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절_오어지 둘레길] 최초의 감동, 오어사
길[道]은 여러 갈래입니다. 행복을 찾는 길, 즐거움을 좇는 길,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길 등등. 어찌 보면 여행이고 수행이자 순례이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둘러 길 걸으면서 절에 들러보는 여행이자 순례길을 걷습니다. 발이 젖으려면 물가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광미디어가 아름다운 길 찾아 절로 함께 걷습니다.
오어지 둘레길에 자리한 자장암과 오어사. 사진의 보물창고 불광미디어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았다.
벼르고 별렀던 오어지 둘레길
2020년 11월 둘레길 길이를 7km로 연장, 2021년 10월 ‘포항 그린웨이 프로젝트’ 중 하나인 ‘오어지 둘레길’ 제2공영주차장 준공, 사시사철 걷기 좋은 길…. 벼르고 별렀다. 포항 오어사 오어지 둘레길 소식을 스크랩 해두고 때를 노렸다.
봄의 끝자락을 등에 업고 오어사 오어지 둘레길로 향했다. 말이 봄의 끝자락이지 초여름의 첫 페이지였다. 최고온도 31도. 걷기엔 쉽게 지칠 기온이었지만, 숲길 따라 저수지 물길 따라 불어오는 바람에 걸음을 맡겼다. 제2공영주차장에서 망운정을 거쳐, 메타세콰이어 숲을 거닐다, 나무데크 길 따라, 원효교(출렁다리) 건너, 오어사로 들어섰다.
오어지 둘레길 초입, 저 건너편에 보이는 망운정과 오어지가 자아내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초여름 초록의 향연과 가뭄의 바삭함
기대가 컸다. 오어지(吾魚池)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한눈에 담기엔 버거울 정도(39만 6,694㎡)다. 초행이었다. 길이 시작하는 곳에 안내푯말부터 꼼꼼히 읽고 발걸음을 뗐다. 예상은 했다. 봄은 초여름에게 이미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길은 우거진 잎이 차지했다.
예상과 달랐다. 큰 기대만큼 아쉬움도 컸다. 예측불허여서 나름 낯설고 흥미롭긴 했지만, 오어지는 메말라 있었다. 바싹 마른 바닥을 곳곳에 드러낸 오어지는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게 했다. 둘레길을 연장했다는데, 약간의 불친절함도 보였다. 미처 정비하지 못한 코스에 길을 몇 번 놓치기도 했다. 딱히 크게 잘못 돌아가지 않고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었는데, 안항사 입구로 가는 길목에서 맨발로 걷는 흙길 쪽으로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정비가 아직이라 어수선하다). 오어사 오어지 둘레길은 오어지 곁으로 난 길을 따라 오어사로 드는 코스다. 사실 오어지 둘레길이니 오어지 곁을 따라 걸으면 된다.
우거진 숲과 흙길은 언제나 싱그러움과 편안함을 줬다.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와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함을 더했다. 운치 있게 길 끝에 자리한 망운정을 보며 걷고, 맨발 숲길로 조성된 흙길을 걷고,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걸었다. 한두 사람 비켜 설 정도의 길폭은 오가는 이와 눈인사 하기에 제격이다.
오어지 따라 흙길, 숲길, 나무데크길…
특별한 준비 없이 운동화에 물병 하나 들고 길을 나섰다. 길은 호젓했다. 평일이라 이 유명한 관광지에도 사람 발길이 드물었다. 종종 길 저편에서, 오어지에 조성된 정자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게 전부였다. 조용히 발밑을 눈앞을 하늘을, 심란했던 마음을 들여다보며 걸을 수 있었다(별의별 생각이 안 일어났다는 점이 신기). 벚꽃 필 무렵, 단풍 물들 무렵 찾았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길 위에 그린 그림자에 숨어서, 오어지에 이는 물비늘을 보며 숨을 골랐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지만, 많지 않아서 편했다. 재잘재잘 사람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오어사와 가까운 쪽 전망대에 다다랐다는 신호다.
남생이 바위가 있는 전망대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호수와 강, 논, 연못 등에 서식하는 거북목 남생이과에 속하는 담수성 거북이가 남생이다. 한마디로 민물 거북이. 바위가 남생이를 닮았다. 안내푯말에는 오어지 남생이 바위에 남생이가 올라오는 그날까지 함께 노력하자는 설명이 아련하다.
여기서 오어사까진 1km가 채 안 된다. 가깝다. 특히 오어지 위를 걷는듯한 나무데크 길을 뚜벅뚜벅 걷는 맛이 일품이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일주문을 오른쪽에 두고 조금 더 걸으면, 그 유명한 출렁다리, 원효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원효교 건너 오어사, 오어사 산내암자 자장암이 마중을 나온다.
오병이어? 죽은 물고기 살린 원효와 혜공
오어사에는 이름 관련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오어사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절 가운데 현존하는 몇 안 되는 도량이다. 『삼국유사』 「이혜동진」을 보면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 물고기로 5,000명의 굶주림을 해결한 예수의 ‘오병이어(五餠二魚)’를 떠올리게 하는 전설이 나온다.
여러 이적과 기행으로 유명한 혜공 선사는 만년에 항사사에 살았다. 당나라 유학길 도중에 얻은 게 있어 돌아온 원효 대사는 항사사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두 스님이 서로 잦은 교유를 했단다. 원효가 막힌 부분을 혜공에게 묻기도 하고, 두 스님은 농을 주고받기도 했다고.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어느 날 혜공과 원효가 물고기를 먹고 돌 위에서 똥을 누었는데…. 혜공이 원효에게 농을 던졌다. “넌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汝屎吾魚].” 원효가 물고기를 소화해 찌꺼기를 내놓았지만, 혜공은 산 생명체 그대로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 이렇게 두 고승의 해프닝(?)으로 항사사가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
구름으로 만든 다리를 오가다
운제산은 신라시대에 손꼽히는 사성(四聖) 자장, 의상, 원효, 혜공이 정진했던 산이다. 오어사를 중심으로 아늑하게 자리한 원효암, 가파른 바위산 아슬아슬한 자장암이 있다. 전설 속의 스님들은 구름[雲]을 사다리[梯] 삼아 서로 오갔다고 한다. ‘구름 운(雲)’, ‘사다리 제(梯)’자를 써서 운제산(雲梯山)이라 부른다.
운제산 오어사는 신라 제26대 진평왕(579~632) 때 자장 율사가 창건한 절이다. 이름난 스님들이 많이 주석한 도량이다. 혜공, 원효는 물론 해동의 화엄종 초조가 된 의상, 선덕여왕의 제안을 뿌리치고 ‘하루 동안 계를 지니다 죽을지언정 계를 파하고 백년 살기를 원치 않노라’라고 했던 자장이 오어사에서 정진했다. 특히 대대로 내려오는 세 가지 보물 중 원효의 숟가락과 삿갓이 유물박물관에 있다! 긴 칼은 도난을 당했다고 한다.
오어사 경내의 시간은 한가하게 흘렀고, 공기는 차분했다. 무작정 발을 들이진 않았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먼저 천천히 살피고, 경내로 들어섰다. 맨 처음 눈길을 끈 전각은 담장 너머 응진전과 범종루였다. 응진전은 다소곳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가만히 앉아 있었고, 범종루는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대웅전에는 참배객이 드나들었고, 더러는 간절하게 절을 올렸다. 관음전에는 도량을 찾은 객 몇몇이 앉아 쉬어가고 있었다.
바위 위 ‘절절한 신심’ 자장암
오어사 뒤편 바위에 몰록 솟은 것처럼 보이는 도량으로 향했다. 오어사에서 120m라는 글이 보였다. 오래돼 보이는 부도밭을 친견할 때까진 몰랐다. 섣불렀다. 가파른 길이 만만치 않았다. 잘 정비된 나무데크 계단과 흙길, 나무뿌리가 계단이 된 길을 오르며 몇 차례 숨을 고르고 나서야 다다랐다.
애를 쓰고 나서야 비로소 자장암 문턱에 들어서일까?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관음전이 비경(秘經)이었다. 원효와 혜공이 원효암과 자장암 사이를 구름을 밟고 오가며 교류했다는데, 자장암 관음전을 보고 있노라니 고개가 저절로 끄덕였다.
자장암은 기도도량이었다. 관음전 어간의 문은 문고리를 잡고 바라는 바를 세 번 암시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윤기 나는 문고리는 속설이 오래됐다는 증거였다. 전각 안 부처님은 찍지 않았다. 가파른 길이든 평탄한 길이든, 절에 가는 마음이 어떻든, 자신의 부처님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 안에 모신 부처님이 어느 도량의 전각 안 부처님으로 투영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관음전 아래로 운제산 능선과 오어지 그리고 오어사 절경이 가쁜 숨을 달랬다. 발아래 오어사에서 풍경이 노래했다. 잔잔했던 마음에 파문이 일었고, 최초의 감동이 뛰어올랐다.
포항 오어사 오어지 둘레길 여정(순환형)
코스 : 제2공영주차장~전망대~망운정~메타세콰이어 숲~관어정~전망대(남생이바위)~원효교~오어사~자장암~오어사~인도교~제2공영주차장
거리 : 약 7km
시간 : 2시간 30분(오어사, 자장암 참배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