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차차차茶茶茶] 포토에세이

물과 차를 품은 불(도자기)

2023-04-26     유동영
여주 신륵사 전통가마에 올해 첫 불을 넣은 조용준 작가가 다섯 번째 칸에 장작을 던지고 있다. 

물은 차의 몸이고
차는 물의 신이다.
- 초의 스님의 『동다송』에서

물과 차의 관계는 차를 마시기 위한 기본으로 말을 더하는 게 새삼스러울 따름이다. 다만 도자기는 사용상 편의성 때문에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수년 전 차를 즐기는 스님과 차를 마실 때의 일이다. 스님이 슬며시 내가 마시던 찻잔에 쇠숟가락을 넣었다 뺀 뒤 맛을 묻는 것이다. 차 맛이 탁해진 걸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잔을 바꿔서 마셔보게 했다. 쇠숟가락이 닿았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차 맛이 달랐다. 물과 잔의 관계를 느낀 신선한 경험이었다. 잔의 차이는 가격과는 별개였다. 자신이 사용해 보고 맞는 잔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서로 상극인 물과 불이 조화를 이루는 지점에서 말이다.

본문의 절반은 40년 이상 제다와 공부를 놓지 않는 유수용 선생의 말로 채웠다. 그를 말하는 몇 마디 수식어로는 겨우 이름 석 자를 전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포토에세이 40쪽에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유수용 선생의 차를 두고 쓴 시를 빌어 그를 소개했다.    

급한 일정에도 여주 고성도예의 조용준 작가를 찾아 소개해 주신 월간 『도예』의 이연주 편집장님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전한다.  

 

백자를 익히려면 1,350도의 하얀 불이어야 한다.

“다기는 흙이 설익으면 흙냄새가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고온에서 충분히 구워져야 한다. 그래야 차 맛만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다. 다기로 쓰는 도자기는 크게 청자와 백자 두 가지로 나뉘고, 그 사이 청자에 분을 바른 분청사기가 있다. 철분이 들어 있는 청자 흙은 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데, 철분이 빠진 순수 하얀색을 띠는 백자 흙은 고령이나 산청과 같은 한정된 곳에서만 나온다. 다관은 절수가 잘되어야 하고, 잔은 연잎처럼 살짝 휘게 만들어 입술에 자연스럽게 닿게 한다. 차의 깨끗한 맛을 즐기는 사람은 백자 잔을 좋아하고, 물이 스미면서 잔의 색이 변하는 모습을 즐기는 사람은 분청 다기를 쓴다. 여유롭게 천천히 여러 잔으로 나누어 마시는 사람은 작은 잔을 좋아하고, 좋은 맛을 길게 느끼고자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다소 큰 잔을 쓴다. 잔을 받치는 굽은 쉽게 쥘 수 있도록 적당히 높아야 사용이 편하다.” - 유수용

 

굴뚝으로 빠지던 불티들이 그린 불그림

차는 물의 조화이고 다기는 불의 조화다. 물과 불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 입 안에서 완성된다. 신륵사의 전통 장작가마가 올들어 처음으로 봉통에 불을 땠다. 6칸 봉 가운데 5칸에 150여 점의 도자기가 채워졌다. 작가는 이중투각 작업을 하는 도예가 조용준, 그의 아버지인 여주 도자기 명장 1호 조병호 그리고 달항아리 작가인 이모부 강신봉 등이다. 4월 14일 저녁 8시부터 넣기 시작한 불 때기는 16일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봉통과 첫 번째 칸 불은 경험 많은 아버지와 이모부가 주로 장작을 넣으며 불을 살폈다. 15일 저녁 늦은 시간에는 많은 동료 작가가 자리를 함께하며 말동무를 했다. 가마는 잠시나마 파티장이 되어 시끌벅적했다. 불은 모으고 끌어들이는 힘을 가졌다.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중견 작가들 모두 이번 불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빌었다. 문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 어려워진 판로다. 

 

선암사 선방 뒤뜰에 있는 4단 수각
오대산 서대 수정암 우통수

“물에도 무게가 있다. 실제 재보면 무게에 차이가 있다. 높은 계곡 골짜기에서 느리게 흐르는 물은 산소 공급이 잘된 좋은 물이다. 이런 물을 두고 나는 ‘마일리지가 쌓이지 않은 물’이라고 표현한다. 강으로 나온 물은 무게가 있다. 긴 물길을 거치면서 철분이 쌓이기 때문이다. 차를 우려내보면 물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산 위의 물은 차 색이 연하고 본연의 향을 살려주지만 철분이 많은 물은 차가 진하고 텁텁하다. 우통수 물은 차를 우려내기 좋은 최고의 물맛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물맛이다. 듣기로 송광사 방장 현봉 스님이 상원사 청량선원에서 공부할 때 하루도 빠짐없이 우통수 물을 보궁에 올렸다고 한다. 다만 현재 보수한 우통수에는 사각 우물을 만들어 방울방울 떨어지던 석간수 물길을 막아버렸다. 표지석에 적힌 당시 군수를 찾아가 원상복구를 요구해야 한다.” - 유수용

다산초당의 수대

다산은 우리나라 차의 중흥조다. 세종 대에는 궁중에서조차 차를 마시지 않았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나온다. 중후기 몇몇 선비가 음료로서 차를 이용하려 시도했지만, 다산처럼 깊이 공부하고 보급하지는 못했다. 다산이 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고 초당 서쪽 웅덩이를 파 약천을 만들었고, 마당에 놓인 돌에 물 끓이는 솥을 걸 수 있는 다조를 설치했다. 옆에 있는 너른 돌은 차를 마시는 탁자로 이용했다. 다산이 남긴 기록과 같은 다조는 현재 마당에 없기 때문에 요사이 다탁을 다조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연못 위쪽으로는 석가산을 정하고 그 위쪽의 물을 연못으로 끌어들였다. 일제 강점기 무렵에는 약천 외에도 이 연못 물맛이 좋았는지 일본인들은 이 물을 모레 틈에서 솟아나는 용천(湧泉)으로 보았다. 현재 약천은 복원을 잘못한 탓인지 아니면 너무 가문 탓인지 말라 있다. 

 

다수의 차인들이 이곳 화개 모암마을 차 씨를 받아 가 심었다.
화개에도 큰 기업에 납품하는 차가 제법 있다. 화개 정금마을 차밭

“내가 굳이 두 번 덖고 세 번 굽는 것은 차의 풋내를 없애기 위해서다. 야생에서 자란 차일수록 성질이 강해서 불을 잘 다스려 깊이 익히지 않으면 차가 가진 독성이 남아 있게 된다. 조선 중후기에 이미 우리나라 제다라는 게 끊겨서 민간에서는 단지 감기나 소화를 돕는 약으로 전해져 왔다. 화개에서 지금처럼 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 일이고 그전에는 ‘잭설(작설)’이라고 해서 한 번 찧은 뒤 돌배와 함께 발효시켜 감기약으로 썼다. 차를 즐겨 마시기 위해서는 이 약성을 적당히 줄여서 몸에 부담이 없게 해야 하고 이게 제다다. 풋내라는 게 처음 입 안에 넣었을 때 싱그러운 느낌으로 전해지는 향이다. 녹차를 즐기던 많은 스님이 녹차를 멀리하는 게 녹차의 냉한 특성 때문이라고 하는데 충분히 익힌 차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만나본 스님들 대부분이 풋내가 올라오는 녹차를 즐겼다.” - 유수용

풍화된 돌 틈에서 자란 차가 으뜸이라 했다. 화개 모암마을 차밭

다산이 차를 즐겨 마시긴 했으나 차가 가진 약성은 경계했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녹차의 강성은 자칫 위장에 강한 자극을 주고 정기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다산은 차의 냉한 성질과 떫은맛을 줄이며 단맛을 높이기 위해 세 번 이상 찌고 빻는 삼증삼쇄 또는 구증구포 제다법을 강조했다. 구증구포의 경우 꼭 아홉 번이 아닌 세 번 이상으로 보는 게 맞다. 무엇보다 당시는 잎차가 아닌 떡차를 만들어 마셨다. 차 순을 딴 뒤 하루 안에 세 번 찌고 세 번 볕에 말린다. 말린 차는 가늘게 빻아 돌 샘물로 반죽하고, 다시 진흙처럼 완전히 뭉크러지게 찧어 작은 떡으로 만든다. 기록에 의하면 다산의 구증구포 제다법은 초의 스님뿐만 아니라 보림사 스님들에게도 전해졌다. 재현되고 있는 보림사 옛차 청태전 제다법이 다산의 것과 같다. 

 

선운사 내에는 10만 평에 이르는 야생 상태의 차밭이 있다. 선운사 야생차

진벽제일(眞碧第一)    

유수용 선생이 나에게 차를 볶아 보내준 것이 벌써 삼십 년의 세월이라네. 내가 원광대학에서 끝고생을 할 때 순천에서 만든 명차 진벽이 나의 시름을 모두 녹여주었다. 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차가 있건만 나에게는 진벽이 지금까지도 항상 으뜸이라네. 그 그윽한 명차의 향기와 품격은 오직 신선만이 아는 경지야. 계묘년(2023년) 봄맞이 계절에 낙송암 소나무 아래서 쓰다. -도올 

위 시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진벽차를 만드는 유수용 선생에게 보낸 그림에 쓰여 있는 제화시다. 1990년, 하버드대 철학박사 학위를 가진 44살의 도올이 원광대 한의대에 편입한 소식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하동의 차 재배면적은 190만 평에 이른다. 화개의 차 시배지

천하의 도올이라 해도 6년 만에 한의학을 공부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도올은 이때 진벽차를 만나 위안을 받고 이 차의 한결같음에 감사하며 매해 그 뜻을 전하고 있다. 진벽차를 만들고 있는 유수용은 대학에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며 맺은 차와의 인연으로 졸업하자마자 운상다원으로 가서 운상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자신의 진벽차를 만들며 『장자』를 쌍계사 통광 스님에게, 『유식』은 송광사 지운 스님에게 배웠다. 무엇을 읽든 어떤 상황이 닥치든 흐트러짐이 없는 그를 보고 세인들은 문리가 트였다고 한다. 30년 넘게 동서양의 철학과 고전을 넘나들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차를 굽는 일 또한 이들과 함께한다. 내가 제대로 차 맛을 알고 다기를 접하며 물을 느낀 것은 모두 그를 통해서였다. 20여 년을 한결같이 도반이자 스승으로 서 있는 그에게 늘 감사한다.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