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의 메신저, 저승사자] 세계의 저승사자

죽음의 전령사, 저승길의 동행자들

2024-07-06     유현주

죽음은 인간의 근본적인 생물학적 조건이다. 즉 우리는 누구나 죽는 필멸의 존재인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므로 인류는 종교, 제의 생활, 신화, 예술, 철학 등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들을 고안해 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저승사자’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는 죽음의 때가 됐음을 알려주고 망자(亡者)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들이 존재한다. 

“염라대왕 부린차사(閻羅大王使忍差使)
영악하고 험한사자(令惡何古險限使者)
너문전애 당도하야(汝門前厓當到何也)
인정없이 달라들어(人情無是達那入於)
벽력같이 잡아내제(霹靂可治者所來除)”

위의 글은 고려 말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이 이두(吏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로 적은 표기법)로 지은 불교 가사 「승원가(僧元歌)」 중 한 부분이다. 덧없는 인생사에서 벗어나 부처님께 귀의해 서방정토로 가자는 내용이다. 

이 가사 중에는 죽음의 순간을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문밖에 염라대왕이 부리는 저승차사가 당도했다. 영악하고 험한 저승사자가 인정사정없이 망자에게 달려들어 벼락이 치듯 그를 잡아채는 순간이다. 느닷없이 맞닥뜨리는 죽음을 인격화된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과연 죽음은 어떠한 모습으로 올 것인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1505년, 영국박물관 소장 
14세기 중엽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흑사병 이후, 사람들은 ‘죽음’을 혐오스러운 외모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저승사자로 의인화했다. 

가장 유명한 저승사자, 낫을 든 사신(死神) ‘그림리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승사자는 ‘그림리퍼(the Grim Reaper)’일 것이다. 이름이 친숙하지 않더라도 그 모습을 보면 그 의미를 당장 알아챌 수 있다. ‘그림(grim)’은 음산하다는 뜻이고, ‘리퍼(reaper)’는 농작물을 수확하는 낫과 같은 도구를 의미한다. 붙여진 이름에 걸맞게 ‘죽음의 사신 그림리퍼’는 낫을 들고 있는 해골의 모습인데 후드가 달린 검은 망토를 입거나 말, 혹은 수레를 타고 다닌다. 농부가 낫으로 곡식을 수확하듯 그림리퍼는 망자의 영혼을 육신으로부터 끊어내어 저승으로 가져간다. 

이런 저승사자의 이미지가 널리 유포돼 정착한 시기는 14세기 중엽에 전 세계를 강타한 흑사병 창궐 이후부터다.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된 흑사병은 최소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이때 유럽인은 전체 인구의 1/3에서 절반 가까이가 흑사병으로 죽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달려와 가차 없이 목을 베어가는, 저항할 수 없는 극심한 폭력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림리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승사자의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힙노스와 타나토스>, 1874년, 출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홈페이지 
잠의 신 힙노스와 쌍둥이 형제인 타나토스는 평화로운 죽음의 상징이다. 

그리스 타나토스, 잠과 함께 태어난 평화로운 죽음의 신

신화시대에는 평화로운 죽음의 신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존재했다. 그리스 신화의 타나토스가 바로 그 존재다. 타나토스는 밤의 신 닉스와 어둠의 신 에레보스의 아들인데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의 쌍둥이 남동생은 잠의 신 힙노스다. 

타나토스는 죽음 그 자체를 의미화한 존재인데, 그의 가족 관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밤, 어둠, 그리고 잠과 아주 가까운 관계 속에 있다. 즉 타나토스가 상징하는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기에 잠에 드는 것과 비슷한 평화로운 죽음의 이미지가 강한 것이다. 때문에 미술 작품에서 타나토스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그려질 때가 많다. 생명의 소멸을 뜻하는 ‘거꾸로 된 횃불’, 평화를 상징하는 ‘화환’, 영원한 잠을 상징하는 ‘양귀비’가 그를 상징하는 요소들이다. 

다른 저승사자들과 마찬가지로 타나토스의 임무는 죽은 자를 호송하는 것인데, 죽은 자를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는 강인 스틱스강까지 인도하면 그의 임무는 끝이 난다. 즉 망자의 입장에서는 스틱스강에서 뱃사공 카론을 만나 노잣돈을 주고 강을 건너는 것부터 본격적인 저승으로의 험난한 여행이 시작되는 셈이다. 따라서 죽음인 타나토스를 만나는 것 자체로는 어떠한 무섭거나 두려운 일도 겪지 않는다.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모든 죽음이 그 자체로 악마화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솔로틀, 멕시코 인류학박물관 소장, 출처 World History Encyclopedia 홈페이지
아즈텍 신화에서 솔로틀은 개의 머리를 한 모습으로 표현되며 저승사자의 역할을 한다.

아즈텍 솔로틀, 신들의 사형 집행자였던 저승사자

저승길에 동행하는 존재는 문화권에 따라 동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시베리아 샤머니즘 세계관으로, 그곳에서는 인간세계와 저승을 오갈 때 새나 사슴과 같은 동물 신의 도움을 받게 된다. 라틴아메리카의 신화에서도 저승 여정을 인도하는 동물 신이 등장한다.

아즈텍과 마야 신화에서 평범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은 믹틀란(Mictlan)이라고 하는 지하세계로 가서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Mictlantecuhtli)를 알현해야 한다. 문제는 이 저승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믹틀란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홉 개의 지하세계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기간만 무려 4년이 걸린다. 이때 개의 머리를 한 신 솔로틀(Xolotl)이 저승길을 인도한다. 길고 험난한 저승 여정이 끝나면 망자는 드디어 솔로틀의 등에 타고 풍요로운 강을 건너 죽은 자의 세계인 믹틀란에 도착하게 된다. 

아즈텍의 신화세계에서 솔로틀이 저승사자의 자격을 얻게 된 것은 아즈텍 신화의 창조이야기와 관련이 깊다. 아즈텍 신화에서는 주기적으로 세계가 재창조되는데, 5번째 태양의 세계 때에 태양이 움직이지 않는 변고가 생겼다. 신들은 태양 질서를 제대로 돌려놓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기로 했는데, 이때 솔로틀이 사형 집행자로서 신들을 죽이는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후에 저승사자의 상징을 갖게 된다.

저승사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솔로틀은 선악의 양면을 모두 가진 신격이다. 아즈텍 문화에서 개는 더러운 동물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솔로틀이 개의 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솔로틀이 상징하는 기형, 질병, 불행 등등은 모두 불길한 것들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도움을 줬다는 신화 전승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솔로틀은 케찰코아틀이라는 신과 쌍둥이로 태어났다. 4번째 세계가 끝나 인간을 다시 창조해야 했을 때 솔로틀은 케찰코아틀과 함께 지하세계 믹틀란으로 가서 죽은 자들의 뼈를 가져와 살려낸다. 이때 솔로틀은 불도 함께 가져와 인간세계에 전해줬고 이로 인해 저승사자이자 불과 번개라는 신의 자격도 얻게 된다. 

믹틀란테쿠틀리, 14~16세기, 호주 멜버른박물관 소장, 출처 World History Encyclopedia 홈페이지
아즈텍 죽음의 신인 믹틀란테쿠틀리는 인간의 살과 피에 대한 끝없는 굶주림을 가진 존재로 주로 해골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집트 아누비스,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의 저울로 인도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장례를 치를 때 「사자(死者)의 서(書)」라고 하는 문서를 관 속 함께 넣었다. 죽은 자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두아트’라고 부르는 지하세계의 많은 관문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주문들이 「사자의 서」에 쓰여 있었다. 이 때문에 사후세계의 안내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자의 서」, 이집트 19왕조 시기, 영국박물관 소장
자칼 머리를 한 아누비스가 죽은 자의 손을 잡고 심판의 저울 앞으로 인도하고 있다.

위의 그림은 고대 이집트 최전성기인 제19왕조 시기(기원전 1293~기원전 1185)의 「사자의 서」에 나오는 오시리스 신 앞에서의 심판 장면이다. 가장 오른쪽 의자에 앉아 있는 오시리스가 보인다. 오시리스는 망자의 신답게 녹색 피부에 아마천에 싸인 미라 같은 모습으로 오른손에는 권능의 지팡이를, 왼손에는 도리깨를 들고 있다. 

그림 중앙에는 망자의 삶을 심판하는 도구인 저울이 있다. 저울의 왼쪽에는 망자의 심장이, 오른쪽에는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깃털이 놓여 있다.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지은 죄가 많다는 뜻으로 저울 앞에 앉아 있는 악어 머리, 사자 갈기, 하마 다리를 한 괴물 암무트가 망자의 심장을 먹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망자의 영혼은 영원히 이승을 떠돌아야만 한다. 저울 오른편에 서 있는 따오기 머리를 한 토트신은 심판 과정을 기록하는 서기관이며, 그 옆에 있는 매 머리의 호루스는 심판의 감독관이다.

그림의 가장 왼편, 우리의 주인공인 자칼 머리를 한 저승사자 아누비스는 망자의 손을 잡고 이제 막 심판의 저울 앞에 당도했다. 아즈텍의 솔로틀이 신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어 저승의 인도자가 됐듯이, 아누비스 역시 신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오시리스가 동생 세트에 의해 살해당했을 때 아누비스는 그의 시체를 보존 처리해 미라로 만들었다. 이후 아누비스는 장례식과 무덤의 수호자이자 저승사자의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죽음의 신 야마, 1830년, 인도, 영국박물관 소장
힌두 경전 속 죽음의 군주 야마는 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염라대왕으로 재탄생한다.

힌두교 죽음의 군주 ‘야마’에서 ‘염라대왕’으로

이상에서 살펴본 ‘죽음 이후의 심판’은 인류 문화사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풍부한 이야기는 불교의 시왕(十王)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죽음 이후에 49일까지 7일마다, 그리고 백일·소상·대상이 되는 날 총 열 번의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를 담당하는 열 명의 심판관을 시왕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신화적 구조는 힌두교 세계관 속에서 성장한 불교가 중국 도교와 만나면서 풍부하게 꽃을 피우게 됐는데,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저승의 왕인 염라대왕 역시 힌두교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힌두 경전에 나오는 죽음의 군주 ‘야마’는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보내는 임무를 맡았다. 야마는 검은 물소를 타고 밧줄로 된 올가미와 곤봉을 가지고 다닌다. 도상에 따라 팔이 네 개인 경우 지팡이와 칼과 같은 다른 무기들을 들고 있는 모습이며 탈 것도 개가 끄는 마차인 경우도 있다. 무기와 올가미로 망자의 영혼을 제압하여 명계로 데려가므로 저승의 안내자라기보다는 율법 집행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마와 관련된 신화는 다양한 전승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야마의 부하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다. 즉 전승에 따라 체포 담당, 기록 담당 부하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야마의 부하로 기록 담당이 등장하는 신화에서 야마는 망자의 선악에 대한 기록을 검토해 판결을 내리는 심판관이자 법왕의 자격을 갖는다. 

야마가 죽음의 군주가 된 데에도 아즈텍의 솔로틀, 이집트의 아누비스와 비슷한 이유가 존재했다. 즉 야마는 생명이 있는 것 중 최초로 죽음을 경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아무도 죽지 않았던 때에 가장 처음 죽어 명계의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는 모든 죽은 자들의 조상이자 저승의 신이 됐다. 힌디어 야마라자(, Yamarāja)를 한문으로 음차하면 염마라사(閻魔羅闍)가 되며, 이것이 염라대왕 이름의 유래가 된다. 인도의 야마신화가 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시왕 중의 하나인 염라대왕으로 변화한 것이다.

 

염라대왕의 전령사 ‘저승사자’의 탄생

저승차사, 명부사자, 지옥사자라고도 불리는 저승사자는 시왕신앙이 자리 잡기 이전인 4세기 『대루탄경(大樓炭經)』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명부사자는 사천왕의 권속으로 인간들의 선악을 살펴보기 위해 세상에 파견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처럼 인간의 선악을 살피고 기록했다가 이를 심판한다는 세계관은 당시 불교뿐 아니라 중국 민간 도교에서도 공통으로 존재했으므로 당 말 송 초에 이르면 서로 습합돼 시왕신앙을 형성하게 된다. 시왕신앙이 대유행하게 되면서 관련 종교문화가 더욱 번창하고 저승사자 역시 그 조직과 직능이 다양하게 분화됐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 특유의 관료 사회 구조와 문화가 반영돼 명부의 조직체계가 갖춰진 까닭에, 동아시아의 저승사자는 죽음의 전령사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서류와 절차를 빠짐없이 갖춰야 하는 공무원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명부계 불화 속 사자들에게서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특히 불교의식에서 불단을 장엄하는 기능을 하는 연·월·일·시직의 사직사자(四直使者)는 심지어 아름다운 청년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검은 도포의 창백한 저승사자는 어떻게 생겨난 이미지일까? 혹자는 1970·1980년대를 주름잡던 TV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에서 서양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빌려 새롭게 만들어낸 저승사자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국의 모든 사람이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를 떠올리게 된 데에는 <전설의 고향>이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려시대 저승사자의 모습은 해인사에 보관 중인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124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염라대왕이 부처님께 아뢰는 대목이 등장한다. 

“세존이시여. 
저희 모든 대왕들은 사신(使臣)으로 하여금 
흑마(黑馬)를 타고 흑번(黑幡)을 들고 흑의(黑衣)를 입고 
죽은 이의 집에 가서 도첩(度牒)에 따라 가려내며 
저희가 세운 서원(誓願)에 어긋남이 없게 하겠습니다.”

그렇다. 우리에게도 지옥 왕의 명령을 받잡고 검은 깃발을 휘날리며 검은 말을 내달려 폭풍처럼 문 앞에 들이닥치는 검은 옷의 저승사자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저승사자의 생김새가 무섭지 않다고 맥이 빠질 일은 아니겠지만 말과 깃발, 그리고 제복까지 올 블랙으로 세팅한 저승사자라니. 어느 곳의 저승사자와 비교해도 될 법한 카리스마가 아닌가.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단 한 가지는 죽음뿐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생이 소멸하는 죽음은 수많은 상상의 존재들을 꽃피워냈다. 죽음과 관련한 이다지도 다채로운 인류의 이야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중이다.  

 

유현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려사』 「예지(禮志)」 가례(嘉禮)를 통해 본 고려시대 국속(國俗)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암각화와 바위신앙, 의례 상징과 민속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