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병 벗어나는 지름길 닦아준 성철 스님

[근현대 스님들의 수행과 사상]

2023-05-06     효신 스님
성철 스님. 사진 성철사상연구원 제공

 

‘부처약[佛法]’ 처방한 성철 스님

사바세상은 달콤하지 않다. 부조리한 현실에 우리는 쉽게 지치고 병든다. 병든 우리 중생과는 달리 부처님은 이 세상 그대로가 환희로운 부처의 세계라 한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참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병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우리의 병증에 따라 팔만사천 가지 처방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부처님의 처방전을 받아든 중생들은 그것을 제대로 읽지 않거나, 혹은 읽기만 하고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약을 먹지 않으니 병이 나을 리가 없다. 이런 중생들에게 처방전에 따른 약을 복용시켜 불법(佛法)을 맛보게 한 분이 바로 성철(性徹, 1912~1993) 스님이다.  

성철 스님은 어떤 수식어, 부연 설명도 필요 없을 만큼 현대 한국불교 수행의 얼굴이다. 산중에 있으면서도 불교가 사회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일반인들의 직접적인 수행을 이끌어낸 힘은 매우 중요하고 강력하다. 수행에 있어 빈틈이 없었던 스님은 승속을 막론하여 상대에게 본인 스타일로 밀어붙였다. 의심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중생들에게 부처님이 처방하신 약을 두려움 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단련시켰다.

성철 스님은 먼저 우리가 불성의 존재인 부처임을 자각하게 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 주인공이길 거부하는 중생들을 향해 짧은 예화로 깨침을 줬다.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성철 스님이 지어낸 ‘아이와 스님의 대화’의 한 장면이다. 

어떤 아이가 자기 어머니가 점을 봤는데 “제 운명은 엉망이라 했다”며 풀이 죽어 스님에게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아이에게 손금을 봐주겠다고 하며 “이건 감정선, 이것은 사업선, 생명선이란다. 그럼 이제 주먹을 꼭 쥐어보렴. 얘야 네 그 손금들이 어디 있느냐?” “바로 제 손안에 있지요.” “그렇지! 바로 네 운명은 네 손안에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입에 달린 게 아니란다. 명심하렴.”

성철 스님은 이 아이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고 한다. 자기의 능력을 스스로 믿지 못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운명론자가 되어 남의 입에 자기 인생을 맡기는 어리석은 중생이 우리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법화경』의 ‘장자궁자(長者窮子) 비유’처럼, 본인이 왕손인 줄 모른다면 왕좌에 앉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때문에 스님은 중생들이 자기 자신이 부처임을 스스로 믿을 수 있도록 지도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우리도 똑같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도록 죽비를 들었다. 

성철 스님(좌)과 월간 「불광」 창간인 광덕 스님이 백련암에서 함께 있는 모습. 두 분은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사형사제지간이다.

 

108예불대참회

성철 스님이 제시한 수행의 첫걸음은 참회였다. 스님이 요구한 것은 개인적 참회가 아닌 일체중생을 위한 참회였다. 여기에 해당하는 참회법이 바로 ‘108예불대참회(이하 예참·禮懺)’로, 성철 스님에 의해 한국 사찰 법당에서 일상화됐다. “모든 중생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업장들, 잘못 보고 트집 잡고 비방하고 나[我]와 법(法)을 집착하여 망견을 내던 모든 업장이 남김없이 소멸되어, 생각 생각 큰 지혜가 법계에 퍼져 모든 중생 빠짐없이 건져지이다”라는 「예불대참회문」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아닌 일체중생의 죄를 참회한다. 기존의 108배는 “자신이 지은 죄만 참회”한다면, 성철 스님이 행하게 한 예참은 “남이 지은 죄도 참회”하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이 진정한 수행자라고 했다.  

그래서 스님은 “일체중생의 죄과는 곧 자기의 죄과이니, 일체중생을 위하여 매일 백팔참회(百八懺悔)를 6번 하되 평생토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행한다. 건강과 기타 수도에 지장이 생길 때는 모두 자기 업과이니, 일주일 이상 하루에 3,000배로 특별기도를 한다”를 스스로 행하고 가르쳤다. 이 실참은 1947년 봉암사 결사(‘부처님 법답게 살자’)의 청규에도 적용됐다. 

‘중생이란 본디 업을 짓는 존재인데 매일 참회할 필요가 있느냐’는 행자의 질문에 성철 스님은 “마당에 낙엽이 떨어졌을 때 바로 빗자루로 쓸거나 쓸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다. 매일 비질하다 보면 깨끗해지는 날이 언젠가는 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철 스님이 이렇게 참회를 강조한 이유는 단순히 자비의 영역뿐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는 무아로 향하는 공(空)을 체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는 혜국 스님의 회고에서도 확인된다. 다음은 성철, 혜국 스님의 문답이다.

“니, 벼락 맞으면서도 화두 안 버릴 자신 있나?” “없습니다. 그런 신심이 안 나더라도 노력은 하겠습니다.” “그럼 니는 신심을 다지기 위해 하루 5,000배 ‘예참기도’를 3.7(21)일 해라.” 

성철 스님이 내린 숙제를 마친 혜국 스님은 “7만 배를 하고 나니 ‘나’라고 하는 존재는 없어지고 신심이 절로 났다. 그건 안 해본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라고 회고했다. 진실로 이것은 예참을 행한 모든 이가 겪는 체험으로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르는’ 일이다.  

창원에 뇌성마비를 앓는 7살 여자아이가 있었다. 팔다리가 마비되고 멋대로 돌아가며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는 상태였다. 병원에서마저 이 아이를 포기하자,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좋은 법문이라도 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죽어가는 어린 딸을 등에 업고 백련암으로 왔다. 하지만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3,000배를 통과해야만 했다. 온몸이 뒤틀려 나무상자 같은 형상인 아이에게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몸을 굽히고 일어나게 하여 4일 동안 3,000배를 마치게 했다. 마당에서 성철 스님을 보자마자 아이는 자신의 두려움을 토해냈다.

“스님, 저 죽는대요. 언제 죽나요?” “그래? 그라믄 오늘 저녁에 죽어라.” “그럼, 저 어디 가서 죽을까요?” “너거 집에 가서 죽어라.” “우리 집에는 돈도 없고 어차피 죽으면 여기서 49재를 지낼 텐데, 저는 여기서 죽을랍니더.” “야이, 가시나야. 니는 오래 살끼다. 그라고 니는 하루에 1,000배씩 꼭 예참 절을 하거래이.”

성철 스님의 숙제를 받은 아이는 매일 실행했고, 훗날 홍대 출신의 유명한 한국화가가 됐다. 뇌성마비 장애인 한경혜 화백이다. 그녀는 26세였던 2000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 칼라파타르산 정상에도 올랐다. 정상에서 “한경혜, 너는 네 인생의 주인공이야! 엄마, 사랑하는 내 동생, 정말 사랑해” 이렇게 외쳤다. 스님의 처방전대로 잘 복용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된 사례다. 

해인사에 모셔진 성철 스님 부도 

 

일체중생 위한 참회는 곧 최상의 불공

성철 스님은 강조했다. “나도 새벽에 꼭 108예참을 한다. 그 목적이 어디 있는가? 시작의 조건은 나를 위해 절하지 않는 데 있다. ‘내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하옴은 저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에 나길 구함이 아니요, 오직 모든 중생이 함께 무상보리 얻어지는 데 있음이오’라는 예참 서문처럼, 이제 발심하여 108배를 함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를 위하는 데 있지 않다.” 다른 이를 위한 참회가 수행의 진정한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일체중생을 위한 참회는 곧 최상의 불공(佛供)으로 연결된다고 가르쳤다. 

성철 스님이 알려준 중생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공법은 너무 쉽고 간단하다. 조석으로 부처님께 예불하면서 “일체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축원하면 된다. “일체중생을 위해 사는 사람(다른 이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면 저절로 중생에서 벗어나 부처의 길로 가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부처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이 바로 불공이라고 스님은 가르쳤다.

성철 스님이 가르친 불공법, 즉 일체중생을 향한 회향은 일반인들도 감동해 대중화를 이뤘고, 사람들은 자기의 보시행을 드러내지 않는 무주상(無主相)보시의 길을 걷게 됐다. 스님은 “참으로 불공이란 ‘남모르게 도와주는 것’임을 명심하고, 또 남을 아무리 많이 도와줬을지라도 입으로 자랑한다면 몸과 마음과 물질로 좋은 보시를 행하고 오히려 그 공덕을 스스로 부숴버리는 것”이라 했다. 그러기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데 그치지 말고 ‘왼손이 하는 일을 왼손 자체도 모르게’ 해야 함”을 당부했다. 이것이 실질적인 불공이고 보시라고 했다. 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불자들은 선행을 하고도 드러내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불공드리고 있다. 

우리가 중생병을 고치기 위해 스님으로부터 받은 ‘부처약’은 일체중생을 위하는 데 있었다. 내 이익을 떠나 베풀겠다는 마음이 바로 중생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임을 깨우쳐줬다. “지옥이란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구절처럼, 성철 스님은 일체중생을 향한 마음이 곧 부처의 삶임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스님이 수행자에게 특히 강조한 것은 계행 중 ‘금욕’이었다. 스님은 “수도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은 버릴지언정 색(色)은 범하지 않아야 하는데, 만약 이성을 가까이하면 결국은 서로 죽고 마는 것으로, 범과 같이 무서워하고 독사같이 피하여야 한다”며 무게를 뒀다. “색욕을 끊지 못하면 항상 애욕만 머리에 가득 차서 도(道)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며 스님은 반드시 계행을 지키도록 당부했다. 그렇지 않다면 “똥 그릇에 물을 담으면 똥물이 되고 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스님은 “여자의 몸은 그림자도 닿지 않으며, 중생의 고기를 어찌 입에 댈 것이며, 깨끗한 시주물이라도 화살인 듯 피하고, 부귀영화는 원수 보듯”이라고 세운 스님의 발원문대로 한평생 청정하게 정진하며 중생들을 부처의 길로 이끈 선승이었다. 

참회와 불공, 일체중생을 위한 참회와 기도(불공)는 중생병을 치료하는 최고의 부처약이니, 영원한 자유를 위해 성철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당장 실행에 옮기고자 한다.  

“과거미래현재의 부처님들은 
시방세계 다함없는 중생들에게 가없고 한량없는 공덕해(功德海)이시니 
제가 이제 목숨 바쳐 절하옵니다.”
 __ 「예불대참회문」 중에서 

 

효신 스님
동국대 강사. 철학과 국어학, 불교를 전공했으며 인문학을 통한 경전 풀어쓰기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