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팔공산] 동화사, 산중 장터 ‘승시(僧市)’

2022-11-30     불광미디어
동화사 영산전에 그려져 있는 시렴인(時念人) 벽화
사진 유동영

팔공산 동화사는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제12회 팔공산 산중 장터 승시(僧市)’ 축제를 진행했다. 동화사 ‘승시 축제’는 예부터 전해오는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는 스님들의 ‘산중 장터’를 재현하고, 사찰의 문화와 전통을 시민들과 계승하는 행사로 ‘씨름대회’, ‘사찰음식 체험’,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사찰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곳이고 수행처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한 사찰에 스님들이 수백, 수천 명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분명 ‘스님들의 시장’이 형성됐을 것이다. 

동화사는 10월, ‘팔공산 산중 장터, 승시’를 개최한다. 베풂과 나눔 그리고 어울림의 축제다. 사진 동화사 제공
사진 동화사 제공

17세기 유학자 정시한(1625~1707년)이 지은 『산중일기』라는 책에는 동화사에 ‘승시’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기록이 나온다. 정시한은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사찰을 답사했는데, 1688년 경북 일대의 사찰에 머물렀다. 그해 6월 2일(음력) 동화사에 도착해, 산내 암자인 염불암에서 6월 4일부터 8월 8일까지 머물고 8월 20일에서야 동화사를 떠났다. 두 달 가까이 동화사 산중에 묵으며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당시 사찰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높은 책이다. 

“경숙이를 큰절 불존방으로 보내, 여민 스님에게 양식을 팔 것인지 물어보게 했다(6월 19일)”, “아침 식사 뒤 경숙이가 큰절에 내려가서 저녁 식사 후 여민 스님의 상좌 원응과 함께 쌀 일곱 말을 가져왔다. 이것은 목면을 팔아 산 것으로 방아를 찧은 쌀이다(6월 21일)”라는 기록처럼 동화사에서 목면과 쌀을 물물교환한 기록이 있다. 

“경숙이는 큰절에 내려가 담뱃대 한 개와 부채 한 자루를 팔아서 흑책지(黑冊紙) 한 장을 사 왔다(7월 14일)”, “경숙이는 큰절에 가서 여민 스님이 보낸 지진 된장과 도좌반장(途佐飯醬)을 갖고 왔다(7월 21일)”처럼 쌀뿐 아니라 담뱃대, 된장 등도 교환하는 재밌는 풍경도 보인다. 정시한과 일행은 사찰에 머물 때 동화사에서 제공한 의식주로 해결하기도 하지만, 필요한 물품은 본인이 갖고 온 물품과 직접 교환한다.

사진 동화사 제공

승시의 하이라이트는 스님들도 참여하는 ‘씨름대회’다. 동화사 영산전 한쪽 벽에 두 분의 스님이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한글로 ‘시렴한다’라는 글씨와 한자로는 ‘시념인(時念人)’이 적혀 있다. 사진 위로 ‘적구리(適口理)’라는 글이 있고, 옷이 걸려 있는데, 아마도 씨름하는 스님들의 저고리인 듯하다. 동화사 씨름대회의 모티브다.

이처럼 동화사 승시 축제는 팔공산의 역사와 문화를 축제 형식으로 시민들과 공유한다. 유흥 위주의 일반 축제와 달리 베풂과 나눔, 어울림의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승시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스님들의 ‘씨름’이다. 전통을 재현하면서, 팔공산의 역사와 문화를 시민들과 공유한다. 사진 동화사 제공
사진 동화사 제공

 

참고자료. 정시한 저, 신대현 역, 『산중일기』, 혜안,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