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라진 활판으로 책을 찍었습니다
노벨라 선집 발간,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2023년 11월 초, 활판인쇄로 중편소설이라는 뜻의 ‘노벨라’ 선집을 발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다빈치 출판사가 공동 제작한 ‘노벨라33’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등 외국인 저자부터 채만식의 ‘냉동어’까지 33권의 중편소설 선집이다.
관심이 가는 것은 활판인쇄로 제작했다는 점이다. 요즘 주된 방식은 오프셋(offset) 인쇄 방식이다. 아니 활판인쇄는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날 타자기와 요즘 컴퓨터 프린터의 차이와 비교할 수 있을까? 타자기는 금속활자로 종이에 글자를 ‘찍는다’면, 컴퓨터 프린트는 잉크를 종이에 ‘뿌린다’. 팔만대장경 같은 목판인쇄부터 금속활자를 조합해 인쇄하는 방식까지 불과 수십 년까지만 하더라도 인쇄의 역사는 활판인쇄였다.
왜 사라져간 활판인쇄를 되살리고자 했을까?
“오프셋 인쇄의 태생적 한계가 100% 먹 인쇄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일반인들이야 잘 모를 수 있지만, 특히 사진 같은 경우는 원하는 색깔을 낼 수 없습니다.”
오프셋 인쇄는 기본적으로 잉크를 종이에 뿌리는 방식이다 보니, 잉크가 글자의 모든 표면을 덮는 것이 아니다. 면 단위가 아니라 점 단위로 인쇄된다. 출판된 책을 돋보기로 살펴보면, 한 글자 안에도 조그마한 구멍이 숭숭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점과 점 사이에 빈 공간이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색깔의 차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점 단위 인쇄는 검정색에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100% 먹 인쇄는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장이 어긋나거나 오자가 많은 경우에 출판인쇄가 잘못됐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색깔은 그냥 넘어가요. 인쇄 제작상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죠. 출판 인생 30년인데, 그것을 극복하고 싶었어요.
또 잉크를 뿌리는 방식이다 보니 휘발성이 좋은 잉크를 사용하거나, 휘발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것을 섞게 마련이죠.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글자의 색이 날아가 버리죠. 오랫동안 남아있기 힘듭니다.”
“팔만대장경 식으로 만든 거예요”
박성식 대표는 올 연말, 마무리까지 하면 2024년 봄에는 30년 가까이 인생을 함께한 출판일을 접을 생각이다. 즉 작정하고 시작한 일이다.
“알라딘하고 계약한 다음에 2년 동안 미친 듯이 빠졌죠.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출판이 될지 몰랐죠. 어느 정도 자리잡히고 생각해보니, ‘내가 팔만대장경을 찍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질만 나무와 수지(樹脂)의 차이가 있을 뿐 결과적으로 팔만대장경 인쇄 방식과 비슷하다 한다.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활판인쇄의 기본은 활자(活字)다. 활자를 집자한 다음, 이것을 동판으로 뜨고 종이에 인쇄한다. 활자가 없으면 제작해야 하는데, 밀랍공의 역할이다. 그리고 활자를 종이와 문장에 맞게 배열하는데, 이는 식자공의 역할이다.
“충무로나 을지로를 돌아다니면서 살펴봤죠. 인쇄 기계는 한두 대 있는데, 금속활자가 충분치 않은 거예요. 그것을 만들만한 밀랍공도 없고, 식자공도 다들 연세가 있어서 활동이 불가능했죠.”
활판인쇄의 기반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때 만난 사람이 권용국(89), 김평진(74) 두 분이다. 첫 번째 닥친 문제가 금속활자의 수급 문제.
“활자가 없는데 곧바로 동판을 뜨면 어떨까요?”
“동은 물러서 안 돼요.”
“금속활자가 마모되거나 뭉개지면 어떻게 수정했어요?”
“수지로 보완했죠.”
수지는 플라스틱의 재료로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있다가, 고체로 변한다. 금속활자를 사용할 당시에도, 그림이나 선을 표현하거나 금속활자가 마모되는 경우 금속을 보충하는 재료로 사용됐다 한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컴퓨터로 글자를 조판한 다음, 수지판으로 조각해 종이에 인쇄할 수 있게 됐다.
팔만대장경의 경우 목판 하나에 수십, 수백 글자를 조각했다면, 이번 인쇄의 경우 하나의 수지판에 수많은 글자를 조각한 셈이다.
“이렇게 만들다 보니 ‘내가 새로운 인쇄를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이상한 것이 나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 말이죠. 처음에는 이런 책을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닌데, 처음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 나왔죠.”
금속활자를 식자해서 동판을 만들고 그것을 인쇄할 것이라 상상했는데, 그만 다른 방식으로 책이 인쇄되고 있었다.
“오프셋 인쇄도 여러 한계가 있지만, 활판인쇄도 단점이 있죠. 자간 조정을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입니다. 또 따옴표(,)나 물음표(?) 같은 것도 한자리를 차지해요. 지금과 비교하면 간격이 넓어지고 크기도 커지죠. 또 식자한 다음에 동판을 떠서 인쇄하는데 동판의 평면이 균일하지 못할 수도 있고, 동판이 무르기에 획이 가늘거나 날카로운 서체는 못 써요.
예를 들면 ‘핥’같은 글자는 세밀할 수 없죠. 획수가 많아지면 무뎌지고, 글씨가 두껍거나 동글동글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어요. 한마디로 디자인 면에서는 빵점이죠.”
그런데 수지판 인쇄는 디자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서체도 요즈음 컴퓨터에 사용되는 서체를 조금 수정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빵점이었던 활판인쇄의 디자인 문제, 서체 문제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다.
“종이만 버텨주면 500년 갑니다”
다시 먹 인쇄 이야기로 돌아간다. 박성식 대표는 100% 먹 인쇄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먹 잉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세 차례나 교체했습니다. 그리고도 수분을 조금 더 증발시켜 인쇄했죠. 그러니깐 색깔이 조금 나옵니다. 도로에 아스팔트 있죠? 그것을 종이에 먹인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음 문제는 종이. 요즘 출판물에 사용되는 코팅 용지는 처음부터 머릿속에 없었다. 최대한 비도공지(코팅이나 광택을 생략한 종이)를 사용했다. 종이가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지는 어때요?”
“비용도 문제고요(웃음). 한지처럼 이겨서 쓰는 종이는 오래 가지만, 잉크가 번져요. 정교하게 찍히지 않죠.”
활판인쇄가 갖는 단점 중 하나가 잉크가 미세하게 번지는 것이다. 박성식 대표는 인쇄 과정에서 조금만 글자가 번져도 처음부터 다시 찍었다.
“이럴 때, 인쇄를 오래 하신 숙련된 장인들의 역할이 남다릅니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책은 종이만 버텨주면 500년 간다고.”
그렇게 사라졌던 활판인쇄가 되살아났다. 수지 활판으로 이렇게 대량으로 인쇄한 것은 세계 최초라 한다.
다시 찍을 수 있을까?
“활판인쇄를 금속이 아닌 수지판으로 대량 제작한 것은 세계 최초일 겁니다. 그리고 최후가 되지 않을까요? 오프셋 인쇄의 생산성을 따라갈 수 없죠. 그런데 생산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 한 번쯤 생각했으면 해요.”
박성식 대표는 다들 미친 2년이었다 한다. 이것을 기획한 자신과 인쇄 장인을 포함해 이것을 출판하기로 한 알리단 대표, 편집자 13명, 번역자 20여 명도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일이라 한다.
박성식 대표는 이번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이벤트를 실시했다.
인쇄에 사용된 수지판을 하나씩 모든 전집에 끼워 넣었다. 전집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100% 활판으로 인쇄된 33권의 중편소설뿐 아니라 인쇄하기 위해 사용된 세계 최초이자 최후가 될 수 있는 수지판도 소장할 수 있다.
“저에게 이 선집은 경전입니다. 제 30년 인생의 모든 것이 들어있어요. 출판과 인쇄에 대해서 누가 물어본다면 이 책을 보라고 자신 있게 권할 겁니다.”
고등학교 시절 마지막 방학인 1982년 12월 한겨울 해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큰눈이 내려 인적조차 없는 가운데 무릎까지 차도록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피한 곳이 팔만대장경이 간직된 장경각이었다. 우연인지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았고, 동행한 친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다 용기를 내어 대장경 목판을 만져보았다.
멋모를 때의 치기였지만, 책이 출판되는 2년 동안 가장 많이 소환되는 기억이었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더 출판할 책이 없어요. 출판의 끝을 봤습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