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와 봄여름가을겨울’ 집사스님이 찾은 행복
서울국제도서전 저자 강연 ‘고양이가 주는 행복~’ 보경 스님
여기 뻔뻔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그리고 팔자에도 없는(?) 집사를 하게 된 스님도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 사찰 생활을 정리하고 산중 암자로 온 스님의 2017년 겨울은 특별했다. 송광사 탑전을 찾아온 누런 고양이 한 마리에게 건넨 우유와 토스트가 이 경이로운 인연의 매듭을 묶었다. 고양이가, 스님을, 집사로 간택(?)한 것이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고양이가 스님에게 왔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라는 절집 인연은 질겼다. 주린 배만 채우고 떠나리라 여겼던 고양이는 탑전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다. 내칠 수도 없는 노릇.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져서 며칠을 안 보이면 스님은 안절부절했고, 스님이 늦게 암자로 돌아올 때면 고양이는 멀리서부터 마중 나왔다. 서로에게 때론 무심하게 때론 살갑게 인연을 이어왔다. 그렇게 스님과 고양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오가며 햇수로 6년을 동행했다.
서울국제도서전 마지막 날이던 6월 5일, 송광사 탑전의 보경 스님이 코엑스에 등장(?)했다. 고양이 시리즈 3탄!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 저자 강연을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고양이는 탑전에 남았지만, ‘고양이 집사’ 6년 차인 스님이 바랑에 담아온 ‘고양이와 행복찾기 이야기’는 유쾌했다.
| 노란 고양이와 인연의 첫 매듭
고양이와 산다는 것과 고양이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고양이 집사’로 간택(?) 받은 보경 스님은 뜻밖의 인연으로 고양이와 삶을 사유했다. 한 마디로 고양이를 관찰하며 일상에서 철학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고양이를 읽는 시간』을 냈고, 이번에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불광출판사, 2022)를 썼다. 2년에 한 권꼴로 총 3권의 글을 썼다.
“모든 일을 유심히 보고 관찰하면 철학이 나옵니다. 저도 어느 날 고양이를 발견해서 함께 사는데, 고양이를 보면서 하나의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되더라고요.”
서울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길목, 수많은 박물관과 전시관이 있는 그곳에 송광사 도심포교당 법련사가 있다. 보경 스님은 이곳에서 12년간 사찰 살림을 맡았다. 14년 만에 송광사로 내려갔고, 탑전이라는 암자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산다’라고 생각했어요. 먹는 것도 스스로 해결하며 살았고, 처음에는 고립감도 있었죠. 다 참겠는데, 더운 여름에 도시에서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정말 참기 어려웠어요(웃음).”
탑전에 내려갔을 때가 8월, 늦여름이었다. 참기 힘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유혹을 견디며 독서 등을 했다. 이른 추위가 기승이던 12월 말, 숙명(?)처럼 고양이가 스님의 삶으로 걸어들어왔다.
“추웠어요. 저녁 무렵에 고양이 한 마리가 방에 들어가는 통로에서 절 올려다보면서 ‘야옹, 야옹’ 거리더라고요. 첫눈에 반했습니다. 예뻤어요.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추운 겨울에 고양이를 그냥 보내면 벌 받을 것 같았어요. 급한 대로 먹을거리를 챙겨 줬어요.”
고양이가, 스님을, 집사로 간택한 순간이다. 스님은 고양이가 추울까 싶어 내복을 깐 사과박스를 내어줬다.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사과박스로 들어갔다. 다음 날, 고양이는 떠나지 않았다. 스님을 ‘고양이 집사’로 정했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그때부터 스님의 일상은 사유는 더 풍부해졌다.
“가장 가까운 벌교로 나가서 사료도 사고 먹이 그릇도 사서 돌보기 시작했어요. 겨울 지나고 날 풀리면 떠날 줄 알았는데…. 이름도 따로 짓지 않고 ‘냥이’라고 불렀어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거죠. ‘사랑’이라는 무형의 끈이에요.”
| 고양이와 산다는 것, 고양이처럼 산다는 것
보경 스님은 가만히 ‘냥이’를 들여다봤다. ‘뭔가 되겠다!’ 고양이를 알아가는 과정들, 보고 느낀 점들을 글로 쓰고자 했다. 고양이와 첫 겨울을 나면서 알고 느낀 것들을 글로 풀었다. 첫 번째 책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의 주제가 잡혔다. 바라보기와 기다리기다.
“(냥이가) 앉아서 한없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자세히 보면 대상에 어떤 걸림도 없이 시선을 두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죠. 그 모습에서 기다림도 사유했어요. 끊임없이 뭔가를 기다리더라고요. 나도 혼자인데, 고양이는 더 말이 없어요. 나보다 더 고요하고 더 조용한 생명하고 사니까 침묵을 색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됐어요.”
무심한 ‘냥이’었지만, 스님의 부재는 쓸쓸함이었다. 스님도 마찬가지다. ‘냥이’ 덕(?)에 없던 근심도 생겼지만, 경험하지 못한 감정도 배웠다. ‘냥이’와 “잘 잤어”라는 아침 인사를 나누는 일도 처음이었다고.
“외출이 길어져 늦게 귀가하면 탑전 들어가는 다리에서 ‘냥이’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본 뒤로는 서둘러서 돌아오게 됐죠.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 누가 기다린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냥이가 어디 가서 안 오면 잠이 안 와요. 성가심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예요. 멀리서부터 ‘야옹’하고 오면 그렇게 반갑고요. 그런데 그게 사랑이에요. ‘가정을 이루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가보다’ 했어요. 어쩌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사는 게 아닐까 하면서 인간사의 소중함을 새삼 알았고, 출가수행자로서 정체성도 다시 살피게 됐어요.”
| 고양이의 사계 그리고 스님의 봄·여름·가을·겨울
호기심 많은 ‘냥이’를 보면서 보경 스님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냥이’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지내다가 다른 곳에서 자는 등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 높은 곳은 눈여겨 봤다가 기어코 올라갔다. 스님에게는 “항상 새롭게, 지루하게 살지 말라”라는 철학으로 다가왔다.
“겨울 이야기를 썼는데, 여름이 되니까 ‘이 털북숭이 친구는 어떻게 여름을 나지?’ 궁금한 거예요. 글감이었죠. 산중 암자는 매일 덥거나 비가 오거나 지루함의 연속이에요. 그런데 ‘냥이’ 존재 하나로 달라졌죠. 여름 동안 고양이를 읽는 시간이었어요. 천천히 느긋하게 말이죠. 우리가 배울 점은 지루한 마음으로 살지 않는 거예요. 행복에 질려하는 것만큼 큰 비극은 없어요. 행복한 줄도 모르고 지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루해하지 마세요.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어요.”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무심한 듯 ‘최선’을 다해 ‘대충’ 살아가는 고양이의 삶에서 일상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본 성찰의 기록이다. 시리즈 첫 책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가 ‘겨울-만남’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두 번째 책 『고양이를 읽는 시간』이 ‘여름-관계’에 대해 말했다면, 마지막 세 번째 책은 ‘봄과 가을-시간’을 주제로 삼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 지낸 고양이와 스님의 사계를 완성하는 셈이다. 여기에 한정된 시간 안에 놓인 인생에서 순간마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는 통찰이 담겼다.
“사계절은 가을과 봄도 있잖아요. 가을과 봄을 쓰면 이야기의 완결이 보였어요. 고양이의 사계, 단어만 들어도 특별하고 재밌었어요. 그 이야기에 집중해서인지 돌발성 난청이 오기도 했지만, 세 번째 책은 행복 이야기를 쓰고 싶었죠. 왜 우리가 기쁘게 살아야 하는지 철학적인 근거를 쓰고 싶었어요. 행복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고, 왜 그렇게 살려고 하는지 쓰려고 했죠. 그렇게 행복에 목을 매면서 우리는 과연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의 모습인지 묻고 싶었어요.”
스님은 모두 행복을 말하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찾고 있으면서 먼저 알려고 하지 않는 점을 의아해했다. 스님은 행복만 구걸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인간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어느 겨울, 눈 대신 비가 오는 날이었어요. 밖은 춥지만 ‘냥이’는 덜컹거리는 창문 침대 아래 있었죠. 문득 그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삶은 유한합니다. 고양이는 너무 짧은 생을 살죠. ‘냥이’ 말고 탑전에서 사라지는 고양이들이 있어요. 3개월 된 새끼 고양이들이 뛰놀다가 너무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인간보다 더 유한한 생을 사는 고양이를 보면, 행복이라는 것이 유한한 삶에 있다는 게 너무 맘이 아팠어요. 어느 한순간도 지루하게 보내거나 낭비할 수 없어요.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어요. 누구 때문에 생긴 번뇌를 왜 다음 날까지 생각하나요? 매일 하루하루 반짝이게 의미 있게 사세요.”
저자 강연 끝 무렵, 보경 스님은 이런 말을 남겼다. 어느 날 내게로 온 고양이를 읽는 시간에서 찾은 기쁘고 유쾌한 행복일지 모른다.
“‘냥이’를 보는 내 마음에 부족함이 없는 거예요. 콩깍지 씐 거죠. 내 마음이 행복하고 충만하면 우리는 사물을 그렇게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