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김명인 ‘주름’
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주름
_김명인
나이답지 않게 팽팽한 얼굴을 쳐다보다
눈가장이에 더께 진 잔주름을 발견하지만
다독일수록 엷어지는 것도 아닌데
목덜미까지 파고든 몇 가닥 실금 가리려 애쓰는 건
그것이 조락을 아로새긴다는 확신 때문,
아무리 변죽을 두드리며 달래더라도 주름에게
하루하루란 윤택한 시간이 아니다
쏟아져 내리는 여울처럼 시원하던 복근이
어느 날 이마며 두 볼에도 흉물스럽게 옮겨 앉는다
손금 하나로 골목을 주름잡았다는 그를 볼 때마다
잔골목이 하도 많은 동네라서 길 잃기 십상인
나도 맨발인가, 아기는 쪼글쪼글한 주름
발바닥까지 휘감은 채 태어난다
울음을 터트리며 종주먹질해대는 말년이 아니더라도
주름은 누구의 것이든 삭은 동아줄인 것을,
그걸 잡고 우리 모두 또 다른 세상으로 주름져간다
주름투성이의 손바닥을 옴켜쥐고
저 세상의 아기 하나 지금 막 요람에서 돌아눕는다
(김명인 시집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문학과지성사 2018)
[감상]
2019년 2월 19일 김명인 시인을 오랜만에 뵈었습니다. 1946년생이시니 칠십 대이신데도 놀라울 정도로 젊어 보이시는 얼굴이었습니다. 아무리 젊어 보여도 늙어가는 육체에 대한 자각은 없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시인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이 나이답지 않게 팽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찌 세월의 힘이 자신의 얼굴만 피해가겠습니까? 그는 눈가장이에 더께 진 잔주름을 발견합니다. 애써 잔주름을 감추고 싶고, 목덜미까지 파고든 몇 가닥 실금 가리고 싶은 것은 주름이 자신의 조락을 새기고 있다고 여긴 까닭일 겁니다.
시인은 묘하게 잔 골목이 유독 많은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실금이 무수히 많이 뻗은 발바닥처럼 동네는 이리저리 수많은 골목길을 금그어 놓았습니다. 그 골목길 같은 발바닥으로 아기는 태어났고, 그 실금들이 몇십 년 동안 자라서 얼굴에 제법 굵은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주름은 누구의 것이든 삭은 동아줄인 것을” 확인하면서, 그 삭은 동아줄을 잡고 우리는 모두 다른 세상으로 주름져간답니다.
주름이란 무엇일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피부의 탄력성도 떨어지면, 그 탄력이 떨어진 만큼 주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름은 자연의 흐름과도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려는 인간의 노력이야 무에 비판할 것 있겠습니까. 다만 자연의 흐름인 주름을 너무 안타까워하지는 않도록 하지요. 저분의 연륜이 저렇게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표현되었구나 생각하면 그 주름도 아름답습니다.
1990년대 말쯤이었을 겁니다. 영화 <리틀붓다>를 호암아트홀에서 보았는데요. 마지막 장면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노스님이 모래만다라를 그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때 노스님의 주름살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우리가 늙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면, 우리의 주름살도 아름답습니다.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