Baum 제공
[도판 2] ‘도판 1’의 사본을 복원한 이미지. Stefan Baum 제공

 

가장 오래된 불교 문헌의 발견

사본은 자작나무 껍질에 쓰인 간다라어 서적 29점으로 알려졌다. 기록된 문자는 중근동(中近東)의 아람(Aramaic) 문자의 영향을 받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록하는 ‘카로슈티(Karoṣṭhī) 문자’다. 사본 재질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결과 놀랍게도 기원전 1세기경에 쓰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이 간다라어 사본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 사본인 것이다. 이스라엘 사해(死海)에서 발견된 구약성서에나 비교될 수 있는 불교 사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도판 1, 2].

대영도서관이 이 사본들을 실제로 입수한 시기는 기자회견 2년 전인 1994년이었다. 이 사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하다(Haḍḍa)에서 발견됐다고 전해지지만 아쉽게도 정확한 출토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기자회견 이전 15년간 이 지역은 내란과 전쟁으로 혼란의 도가니였는데, 아프가니스탄과 그 근접국 파키스탄에서 새로운 불교 문헌이 연이어 등장해 연구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현재와 같은 새로운 발견의 시대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 세대의 연구자들이 불교 문헌 연구의 역사를 돌아볼 때, 대영도서관의 기자발표회가 있었던 1996년은 ‘제2의 불교 사본 대발견 시대의 시작’으로 자리매김할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사본 발견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30여 년 사이에 발견된 또는 지금부터 발견될 사본류는 이후의 불교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자료를 제공할지도 모를 일이다. 

 

길기트 『장아함경』의 발견

길기트 『장아함경』 사본의 발견도 이 새로운 사본 연구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다.

1998년 여름 50여 편 되는 한 묶음의 불교 사본이 파키스탄에서 두바이를 경유해 런던의 고서적 중개업자의 손을 거쳐, 최종적으로 미국 워싱턴의 개인 수집가의 소장품이 됐다. 올 4월 교토 불교대학에서 정년을 맞은 마츠다 카즈노부 교수는 노르웨이 스코이옌 컬렉션 불교 사본 연구 모임에 참석하던 중, 이 새로운 사본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바로 런던을 방문하여 누구보다도 먼저 이 사본 뭉치를 직접 손에 들고 관찰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도판 3]. 

[도판 3] 1998년 런던 고서적상 샘 포그가 파키스탄에서 출토된 미지의 사본을 마츠다 카즈노부 교수에게 처음 선보였을 당시의 사진. 마츠다 카즈노부 제공

자작나무 껍질을 세로 10cm, 가로 50cm 정도의 크기로 잘라, 여러 겹을 모아 붙인 것을 용지로 사용한 사본에는 범어로 장문의 문장이 쓰여 있었다. 참고로 자작나무 껍질은 야자수가 자랄 수 없는 건조한 사막지대인 중앙아시아에서 흔하게 사용되던 사본 재료다. 

사용된 문자는 길기트-바미얀 유형 II로 불리는 브라흐미(Brāhmī) 문자의 서체로, 이는 서북 인도에서 7~8세기경을 중심으로 사용됐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에도 전해 내려오는 실담(悉曇) 문자의 원형이기도 하다. 

마츠다 교수는 이 사본이 불교 교단 가운데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교단의 『장아함경(長阿含經)』임을 사본의 내용으로 짐작했다. 이 한 묶음이 아함경 중에서도 가장 길이가 긴 경전들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 『장아함경』 전체라고 하기에는 그 양이 한참 부족하다는 점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사본의 일부로 보이는 단편들이 고서적 시장에 연이어 등장, 미국 및 일본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그 수는 전체 250매 정도에 이른다. 교토 불교대학의 3장, 히라야마 컬렉션의 52장, 노르웨이 스코옌 컬렉션의 몇몇 단편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현재 미국 버지니아의 개인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사본의 발견 장소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의 길기트(Gilgit)일 가능성이 크다. 『장아함경』 사본 발견에 앞서 길기트에서는 설일체유부 교단의 『율장(律藏)』이 발견된 바 있다. 

이 『장아함경』 사본의 서체와 마지막 장에 사용된 장식 문양, 사본의 추정 연대 등은 물론 율장에 인용된 경전 내용까지도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발견 장소를 길기트로 추정한 것이다. 

이후 미국인이 소장한 사본 가운데 제목과 장 번호를 포함하는 제일 마지막 장이 발견돼, 이 사본이 그동안 소실됐던 설일체유부의 전체 454장에 이르는 거대한 『장아함경』이라는 것이 분명히 밝혀졌다. 사본의 전반부는 심하게 훼손돼 단편들만 회수된 것에 비해 후반부의 약 200장은 다행히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서체의 편년에 의한 분석,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에서 2001년에 행해진 탄소14에 의한 연대측정 결과로 미루어 7세기 후반~8세기 전반에 쓰인 사본이라는 것도 재차 확인됐다. 사본 전체가 완전체로 남아 있지 않지만, 각 경전의 배열순서, 그리고 사이사이에 배치된 목차 또는 핵심어 목록(uddāna)의 도움으로 경전의 구성을 추론할 수 있었다. 

설일체유부 교단의 『장아함경』은 제1부 육경품(六經品)의 6 경전, 제2부 쌍품(雙品, 9쌍을 이루는) 18 경전, 제3부 계온품(戒蘊品) 전체 23 경전, 즉 총 3부 47 경전으로 구성됐다는 것이 판명됐다. 참고로 불교의 또 다른 교단인 상좌부에서는 설일체유부 교단의 『장아함경』에 해당하는 경전이 『장부(長部, Dīgha-Nikāya)』 34편이다. 법장부(法蔵部, Dharmaguptaka)에서는 한역 『장아함경(長阿含經)』 30편의 경전만 전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설일체유부의 『장아함경』의 두드러진 방대함을 실감할 수 있다. 

길기트 서쪽 바위에 새겨진 ‘카르가 불상(Kargah Buddha)’. 700년경 조성됐다. 사진 위키미디어.
600년경 금동으로 조성된 불상.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사본의 구성과 연구

가장 많은 경전이 집약된 마지막 계온품의 계온(戒蘊, Śīlaskandha)이란, 출가자가 지켜야 할 도덕적 지침(śīla)의 집성을 의미한다. 이는 사실 흔히 계(戒)·정(定)·혜(慧) 또는 삼학(三学)로 알려진 붓다의 가르침인 ① 율장이 성립되기 이전 시대에 출가자에게 기대되는 자세한 행동 수칙(戒, śīla) 31항목을 시작으로, ② 이후 이르게 되는 명상의 단계(定, dhyāna)와 ③ 이후 얻어지는 지혜의 다양한 경지(慧, 통상적으로는 prajñā. 길기트 사본에서는 일부 경전을 제외하고 초인간적 능력을 의미하는 abhijñā 또는 깨달음 vidyā라는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됨)를 자세히 언급하는 불교의 수행 체계가 기록된 경전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빨리어로 기록된 상좌부 교단의 『장부』에는 계온품이 제일 앞에 배치된 것과 달리, 설일체유부 교단의 길기트 『장아함경』에서는 제일 마지막 제3부에 배치됐다. 따라서 다행히 거의 전체가 회수된 길기트 사본의 마지막 부분은 설일체유부 교단에서 전해지는 초기 수행체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길기트 『장아함경』 사본 364번째 장 앞면. 산스크리트 『장아함경』 전체 47편 가운데 25번째 경전이다. 『삼장경(三杖經, Tridaṇḍi-sūtra)』 가운데 부분에 해당한다. 교토 불교대학 박물관 제공

필자는 현존하는 사본 가운데 일본 교토 불교대학이 소장한 단편을 실물로 영접할 수 있었다. 전체 454장 가운데 364~366번째의 세 장으로, 계온품의 가장 첫 번째 경전 『삼장경(三杖經, Tridaṇḍi-sūtra)』의 중간 부분에 해당한다. 그리고 『삼장경』의 나머지 부분을 포함한 50편의 사본을 마츠다 교수의 추천으로 일본 히라야마 화백이 입수했고, 교토 불교대학의 3편과 합쳐 이 경전 전체의 복원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 경전에 대응하는 한역, 빨리어 버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삼장경』은 설일체유부 교단의 독자적인 경전 가운데 하나이며, 본 사본에 포함되는 텍스트가 현존하는 유일한 판본이다. 이 사본의 발견으로 빨리어와 한역 경전에 기초한 해당 경전 연구가 전부라고 여겨졌던 초기 불교 경전 연구의 지평이 한층 넓혀졌다. 또한 경전이 다양한 부파에 다양한 모습으로 전승됐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여러 세기, 여러 지역을 거쳐 발전·진화·재구성되는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회수 가능한 사본 대부분은 노르웨이,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독일 각국의 사본 전문가들과 그 제자들에 의해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독일 뮌헨대학의 옌스-우베 하르트만 명예 교수는 이 사본이 출토되기에 앞서 중앙아시아 투루판에서 출토된 『장아함경』 사본의 단편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필자를 비롯한 제자들의 석사 또는 박사논문 주제로 길기트 『장아함경』 사본을 활용하며, 차세대 사본 연구자 양성에 힘써왔다. 아쉽게도 일반 독자는 물론 학계의 다른 연구자들에게 공개된 자료는 이제까지 극소수에 불과했다.

올해 2024년 미국 위즈덤 출판사가 기획한 범문 장아함경 시리즈(Dīrghāgama Studies) 제1권으로 길기트 『장아함경』의 15번째(Prāsādika-sūtra)와 16번째(Prasādanīya-sūtra) 경전을 연구한 찰스 디시몬 교수의 박사논문이 드디어 출판됐다. 이어서 제 2권으로 25번 째(Tridaṇḍi-sūtra), 27번째 (Lohitya-sūtra I)와 28번째(Lohitya-sūtra II) 경전을 연구한 필자의 논문이 내년 출간될 예정이다. 여타 복원 연구된 다른 경전들의 영문 번역판도 같은 시리즈의 다음 제3권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에 더불어 길기트 『장아함경』의 한글 번역본도 머지않은 미래에 출판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해 본다. 

 

● 이 출판물에 언급된 필자의 연구는 독일학술교류재단(DAAD), Robert H. N. Ho 가족 재단 프로그램, 유럽연합(ERC, Gandhāra Corpora, 101117429)의 지원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표현된 견해와 의견은 필자의 것일 뿐, 유럽연합이나 유럽연구위원회의 견해와 의견을 반드시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유럽연합이나 프로젝트 승인 당국은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 참고문헌 

『新アジア仏教史』「第三章中央アジアの仏教写本」松田和信 Perfect Awakening: An Edition and Translation of the Prāsādika and Prasādanīya-sūtras, Charles DiSimone 2024, Wisdom Publications.

Three Sūtras from the Gilgit Dīrghāgama Manuscript: A Synoptic Critical Edition, Translation and Textual Analysis, Jinkyoung Choi 2021, PhD Dissertation submitted at University of Munich.

The Buddhist Literature of Ancient Gandhāra,  Richard Salomon, 2018, Wisdom Publications.

 

 

최진경
현재 벨기에 겐트대학 간다라 코포라 프로젝트 연구원이자 바이에른 학술원 티베트어 사전 프로젝트 연구원이다. 한국 외국어대와 미국 델라웨어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부전공 동아시아학, 종교학)했다. 이후 동국대 인도철학과 석사과정 수료, 일본 교토 불교대학 불교학과 석사, 독일 뮌헨대학 인도학·불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도 불교 문헌학, 중앙아시아 출토 산스크리트 불교 사본, 유가사지론 섭결택분 상트페트부르크 사본 연구, 불교와 차문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