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손택수 ‘있는 그대로~’
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있는 그대로, 라는 말
_손택수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뭐냐면 있는 그대로더라
나이테를 보면서 연못의 파문을, 지문을,
턴테이블을, 높은음자리표와 자전거 바퀴를
연상하는 것도 좋으나
그도 결국은
나이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은 못하더라
누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평화 없이는 비둘기를 보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도 없지
나무와 풀과 새의 있는 그대로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졌나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뭐냐면,
너의 눈망울을 있는 그대로 더는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더라
나의 공부는 모두 외면을 위한 것이었는지
있는 그대로, 참으로
아득하기만 한 말
(손택수 시집,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창비 2020, 15쪽)
[감상]
팔정도의 ‘바른 견해’는 곧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면 ‘사성제(四聖諦)’이기 때문에, 사성제를 바르게 아는 것을 ‘바른 견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본다고 말하지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봅니다. 잘생겼다, 예쁘다, 크다, 작다 등이 모두 자기 생각이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눈으로 보고 인지하고 판단하고 분별한 것을 진실이라고 착각하고 고집합니다.
시인들은 게다가 비유로써 보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 연못의 파문, 지문, 턴테이블, 높은음자리, 자전거 바퀴 등으로 연결해 보는 것이지요. 손택수 시인은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떤 비유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이미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부터 멀어졌음을 알아차립니다.
불교 수행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이 위빠사나(Vipassana)입니다.
오늘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도록 하지요. 있는 그대로 보면 세상 모든 것이 나름대로 의미 있고 중요하며 여법(如法)합니다.
동명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