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十牛圖] 일본의 십우도: 선승화가들의 수행법
일본불교의 십우도
목동이 소를 찾고 깨닫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십우도는 선종의 대표적 화제로, 일본에서는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1336~1573)에 주로 그려졌다. 특히 임제종이 중심이 되는 교토의 오산(五山, 5대 선종사찰)문화 속에서 향유됐다. 십우와 관련해 알려진 작품으로는 젯카이 츄신(絶海中津)의 십우송(十牛頌)을 시작으로 슈분과 셋슈의 작품 등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슈분과 셋슈의 십우도를 소개한다.
슈분의 십우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십우도는 무로마치시대의 선승이자 화승인 슈분(周文, ?~1462?)이 그렸다고 전하는 십우도일 것이다. 그는 임제종 대본산 쇼코쿠지(相國寺)에서 사찰의 토지와 재산, 서화 관리를 담당하는 도관(都管)으로 있었다. 스승 죠세츠(如拙)에게 수묵화를 배우고 그의 뒤를 이어 막부의 어용화사로 활동했다. 특히 무로마치시대 죠세츠-슈분-셋슈-카노 마사노부-하세가와 도하쿠로 이어지는 일본 수묵화의 계보를 형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슈분의 십우도는 181cm 정도의 긴 화첩에 각 장면을 작은 원형으로 그리고, 그 안에 그림을 그린 형태다. 그림은 다음과 같은 구성을 취한다.
① 잃어버린 소를 찾는 ‘심우(尋牛)’, ②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견적(見跡)’, ③ 소의 소리를 듣고 뒷모습을 본 ‘견우(見牛)’, ④ 마침내 소를 찾아 고삐를 당기지만 소와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는 아찔한 상태를 그린 ‘득우(得牛)’, ⑤ ‘목우(牧牛)’는 소를 길들여 데려가는 장면으로, 슈분은 이 장면을 느슨하게 한 고삐와 함께 처음으로 소의 얼굴을 그렸다.
⑥ ‘기우귀가(騎牛歸家)’는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하늘을 보며 웃고 있는 소의 표정은 익살스럽고, 리듬에 맞춰 걷는 소의 발걸음은 가볍다. 슈분의 십우도 중 가장 해학적인 장면이다. ⑦ 집에 돌아간 후 소를 잊고 ‘깨달았다’라는 마음 자체를 잊은 ‘망우존인(忘牛存人)’. ⑧ 소도 사람도 잊혀진 ‘인우구망(人牛俱忘)’은 화면 한가운데 큰 원 하나만 그려 넣었다. 즉, 망설임도 깨달음도 초월했을 때 그곳에는 절대적인 하늘만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은 깨닫기 전과 마찬가지로 물은 흐르고 꽃은 아름답게 피어난다. ⑩ ‘입전수수(入纏垂手)’는 동자가 깨달음을 얻은 노인과 대면하는 모습으로, 깨달음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함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노인과 대화하는 동자의 모습이 소 발자국을 발견한 견적의 동자 모습과 유사한 점이다.
슈분의 십우도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특기인 산수화를 작은 원형 안에 배경으로 견고하게 그려, 그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무로마치 이후 제작되는 십우도의 전형이 된 작품이다. 그런데 슈분이 산수화에 능하게 된 데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일까. 슈분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림들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화풍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이나 조선의 화풍과 닮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슈분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슈분은 한국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세종 5년(1423) 11월 20일에 대장경 동판을 구하려는 일본사(日本使) 일행들과 함께 조선을 방문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이들 일본사 일행이 조선에 체류한 기간은 약 4개월간이며 그 중 서울에 체류한 기간은 약 2달 정도다.
특히 슈분에 관한 기록은 세종 6년 1월 22일에 처음 등장한다. 경판을 구한 일본사 일행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가운데, 슈분이 일행에게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해 항의성 발언을 하는 장면이다. “화승 주문(周文)이란 자가 망령된 말을 하기를…”이라는 기록이다. 또 다른 기록은 4일 후, 26일 일본사 일행이 조선왕실로부터 선물을 받는 기록으로 “…승려 주문(周文)에게는 면주 2필, 저포 1필, 마포 1필을 주었다”에서다.
하지만 슈분이 조선에서 그림을 배웠다거나, 사대부와 화원과 교류를 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일행이 조선을 떠나기 전 사대부들과의 문화 교류를 겸한 연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일본사 일행이 조선의 산수화와 도호(道號)의 찬(贊)과 시를 부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연회에 슈분이 참가해서 조선의 산수화를 접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그린 <수색만광도(水色巒光圖)>(1445)는 무로마치시대 선승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서재도 그림이다. 그림에는 고세이 류하, 신덴 세하 등 3명의 선승이 찬을 썼는데, 첫 번째 시의 첫 구절을 따서 <수색만광도>로 부르고 있다. 슈분이 조선을 방문한 1423년으로부터 약 22년 후의 작품이지만 변화한 슈분의 화풍과 조선 초기 수묵화와의 관련성을 잘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림은 화면 앞쪽 중앙에 소나무를 그리고, 왼쪽의 암벽과 소나무 사이에 초가집을 배치했다. 관람자의 시선은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 위로 이동하며 원경의 중앙에 고원의 산을 배치했다. 이러한 구성은 전경과 원경의 사이에 깊고 넓은 공간을 줘 원근법을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
<수색만광도>의 화풍은 스승인 죠세츠의 화풍과는 결이 다르다. 더해서 한쪽으로 치우친 변각구도는 중국 남송대의 화가 마원(馬遠)과 같지만, 근경을 중심으로 그리는 마원의 화풍과도 또 다르다. 오히려 조선 초기의 산수화와 유사하다. 이러한 공간감은 십우도의 ‘견적’과 ‘망우존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더해서 <수색만광도>의 암벽의 표현은 소를 찾는 ‘심우’나, 소를 발견한 ‘견우’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셋슈의 십우도
일본에서 십우도로 유명한 또 다른 작품은 선승인 셋슈 토요(雪舟等揚, 1420~1506)의 십우도다. 일본 역사에서 산수화를 제일 잘 그린 한 사람만을 꼽으라면 일본인들은 주저 없이 셋슈를 꼽는다. 나아가 서양에는 고흐의 자화상이 있다면 일본에는 셋슈의 자화상이 있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실제 ‘셋슈’(雪舟)는 본명이 아니고 호다. 아울러 ‘토요’는 휘(諱, 타계한 어른의 이름)로 자신의 스승인 슌린 슈토에게서 하사받았다. 그는 일명 ‘셋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을 만큼, 셋슈 이후의 한화가(중국과 일본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셋슈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오카야마현(岡山縣) 출신으로 어린 시절 그 지역의 유명한 사찰인 호후쿠지(宝福寺)에 입문했다. 열 살 무렵 같은 조동종 계열인 교토의 도후쿠지(東福寺)로 거처를 옮겨 선과 주자학을 배웠다. 다시 도후쿠지에서 쇼코쿠지로 거처를 옮긴 후 쇼코쿠지의 유명한 선승, 슌린 슈토(春林周藤) 밑에서 선을 배웠다. 쇼코쿠지 시절 셋슈는 일본회화사에서 길이 남을 또 다른 만남, 슈분을 만나서 그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즉, 셋슈에게 있어 선은 스승 슌린 슈토였고, 회화는 슈분에서 시작됐다. 1463년 44세에 쇼코쿠지를 떠나서 혼슈의 서쪽 끝에 있는 야마구치(山口)에 가서 정착했고, 1467년 48세의 늦은 나이에 견명사(遣明使)로 중국 여행길에 올랐다.
셋슈의 십우도(1470년경 추정)는 견명사로 중국을 다녀온 이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셋슈는 기존의 십우도와는 달리, 조금 독특한 형태의 십우도를 그렸다. 그는 10장의 십우도 중 <방이당(倣李唐) 목우도-목동>과 <방이당 목우도-도하> 단 2장만을 독립적으로 그렸다. 두 작품 모두 정사각형의 종이 위에 부채 모양으로 테두리를 그리고, 그 안에 그림을 그렸다. 화면의 오른쪽 테두리 안쪽에 ‘셋슈(雪舟)’라는 서명을 넣고, 테두리 바깥쪽의 오른쪽 아래 구석에 ‘이당(李唐)’이라는 중국 송대의 화가의 이름을 써넣었다. 이당은 산수와 소 그림에 능했던 작가로 이 두 작품은 셋슈가 이당을 모방(오마주)해서 그린 작품이다.
<방이당 목우도-목동>은 어린 목동이 물소를 타고 채찍질하며 길을 가는 모습을 그렸다. 어미 소의 뒤에 어린 송아지가 따라 걷고 있는데, 송아지의 머리는 어미 소의 몸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다. 높이와 폭이 약 30cm 정도의 작은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어미 소의 등 위에 올라타는 아이의 얼굴을 세밀하게 그리는 등 작가의 꼼꼼함이 엿보인다. 연한 담채로 표현된 나뭇잎의 녹색과 바위에 칠해진 파란색 등 봄의 기운을 잘 표현한 그림이다.
또 다른 작품인 <방이당 목우도-도하> 역시 동일한 화면 구성을 취한다. 기존의 십우도에는 없는 장면으로, 화면에는 강을 건너는 물소의 등에 챙이 넓은 갓을 쓴 부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물속의 물소의 표정도, 그 등에 올라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한가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들 주변으로 강 속에는 갈대가, 강기슭에는 대나무가 무성하고, 물소가 걸으면서 일으키는 수면의 파문은 부드러운 선을 사용해 능숙하게 그려내는 등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부채꼴 형태에 옛 그림들을 모방해서 그린 이러한 그림들을 단선형 방고도(団扇形倣古圖)라고 부른다. 기록에 의하면 셋슈는 약 12점의 단선형 방고도를 그렸으나, 현재 7여 점이 전하고 있다. 이 중 남송대 화가 하규(夏珪)를 모방한 <방하규 산수도-겨울>을 소개한다. 목우도처럼 부채꼴 테두리 안에 셋슈를, 테두리 밖에 하규의 이름을 써넣었다.
이 산수도의 독특한 지점은 화면 구성에 있다. 그림을 얼핏 보면 특별할 것 없는 구성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수를 뒤쪽에서 바라보고 있다. 화면은 주인공이, 혹은 관람자가 지금부터 앞으로 돌 것이라는 전조와 암시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독창적인 구성이 가능한 데에는 한쪽으로 치우치게 그리는 하규의 변각구도를 사용했기에 가능했다.
다만, 셋슈가 하규의 변각을 차용했지만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는 하규의 것과는 상이하다. 이 점은 이당을 모방한 목우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화면 전체인 사각의 틀은 이당과 하규를 존경해 그 뜻을 모방하지만, 부채꼴 테두리 안은 셋슈 자신이 그렸다는 선승으로서의 자주 의식이 내재돼 있다.
지미령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일본 교토 불교대학에서 일본 불교미술사를 전공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천대, 동국대 등에 출강했다. 일본 미술을 독특한 시각으로 연구하며, 아시아의 불교미술 교류에 관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