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된 고승, 범일의 모든 것

우리나라에 선종의 뿌리를 심은 사굴산문의 개창자, 범일국사! 그는 선승인가, 신인가? 아직 숙제로 남아 있는 그의 생애를 복원하고, 유네스코 무형유산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된 사연을 밝히다!

2023-11-28     불광미디어

우리 불교의 여러 고승(高僧) 가운데 신기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 있다. 당나라에 유학하여 이 땅에 선종(禪宗)의 뿌리를 심은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창자 범일국사(梵日國師)가 그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범일의 신기한 이력이란 무엇일까? 바로 유네스코 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이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듯, 지장보살로 추앙되는 신라 승려 김지장이나 금산보개여래의 화신으로 여기는 의상대사처럼 불교에서는 고승을 부처님이나 보살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범일국사의 경우는 민간 신앙의 신으로 추앙된 독특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민중은 왜 그를 신으로 여긴 걸까? 불교계 전방위 지식인 자현 스님의 이번 신간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추적한다.

자현 지음 | 544쪽 | 올컬러 | 32,000원

범일국사에게는 ‘선승이자 산굴산문의 개창자’라는 역사적 측면과 ‘대관령 및 강릉단오제와 관련한 민간 신격화’라는 이중 구조가 발견된다. 그에 따라 이 책은 역사적 인물로서 범일국사의 생애를 복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현존하는 옛 기록을 치밀하게 살피고, 기존의 연구 성과와 중국의 지리적 측면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한 노력은 아직도 숙제로 남겨져 있는 범일의 생애를 좀 더 선명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한다.

 

영은사 범일국사진영(ⓒ월정사성보박물관)

 

시기적으로는 810년 1월부터 889년 4월에 이르는 80여 년의 기간, 지역적으로는 옛 명주 지역에서 중국 대륙에 이르는 광범위한 여정을 마무리하였다면, 이제 그것을 바탕으로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범일을 만날 차례이다.
저자 자현 스님은 범일국사가 강릉 지역의 대표적인 민간 신앙 제례인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된 배경과 과정을 분석한다. 그가 민간의 신앙과 어떻게 결합하여 주신으로 정립되었는지, 불교의 틀을 넘어 민간 신앙의 신으로 숭배되는 독특한 이력의 고승으로 여겨지게 된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강릉단오제 영신 행차(ⓒ강릉단오제위원회)

범일은 불교적으론 국사이지만, 민중에 의해서는 대관령을 관장하는 국사성황신,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기도 한 강릉단오제의 주신의 역할도 맡고 있다. 사찰에 갇힌 고목(古木)이 아닌, 민중의 요구에 의해 신이 된 범일의 모습은 민중에 발맞추어 나아가는 진정한 고승의 면모를 잘 나타내 준다.
우리 고대사에 속하는 인물로서 관련한 역사적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범일국사. 하지만 강릉단오제를 통해 그의 탁월한 수행력과 실천적 측면은 지금도 여여히 흐르고 있다. 어쩌면 범일국사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우리 불교의 대표 고승인지도 모른다.

 

대관령 옛길 국사성황사 전경(ⓒ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