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차차차茶茶茶] 수백 년 전승돼온 ‘선암사 야생차’

순천 향림사 승범 스님

2023-04-26     김남수

야생차밭

순천 선암사 스님들은 출가라는 큰 뜻을 지니고 선암사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차와 인연을 이어간다. 행자 시절부터 시작해 선암사 대중으로 사는 순간까지 차밭을 오가며, 매년 4월 말, 혹은 5월 초에 찻잎을 따 차를 만든다. 이렇게 내려온 시간이 수백 년이다. 

승범 스님도 그렇게 차를 알게 됐다. 매년 이뤄지는 차 울력에서 곁눈질로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스승인 지허 스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차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입니다. 예불을 드릴 때,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라고 하잖아요? ‘청정수를 올리오니 감로의 차로 변하게 하여’라는 뜻인데, 절에서는 매번 그렇게 합니다.”

선암사 선방 뒤에 아름다운 수각(水閣)이 있다. 지금은 4단인데, 얼마 전까지 3단이었다. 선암사 차밭을 통해 정수된 물은 나무줄기로 만든 관로를 따라 이곳으로 흐른다. 

“상단은 오로지 부처님께 올리는 청정수와 찻물로만 사용했죠. 중단 물이나 돼야, 스님네들이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물이야 다 같은 것이지만, 마음이 그렇다는 거죠.”

선암사 차의 특징을 말해주십사 하니, 제일 먼저 ‘야생차밭’을 이야기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으나, 선암사 차나무는 자생종이다. 근래 많은 차밭이 일본으로부터 온 차나무로 조성되기도 했다. 선암사 차나무는 그 옛날 어느 때, 인도 혹은 중국으로부터 넘어와 지금까지 내려왔다. 

뿌리를 옆으로 뻗는 차나무와 달리, 선암사 차나무는 땅 밑 1m 이상으로 뿌리를 내린다. 숱한 화재에도 수백 년 전통을 내려온 이유이다. 

“불이 나면 모두 타버리죠. 그런데 뿌리를 깊이 내린 차나무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다시 올라옵니다.”

“선암사 차는 수백 년 이어온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야생차밭에서 자란 차나무는 자생종입니다.”
‘불에 덖거나 볶으면, 찻잎의 녹색이 남아 있을 수 없다’ 한다. 차의 떫은맛이나 풋내가 이 과정에서 사라진다. 스님이 강조하는 또 하나는 유념이다. 

 

선암사 차의 전승

선암사 야생차밭의 차 수확량은 재배 차밭과 비교하면 10분의 1정도다. 그렇지만 수백 년 내려온 야생차밭은 ‘선암사를 차의 주산지, 본산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승범 스님은 선암사 차의 또 다른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우전차(雨前茶)’ 이야기를 꺼낸다. 

“세간에는 우전차를 제일로 치죠? 새순이고 하니 그렇겠죠. 그런데 선암사에는 우전차가 없어요. 차나무에서 새순이 돋지 않는데 어떻게 차를 만들겠어요? 선암사는 단 한 번도 우전차를 만들지 않았고, 곡우 전에 차를 만들기 위해 애써본 적도 없어요.”

세간에는 4월 20일 곡우 전과 후를 나누는데, 선암사는 그렇지 않단다. 대개 5월 초, 선암사 대중들이 한 번에 찻잎을 채취한다. 차에 거름을 주고 재배하면 당연히 우전차를 만들 수 있지만, 선암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초의 스님도 우전차를 말씀하셨고 역대 조사 스님들께 봄에 올리는 다례(茶禮)를 3월 3일 삼짇날에 하니, 선암사도 곡우 전에 차를 올리긴 합니다. 묵은 차를 올릴 수 없으니 새로 딴 찻잎으로 차를 올려야 하죠. 그런데 제대로 핀 차도 아니고, 양도 극히 드물어요. 밥으로 치면 설익은 밥이에요.”

그렇기에 선암사 차는 ‘녹차’니, ‘우전차’니 하는 분류법이 없다. 한 번만 제다(製茶)하는 단일 품목이다. “선암사에는 본디 ‘녹차’라는 말이 없어요. 그냥 ‘차’예요.”

 

차의 색, 향, 맛

“차는 마시기 전에 눈으로 먼저 보죠? 색과 향, 맛이 중요한데, 선암사 차는 녹색이 아니에요. 찻잎을 덖고 볶으면, 엽록소가 열에 반응을 일으켜 녹색이 나올 수 없습니다. 냄새는 ‘꼬시다’라 말하기도 하고, 떫은맛이 없어요.”

결국은 제다의 중요성을 말한다. 선암사는 장작으로 불을 놓기에, 덖고 볶는 과정을 8번, 9번 때로는 10번 한다. 불의 온도, 찻잎의 수분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고, 순간순간 판단해야 한다. 선암사는 차를 채취해 만들기까지 하루에 끝낸다. 나무 장작으로 불을 맞추는 것은 순간적 집중이 요구되는 일이다.

“온도에 맞추어 하는 초벌이 중요합니다. 생잎을 덖는 것은 수분과 엽록소를 제거하는 과정이죠. 차를 ‘덕석’에서 문지르는 ‘유념’은 두 번만 합니다. 두 번의 덖음과 유념을 통해 수분과 엽록소가 사라지죠. 이후에 불에 7번 정도 볶는데, 차를 건조하는 과정이죠. 그러면 표피와 속이 균질해집니다.”

승범 스님은 이렇게 ‘불에 덖거나 볶으면, 찻잎의 녹색이 남아 있을 수 없다’ 한다. 차의 떫은맛이나 풋내가 이 과정에서 사라진다. 스님이 강조하는 또 하나는 유념이다. 

“절집에 가면 보자기는 아름답고 얼마나 잘해 놓아요? 유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덕석’이 중요한데, 요즈음은 유념도 기계로 한다고 하데요? 차 덕석은 일반 짚으로 이은 덕석보다 더 촘촘하게 엮어야 해요. 요즘은 만드는 사람이 없으니 보기가 힘들어요. 대신 흰 천을 깔아 수분을 빼곤 합니다.”

스님은 선암사 행자 시절부터 40년간, 이외의 방법으로는 차를 만들지 않았다. 은사스님의 은사로부터 내려온 답습 과정이다. 이렇게 선암사 차의 제다는 야생차밭과 더불어 전승됐다. 이것도 선암사 차의 자부심이다.

선암사 수각(水閣). 상단의 물은 부처님 전 올리는 청수(淸水) 찻물로만 사용했다. 

 

차와 물

선암사 차밭 밑에 있는 칠전(七殿)에는 수각과 더불어 옛부터 내려온 차 솥, 다로(茶爐)가 보관돼 있다. 대중들은 1년에 한 번 있는 차 울력 때면, 비눗물에 세수도 하지 않고 모여 일을 시작한다. 

조선시대, 선암사 차는 궁궐에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궁궐에서 ‘1,000통을 만들라’ 하면, 선암사에서는 그 몇 배를 만들어야 했다. 부역 물품인데, 궁궐에만 올릴 수 없었다. 불교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것이 꼭 좋은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선암사 스님들은 부역을 중단시키기 위해 차밭을 여러 번 갈아엎었다 한다. 그런 시기를 거쳐, 공양물로 시작된 차는 현대에 이르러 기호 음료로 누구나 마실 수 있게 됐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옛적에는 석간수로 차를 공양했어요. 석간수는 돌 틈에서 나는 물인데, 받아서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에요. 석간수를 받아서 전라도 말로는 ‘엉구’라 하는데, 큰 항아리 단지에 담아놓습니다. 청명한 날 밤, 바깥에다 놓죠. 비 오는 날은 당연히, 안개 있는 날도 피했죠. 삼베나 모시를 뚜껑 대신 덮어, 최소한 하루나 많으면 3일 정수해서 차를 올리는 거죠. 그런 물이 없으면 산에서 정수된 물이나 우물물을 올렸습니다.”

승범 스님은 순천 도심의 향림사에서 소임을 맡은 후, “40년 만에 수돗물로 차를 마셨다” 한다. “수돗물은 약이 들어갔기에 기본적으로 정수 자체가 불가능한 물”이란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차나무를 관리하고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드는 과정을 제대로 알면, ‘차 한잔’이 수행의 극치인 선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 차의 시작을 수로왕 시절부터 따지면 2,000년입니다. 절집에서 차는 기호품이 아니라 수행의 동반자고 반려자입니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