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의 메신저, 저승사자] 대중문화 속 저승사자

전설의, 찬란하고 쓸쓸하神, 저승사자와 함께

2024-07-10     송희원
KBS <전설의 고향-저승花> ⓒ KBS Archive 

저승사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죽어서 직접 저승사자를 대면해 본 이는 없을 테니, 대개는 대중매체에서 형상화된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가끔 기력이 쇠해져 꿈에서 만나는 저승사자도 이를 단서로 만들어진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 대중매체에서 저승사자는 어떻게 표현되는지 TV 프로그램 KBS <전설의 고향>과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신) 도깨비>, 만화 <신과 함께>로 살펴보자. 

저승사자는 황천에서 인간 세상으로 건너와 죽은 자들을 어둠의 땅, 저승으로 데리고 가기에 흔히 ‘어둠의 신’으로 불린다. 그를 만난다는 것은 곧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하이패스이기에 피하고만 싶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KBS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2015년 <고집불통> 코너 속 100세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해 죽겠네”라고 내뱉는다. 그때마다 저승사자가 등장해 그를 데려가려고 한다. 이때 할아버지는 저승사자를 돌려보내기 위해 방금 한 “숨 차 죽겠네”란 말에는 숨차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비트박스를 하고, “심심해 죽겠네”라고 했던 자기 말에는 뽁뽁이를 터트리며 심심하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저승사자에게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희화화했다 하더라도 저승사자는 분명 두렵고 마주치기 싫은 존재다. 

하지만 앞으로 살펴볼 3편의 드라마·만화에서, 저승사자는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다. “잘생겼”는데 정에 약하고, 정의로우며, 자신이 데려갈 인간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슈트발’ 받는 저승사자?

<전설의 고향>은 1977년 첫 방영한 전설·민간 설화 등을 바탕으로 한 사극 시리즈다. 산발에 소복 입은 귀신, 검정 옷에 창백한 얼굴을 한 저승사자의 이미지는 여기에서 정립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적 최근인 2008~2009년에도 방영됐는데, 저승사자가 최초로 등장한 편은 1981년 8월 4일 방송한 ‘저승花(화)’다(1997년 9월 28일 재방영 때는 ‘사신의 미소’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이 편에 등장한 여자·남자 저승사자는 검은 도포에 검은 갓, 하얀 얼굴에 까만 입술을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바로 그 모습이다.

‘저승화’를 연출한 최상식 PD는 후일 한 프로그램에 나와 “<전설의 고향> 이전에는 한국형 죽음의 이미지가 없었다”며 “죽음의 이미지는 새까만 색이니 까만 도포를 입히고, 대비되게 얼굴은 하얗게 칠하고, 입술을 까만색으로 임팩트를 주자”라고 저승사자의 탄생 비화를 밝히기도 했다.(저승사자 이미지를 그가 온전히 창조한 것은 아니며, 경전에 ‘흑의흑마黑衣黑馬’라는 구절이 이미 있었다. 『시왕경』에는 검은 옷을 입고 검은 깃발을 들고 검은 말을 탄 저승사자를 묘사한 구절이 나온다.) 

주호민, 『신과 함께』 전집(문학동네)
저승삼차사 ⓒ 주호민 『신과 함께』(문학동네) 

주호민의 만화 <신과 함께>는 2010~2012년 웹툰으로 연재된 이후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총 8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돼 97만 권 이상 판매된 히트작이다. 2017년과 이듬해 두 편의 영화로 제작돼 천만 관객이 봤고, 연극과 뮤지컬로 제작될 만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여기서 나온 저승사자들의 패션이 좀 남다르다. 올 블랙으로 깔 맞춤한 것은 같지만, 회사원들처럼 검은 양복과 넥타이 차림이다. 또한 휴대전화로 저승삼차사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에서도 마찬가지다. 2016~2017년 tvN에서 방영된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로 20.5%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전국에 ‘도깨비’ 열풍을 불러왔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극 중 저승사자(이동욱 분)는 검은색 슈트와 페도라를 착용했는데, 극 중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잘생겼다”는 언급이 수차례 나온다. ‘망자의 찻집’이라는 곳에 출퇴근하며 자기 일을 “워낙 야근이 많은 직업”이라고 설명하는데, 이 밖에도 “만 34세, 생일 음력 11월 초닷새, 사수자리, AB형, 미혼, 집은 전세, 차는 필요하면 곧” 등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설정이다. 이처럼 시대에 맞춰 저승사자의 캐릭터, 환경, 의상도 현대적으로 변모한다.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포스터

 

인정에 약한 저승사자?

“이제 당신을 땅끝으로 데려갈 시간이 됐소. 사시사철이 없는 나라, 살아 있으면서 죽음이 없는 나라,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는 나라. 당신을 그리 데려가기 위해 내가 지금 왔소.”
- <전설의 고향-저승화> 여자 저승사자의 대사

“싫소. 안 가겠소. 아무리 두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이곳에서 나는 내 처와 함께 살겠소.”
- <전설의 고향-저승화> 백도빈 도령의 대사

<전설의 고향> ‘저승화’(1981) 편 여자 저승사자(최선자 분)는 명부에 기록된 연도를 잘못 보고 1년이나 먼저 도빈 도령(백윤식 분)을 찾아오게 된다. 첫눈에 도령을 사모하게 된 저승사자는 그를 저승으로 데려가 가연을 맺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남편 대신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라는 부인의 지극정성 어린 기도 덕에 하늘이 감복했고, 하는 수 없이 저승사자는 부인의 혼백을 데려간다. 도령은 자신 대신 목숨을 내놓은 아내를 보낼 수 없다며 기어이 저승까지 따라오고, 저승사자는 아내의 혼백을 되돌려준다. 그러면서 ‘혼백을 다시 이승으로 되돌리는 것은 저승사자의 권한 밖의 일이나, 이승에서의 부부의 사랑이 너무도 아름다워 평생 처음으로 권한 밖의 일을 했노라. 그 어떤 형벌을 감수하겠다’고 고백한다.

KBS <전설의 고향-저승花> ⓒ KBS Archive 

<신과 함께> 저승사자들도 이승에서의 정의를 위해 자신의 권한 밖 일을 행한다. 이승을 떠날 수 없어 저승길에서 도망친 원귀를 잡으러 다니다가, 군부대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연을 알게 되고 원귀의 한을 대신 풀어준다. 저승사자의 정의로움은 염라대왕이 강림도령을 처음 저승차사로 임명했을 때 나눴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염라대왕은 사람들의 수명이 적혀 있는 명부를 보여주며, 여기에 적혀 있는 사람들만 데려오라고 한다. 강림도령은 반기하며 “이건 그냥 심부름꾼 아닙니까. 엄청나게 나쁜 놈이 있어도 그냥 보고만 오란 말입니까?”라고 묻자, 염라대왕은 “안 그러면 질서가 무너져”라고 대답한다. 질서가 무너지고 자신에게 설령 불이익이 있더라도 이승에서의 불의를 눈감고 지나치지 못하는 저승사자의 용맹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염라대왕과 강림도령 ⓒ 주호민 『신과 함께』(문학동네) 

<도깨비>의 저승사자 역시 때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친구 도깨비를 위해 명부에 적힌 이름을 몇 번 누락시키고 조정하는 등 인간적인 감정에 휘둘린다. 대중문화 속 저승사자는 어쩐지 인간 본연의 성정을 많이 닮아 있다.  

 

이승과 저승은 가까이

저승사자는 저승과 이승을 왕래하며 죽음과 삶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죽은 사람 입장에서 저승사자는 이승세계 끝에서 저승세계라는 또 다른 시작으로 자신을 안내하는 삶과 죽음의 매개자다. 

<신과 함께>에서 저승삼차사는 혼백을 저승에 데려가기 위해 실제 존재하는 3호선 지하철에 탑승한다. 이 열차는 저승의 입구인 초군문으로 가는 ‘바리데기호’다. 이승 열차와 부딪치지 않도록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다닌다는 설정인데, 곧 동이 터서일까 열차 전광판에는 다음 열차로 ‘오금행’이 뜬다. 이승의 열차와 같은 노선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운행하는 저승행 열차, 그 안에서 죽은 이들의 노잣돈을 뜯는 잡상인, 이승의 사람들 무리에 섞여 가도 전혀 위화감 없을 것 같은 모습의 저승사자까지. 죽음은 생각만큼 그리 낯설고 먼 세계는 아닐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