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기고 염원하다,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과 6년간의 인연

천년의 팔만대장경이 건넨 무언의 설법

2022-09-28     준한 스님

2007년 3월, 청소 당번

해인사 강원(승가대학)에 입방했다. 전국 본말사에서 모인 해인사 해병대(?) 지원 스님은 총 33명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모두 뒤로하고, 입산 순서대로 형과 아우가 되는 승가 공동체다. ‘해병대 잡는 해인사’라는 악명을 가진 소위 사관학교 스타일의 승가대학이 바로 해인사 강원이다. 

덕숭총림 수덕사에서 행자 생활한 필자는 방장스님의 낚싯줄에 걸려, 해인사로 향하는 걸망을 쌌다. “해인사 가서 공부해야 중의 기본 자질을 갖출 수 있다”라는 말씀에 해인사 입방 결심을 한 것이다.

입방한 지 일주일째 될 무렵. 매주 일요일 도량 대청소를 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보호하는 장경판전 앞에 전 대중이 집합했다. 인원 파악 후 각자 청소구역이 배정됐는데, 우리 도반 33명 중 필자가 팔만대장경 청소 당번이 된 것이다.

‘Oh my Buddha! 팔만대장경이 내 청소구역이 되다니!’ 

매주 일요일 아침, 장경판전이 필자의 청소 놀이터가 된 것이다. 유유자적 판전을 누비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청소’ 시간을 가지던 중, 한쪽 구석에 앉아 빗자루를 내려놓고 해인사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쉬고 있었다. 뒤에서 갑자기 장주스님의 대갈일성(大喝一聲)이 들려왔다. 수십 년간 팔만대장경을 지키는 호위무사 대장 노스님이셨다.

“네 이놈! 청소도 안 하고 거기 앉아서 뭐 하는 거냐!”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뛰어오시더니 마당 빗자루로 사정없이 내 등짝을 후려치셨다. “잘못했습니다. 스님!” 하며 나는 도망치고, 노스님은 빗자루를 들고 내 등 뒤를 술래잡기하듯 쫓아오셨다.

그렇게 해인사 팔만대장경 천년의 역사 속에 한 줄을 더 이어 쓰게 됐고, “부지런히 청소 수행을 하라!”는 장주스님의 일갈이 마음 병에 꽂힌 장침이 돼 아직도 필자의 삶에 선지식으로 살아 있다.

 

2008년 3월, 소방 훈련

매일 아침 6시 강원 1, 2년 차 스님들 50여 명이 함께 사용하는 관음전 대방에서는 전 대중이 모두 모여 발우공양을 한다. 사중의 모든 스님이 같은 시간에 한방에 모여 전통식으로 식사를 하는 의식이다. 먹는 것도 수행으로 여겨왔던 부처님 가르침을 잇는 수행 전통이다. 

발우공양이 끝나기 직전, 오늘은 주지스님께서 한 말씀 하신다.

“며칠 전, 대한민국 국보 1호인 남대문이 불타버리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이나 내일 중 소방 훈련이 있을 예정이니 대중스님들은 인지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해인사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사부대중이 모여 소방 훈련 연습을 한다. 매뉴얼에 따라 각자 위치와 역할이 분담되고, 일사불란하게 화재에 대처하는 연습이다. 천년의 역사를 견뎌온 찬란한 보물인데 어찌 우리 후손들이 가볍게 여길 수 있으랴.

오후 2시경, 해우소를 나와 관음전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운판 치는 소리가 사납게 울리며 한 스님이 울부짖는다. 

“불이야! 불이야!” 

어느덧 수십 명의 스님들이 다 같이 불이야 소리를 지르며 처소에서 문을 박차고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의 신속한 발걸음은 한곳을 향한다. 바로 ‘팔만대장경 장경판전’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에 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유일한 보물, 한민족 역사 최고의 보물 중 하나인 해인사 팔만대장경. 

우리 스님들은 전속력을 다해 팔만대장경 뒤 소나무 숲 언덕으로 뛰어갔다. 판전 뒤에는 열 개가 넘는 대형 소방호스가 준비돼 있고, 우리는 매뉴얼대로 각자의 위치에 일사불란하게 자리 잡고 대기한다.

“돌리세요!”라는 구호에 맞춰 소화수 레버를 돌리는 소임자가 레버를 왼쪽으로 3번 반을 돌리면, 한 사람은 긴 호스를 앞으로 쭉 펴주고, 호스 분사기를 잡은 마지막 사람이 물줄기를 팔만대장경을 향해 쏴주는 것이다.

한편 판전 오른쪽 언덕에서는 KBS, MBC 등 굵직굵직한 방송국이 이 장면을 경쟁하듯 촬영 중이었다. 우리나라 국보 ‘팔만대장경’은 과연 화재에 안전한가? 당시 남대문이 화재로 전소하면서, 문화재 화재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최고로 고조돼 있던 때였다.

소방호스 분사 담당이었던 필자는 카메라들이 운집해 있는 장소 바로 앞쪽 제일 가까운 호스 담당이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소방호스를 팔만대장경을 향해 조준했다. 맨 첫 스님이 레버를 돌리기 시작하면 강력한 물줄기가 소방호스를 따라 조준 발사되는데, 아뿔사! 우리 팀 레버 돌리기 담당이었던 도반스님이 실수로 레버를 네 바퀴나 돌린 것이었다. 엄청나게 강력한 물이 터져 나오는데 그 힘이 너무 강력해서 호스를 놓칠 위기에 처했다. 

아찔한 상황이었다. 호스를 놓치게 되면 강력한 물줄기 압력 때문에 호스가 마치 미친 뱀처럼 춤을 추며 다른 소방팀들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역대 조상님들의 이름을 다 걸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호스를 사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몇 초가 흘렀을까… 고무신을 신은 두 발은 질척해진 땅에 깊숙이 박혀 있었고, 조상님들의 이름을 걸고 해인사 팔만대장경 1번 소방호스를 지켜냈다. 

필자가 만약 호스를 놓쳐 소방훈련장이 난장판이 돼 버렸다면, “아… 역시 해인사도 화재에 제대로 대비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전국에 방영되는 9시 뉴스에 멘트가 나갔을 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해인사는 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 9번의 큰불이 났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팔만대장경은 여태 한 번도 화마에 걸리지 않고 지금까지 잘 보존된 걸까? 불보살님의 가피일까? 천년 전 몽골의 침략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의 무한한 신심과 원력이었을까? 우리 스님네들이 목숨 걸고 지켜내려는 의지 덕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어쩌다 일어난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을까?

부처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은 성주괴공(成住壞空). 즉, 이루어진 모든 것은 머물다 곧 흩어지고 결국 무너져 공으로 돌아간다. 천년을 버텨온 팔만대장경 또한 언젠가는 공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장경의 요체도 바로 이것이다. 만법이 무상해 항상 변하고 변하는데 팔만대장경이라고 사라지지 않으랴. 우리는 팔만대장경을 최선을 다해 보존함과 동시에, 대장경이 전하는 부처님 가르침을 더욱 소중하게 여겨 스스로 자기 본성을 깨달아 널리 생명을 이롭게 하겠다는 원력으로 팔만대장경의 유훈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2009년 6월, 발심

해인사 생활 3년 차, 강원 3년 차가 되면 고참 스님이 돼 어느 정도 자유가 생긴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전 11시 반. 필자는 항상 팔만대장경 뒷길을 따라 숨겨진, 스님들만 다니는 길을 산책했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경관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는 내가 항상 앉아서 쉬는 공간이 있다. 해인사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포인트(view point)’다.

그날도 그곳에 앉아 편안하게 숨 쉬고 있는데, 문득 장경판전의 장엄한 기와지붕에 마음이 꽂혔다. 순간 갑자기 마음의 눈이 열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기와의 뒷면이 보였다. 온몸에 가느다란 전율이 일어나며 여태껏 보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기와의 엄청난 무게를 느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와 하나하나에 각자의 소원들을 적어 놓았는가. 한옥의 멋진 기와지붕 이면에는 사람들의 아픔과 불안과 걱정과 희망이 녹아 있는 소원들이 가득 적혀져 있다. 그 만큼의 무게가 법당 건물을 지탱하고 있음을 보게 된 것이었다.

몸서리칠 정도의 깨달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났다. 저 만큼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강인한 구도심, 자비심, 이타행이 과연 나에게 있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밥은 없다. 이렇게 우리가 먹고 자고 오롯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건, 저 많은 사람의 소원 위에 작은 정성들이 모여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 가정에 스님이 나오면 9대가 편안해진다는 말을 가끔 들었다. 그것은 그 스님이 치열한 수행을 통해 큰 도를 이뤘을 때의 이야기다. 부처님 한 사람의 큰 깨달음으로 2,500년이 넘도록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었는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맞는 이야기다. 9대가 아니라, 온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수행이다. 

그렇지 않고 스님이라는 자만에 빠지고, 받는 삶에 익숙해져 자비심이 눈곱만치도 없다면 이 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천년의 팔만대장경이 필자에게 무언의 설법을 하고 있었다. 

준한아!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그릇이 되어라. 
편안함에 취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정진하라!
그리고 그 힘과 지혜를 널리 이롭게 펼쳐야 한다.

어느덧 한 줄기의 눈물이 뺨에 흐르고, 다시 한번 큰 발심을 하게 됐다. 

부처님, 가르침, 그리고 화합하는 우리의 승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꼭 널리 회향하는 제자가 돼 부처님과
역대 선지식들의 큰 뜻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준한  스님
미국 유학 중 부처님 법을 만나 화계사로 출가했다. 수덕사에서 행자 생활을 마치고 해인사에서 6년간 수행했다. 현재 소백산 양백정사와 서울 홍대선원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