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기’ 잘되는 원효사 템플스테이

[무등등無等等, 광주 무등산] 무등산 원효사 주지 해청 스님

2024-01-26     송희원

원효 8경 

1경 무등명월(無等明月)   원효사에서 무등산 정상에 솟아오른 달을  바라보는 운치
2경 서석귀운(瑞石歸雲)   서석대에 넘실대는 뭉게구름의 모습
3경 삼전열적(蔘田烈蹟)   장불재의 삼밭실에 서려 있는 충장공의 전설
4경 원효폭포(元曉瀑布)   장쾌하게 쏟아지는 원효폭포의 물줄기
5경 원효모종(元曉暮鐘)   해 질 녘에 들려오는 원효사의 종소리
6경 의상모우(義湘暮雨)   의상봉에 내리는 저녁비
7경 안양노불(安養老佛)   무등산 안양사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염불소리
8경 만치초적(晩峙草笛)   늦재에서 들려오는 나무꾼들의 풀피리 소리

원효사 경내에 적혀 있는 원효사 일대의 아름다운 여덟 풍경을 기록한 ‘원효 8경’이다. 무등산 북쪽 원효봉 아래 자리한 원효사는 광주를 대표하는 천년고찰 중 하나다. 사찰 앞에는 의상봉과 정상의 서석대가 바라다보이고, 그 아래에는 원효계곡이 흐른다. 원효사 주지 해청 스님의 표현대로 “부처님이 의상 스님과 원효 스님을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다. 

“앉아서 무등산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져요. 겨울엔 멀리 정상의 설경을 보는 것도 멋지고요. 여름에는 ‘초록색이 이렇게 아름답구나’를 새삼 느껴요. 가을이 되면 파란 하늘을 뒤덮으며 떠 가는 구름이 기가 막히고, 밤하늘에 뜨는 달빛도 정말 예뻐요. 고요한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염불소리도 매력적이고요.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운무가 끼면 끼는 대로 아름답죠.”

해청 스님은 2019년 절에 오면서 가장 먼저 템플스테이를 추진했다.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아는 사람만 즐길 수 없다 생각했다. 원효사는 2021년 템플스테이 예비운영사찰이 된 지 1년 만에 운영사찰로 정식 지정됐다. 누각 원효루에서 바라본 무등산의 풍경이 알려지면서 ‘포토명당’이자 ‘멍때리기가 잘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특별한 홍보 없이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대웅전에서 걸어서 약 300m 떨어져 있는 산내 암자인 사자암을 템플스테이 방사로 리모델링했다. 

“아름다운 터가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게 제일 안타까웠어요. 어린 친구들은 이 경관을 보러 와요. 멍때리기도 좋고 산에 더 깊숙이 들어와서 산사 느낌이 난대요. 그런데 어른들은 이 좋은 걸 잘 못 느껴요. 먹고살기 바쁘니까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많이 놓치는 거예요. 정작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못 보잖아요?”

원효사 템플스테이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웰니스(wellness)’. 웰빙(well-being)과 건강(fitness) 합성어로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의미한다. ‘웰니스(wellness) - 건강한 휴식’ 휴식형 프로그램으로 자유일정을 보낸 뒤에는 주지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마련된다. ‘연꽃을 피워요(연등공양 부처님오신날 맞이)’, ‘원효사 스님과 함께 발우공양’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젊은 친구들이 멍때리기 좋은 절이라고 해요. 밖에서 하는 요가 같은 프로그램보다, 숲속에서 걷고 명상하고, 스님하고 차 마시고, 108배 하며 절에 있는 그대로를 체험하는 걸 더 색다르게 느끼고 좋아하더라고요. 이런 친구들에게 불교에 대한 첫인상을 잘 심어주면 집에 가서 혼자 명상도 해보고, 불교 공부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겠죠. 앞으로 이런 불교의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명상치유센터도 건립할 예정이에요.”

 

무등산의 불교 문화유산 담을 성보박물관

원효사는 사명(寺名)에 ‘원효(元曉)’가 들어가 있다. 원효대사가 작은 암자를 지어 기거했다고 해 원효암이라 지었다고 한다. 신라 지증왕~법흥왕 연간에 창건했다고 추정하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원효사와 관련해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종 25년(1530)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원효사를 무량사(無量寺)・천복사(薦福寺)・개룡사(開龍寺)와 함께 소개하면서 “무등산에 있다”는 내용이 기록됐다.

천년고찰인 원효사에는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 약사암 석조여래좌상과 같은 보물이 없다. 그러나 해학적인 동물의 모습을 뛰어난 조각기법으로 새긴 동부도, 만수사범종 등이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1980년에는 원효사 대웅전 신축 작업 중 청동불 입상, 소조불 등 1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것들로 원효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원효사의 유형문화재들을 보물로 만들기 위해 추진 중인데, 광주에는 전문가들이 많이 없어요. 문화재가 있으면 문화재 위원들이 와서 발굴조사도 하고 도와주는데 거꾸로 자료를 다 만들어서 접수해도 안 해줘요. 전라남도에는 본사가 5개나 있고 본사마다 보물이 어마어마하게 많잖아요. 그러니까 시 자체 도 자체에 그런 것들을 관리할 문화유산과가 있는데 광주는 없어요.”

해청 스님은 이 점을 안타까워한다. 광주 지역의 불교문화재에 대한 낮은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2021년에는 원효사와 전남대가 공동으로 주관한 ‘무등산 원효사의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여기서 스님은 무등산권역 불교문화유산을 담을 성보박물관 건립의 타당성을 피력했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앞에 가면 십신사지 탑이 있어요. 제자리에 안 있고 박물관에 있으니까 빛을 못 보는 거예요. 차라리 절터에 갖다 놓고 자료를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광주에 이런 절터가 있었다가 될 텐데 그것도 없어요.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낮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요. 지역 사찰들과 함께 성보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어요. 불교박물관을 만들고 그다음에 발굴 조사팀이 들어오면 그것만 해도 이미 광주 사람들이 새로운 걸 배우잖아요.”

 

욕심 없이 불사

불교박물관 건립 불사든, 유물들의 국가문화재 승격이든, 광주 사람들의 불교에 대한 낮은 인식을 높이는 게 우선돼야 한다. 해청 스님은 원효사가 가진 자원을 적극적으로 스토리텔링 해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소리꾼과 함께 노래 부르며 무등산을 거니는 ‘무등산 산책과 숲 체험놀이’, 원효사 무등산을 스토리텔링한 웹툰을 컬러링하는 체험인 ‘웹툰 원효 컬러링 스쿨’, 원효 스님의 이야기와 음악공연이 어우러지는 ‘산사이야기를 담은 원효콘서트’, ‘마당극 퍼포먼스’ 등을 전통산사 문화재 활용사업으로 지원받아 원효사와 무등산 일대에서 매년 성황리에 진행했다. 

“원효사 지구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주상절리가 있어요. 요 밑에 내려가면 광주호가 있거든요. 가사문학관도 있고요. 광주 사람들이 문화나 역사를 향유하려면 이쪽에 다 있는 거예요. 여기 있는 걸 활용해서 불교와 잘 결합하면 어마어마한 콘텐츠가 되죠.”

해청 스님은 원효사와 무등산이 가진 자연, 문화, 역사 자원을 활용해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갈 예정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쨌든 기도 마음이 있어야 하고 부처님을 잘 모셔야 원하는 게 조금씩 이뤄진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기도하거나 수행 쪽으로 많이 하고 제 내면을 바라볼 때 욕심이 들어갔느냐 안 들어가느냐를 살펴요.

원력을 세워서 해도 잘 안되면 하기 싫어지고 욕심이 생기는데 그걸 잘 다스려야죠. 욕심이 들어가면 꼭 그게 화가 되어 따라오더라고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욕심이 들어갔냐 안 들어갔느냐를 아주 섬세하게 관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욕심이 안 들어가면 일이 돼요.” 

“전문가가 와서 보더니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탑이라고 하더라고요. 원효사 내 유물들을 보물로 승격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