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나, 진짜 나일까] 미러리스Mirrorless 거울, 불영패佛影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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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유동영
송광사 수선사 거울은 800여 년 전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수선결사를 비추는 듯 모두를 압도한다.

카메라 렌즈만을 거친 피사체는 스크린에 상하좌우 역상으로 맺힌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파인더와 렌즈 사이에 거울을 설치하는데, SLR(Single Lens Reflex) 카메라다. 눈으로 보는 듯한 생생함이 있으나 거울은 카메라의 부피와 무게를 늘렸다. 액정 기술의 발전은 거울 대신 작은 TV를 카메라에 넣게 했다. 카메라의 부피와 무게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꾸준한 펌웨어 업그레이드는 피사체의 정보와 카메라의 기능을 향상시켰다. 요즘 대세 카메라인 거울 없는 카메라 미러리스(Mirrorless)이다. 

불교 법구인 불영패(佛影牌)는 빛이 만드는 상이 아닌 불성(佛性)을 비춘다는 점에서 미러리스 거울과 같다. 조선 후기 이름난 화승이었던 탁밀 스님이 고운사에 남긴 불영패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송광사 선원인 수선사(修禪社) 거울과 전등사·범어사 대웅전의 업경대가 연이어 떠올랐다. 대웅전에 놓인 업경대의 의미가 비로소 풀린 것이다. 대웅전 순서는 전각을 지은 시기에 따랐다. 

“못 가에 홀로 앉았다가(池邊獨自坐) 못 속의 한 스님을 만나네(池底偶逢僧), 말없이 서로 바라보며 웃으니(默默笑相視) 대답이 없어도 그대를 아네(知君語不應).” 광원암에 주석하며 지눌 스님의 법을 이은 2세 진각 혜심 스님의 <그림자를 대하며>란 시다. 부처님과 가섭 존자의 염화미소가 번득 떠오른다. 16국사 스님의 법맥은 고려 말 나옹 스님, 조선 중기 부휴 스님, 근대 효봉 스님으로 이어진다. 

수선사 거울은 1969년 구산 방장 스님이 조계총림을 설립하며 걸었다. 테두리는 나전으로 만(卍) 자를 넣었다. 수선사 현판과 주련은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이 썼다. 수선사는 새벽 3시 도량석보다 이른 2시 30분 행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선사 선방에는 1년 중 하루도 좌복이 놓이지 않는 날이 없다. 수선사를 중심으로 동편에 국사전, 서편에 금강계단과 삼일암이 있다. 이들 선방 영역엔 스님들도 함부로 드나들지 않는다.

 

고운사    ●    불영패 바닥에는 ‘강희 35년 즉 1696년에 화원 탁밀·보웅 스님이 조각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탁밀 스님은 사인까지 남겼다. 스님이 1697년, 수조각승으로 고운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조성했다. 시기로 보아 불영패는 극락전 부처님전 법구로 조각한 것으로 보인다. 고운사 외에도 탁밀 스님의 작품은 용문사 대장전 후불목각불상과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좌상과 권속, 김룡사 명부전 목조지장삼존상 및 시왕, 영월 보덕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의성 대곡사 나한전 존상 등이 있다.

 

고운사 템플스테이 ‘스님과의 차담’은 제16교구본사의 교구장 등운 스님이 직접 자리한다. 바쁜 일정의 교구장 스님이 템플스테이 참가자들과 차담을 나누는 경우는 지금껏 본 적이 없어 놀랐다. 스님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기 전 그것이 선한 것인지를 알아차리는 그 자리가 불영이다. 업경대는 과거를 비추는 것이고 불영패는 바로 지금을 비추는 것이다. 오직 지금 밖에 없는 것이다”라며 불영패의 깊은 뜻을 강조한다. 

고운사 구름을 뚫고 연화좌에 오른 거울은 수많은 연화문과 화염 속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다. 

 

전등사    ●    대웅전이 1605년과 1614년 화재로 전소됐다. 1621년, 순천 송광사 사천왕문 중수를 맡았던 지경 스님이 중건했다. 지경 스님은 송광사 부휴 스님 문중이다. 1623년, 수조각승인 수연 스님은 목조삼세불좌상을 조성했다. 1627년, 지금은 수장고에 보관 중인 업경대를 제작했다. 1636년, 수화승 수연 스님 등이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을 조성했다. 업경대와 명부전 권속 제작 시기가 9년이나 차이가 난다. 업경대를 명부전에 두려 했다면 애초 명부전 권속과 함께 조각했을 것이다. 전등사 업경대는 제작 시부터 대웅보전에 둘 불영패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위 내용을 사중에서 확인하지는 못했다.

 

범어사    ●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대웅전은 1658년 상량식을 거친 뒤 1680년에야 완성이 됐다. 석가모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 등 삼세불은 1661년 수조각승 희장 스님이 조성했다. 부처님 좌측 벽에는 약사삼존불이, 우측 벽에는 아미타삼존불이 그려져 있다. 삼면의 주불인, 석가모니불·약사여래불·아미타불을 합하면 전등사의 삼세불과 같다. 전각은 담백한 맞배지붕이나, 용이 꿈틀대는 닫집·별별 동식물을 새겨 놓은 수미단·헤아릴 수 없는 우주 법계를 표현한 천장 등은 부처님 전각의 정점에 있다. 불패와 나란히 놓인 업경대는 전등사 업경대처럼 사자 등 위에 있다. 업경대가 언제부터 대웅전에 놓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위봉사    ●    위봉사 보광명전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타 1673년에 다시 지었다. 다만 삼존불은 산내 암자인 북암에 봉안하기 위해 의암 스님이 1602년, 문수·관음·보현·지장보살은 1605년에 조성했다. 지장보살과·관음보살은 1989년 도난당한 뒤 2021년 사설박물관에서 발견돼 현재는 보광명전에 다시 모셨다. 도난 때 사라진 관세음보살 보관과 지장보살 석장은 새로 장식했고, 더불어 개금까지 마쳤다. 업경대는 작고 소박하나 금박을 입힌 거울은 반짝인다. 후불 영산회상도·약사불도·아미타불도는 19세기 중반 이후 다른 시기에 봉안해 솜씨와 채색이 서로 다르다. 해강 김규진의 난이 새겨진 위봉사 현판은 송광사·마곡사 등에 비해 제법 크다. 일제강점기 본사로서 대찰이었음을 말해준다.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