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식(八識), 아는 것에 너무 확신하지 마세요
[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44)]
불교에서는 인간에게 8식(八識), 즉 8가지 식(識)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한자, 識은 ‘알다’, ‘기록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여덟 가지 식을 통해 우리 존재를 이루고, 작동합니다. 이들 8식을 통해서 밖의 세상에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합니다. 이렇듯 8식은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또한 우리는 8식에 의해서 혼란이 생깁니다. 선 수행이란 이런 식(識)들을 지혜로 변환시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8식을 4가지 지혜로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깨달은 존재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깨달음 중에서도 대승의 단계에 도달해야만 팔식을 지혜로 바꿀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일반적인 지식입니다.
팔식 중 6가지는 우리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눈, 귀, 코, 혀, 피부(촉감)의 다섯 감각기관이 있습니다. 눈은 안식(眼識), 코는 비식(鼻識), 귀는 이식(耳識), 혀는 설식(舌識), 촉감은 신식(身識)이라 부릅니다. 우리 같은 중생들은 보통 그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다섯 감각기관은 쉬지 않고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표면을 만지면 그것이 나무의 촉감인지, 금속의 촉감인지, 그것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부드러운지, 딱딱한지 그런 정보를 얻게 됩니다. 다섯 개의 식들은 밖의 세상으로부터 내면세계로 정보를 가져오고, 우리는 이런 식으로 외부와 소통합니다. 이런 정보들은 여섯 번째 식인 의식(意識)으로 들어갑니다.
이런 우리의 식들은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 혼란을 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온종일 온갖 종류의 정보로 폭격을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서 우리의 마음, 즉 의식은 항상 폭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인생이 늘 버겁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외부 세계에서 물밀듯 들어오는 정보로 인해 압도되고, 식들은 쉬지 않고 그 정보를 프로세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좋든 싫든 정보는 끊임없이 밀려들고, 생각하는 마음은 그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늘 바쁘고, 우린 온종일 피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소리를 들으면, ‘아! 이건 클래식 음악이구나!’, 밖을 보면, ‘꽃이 빨간색이구나’, 또는 입에 음식을 넣고 씹으면서 ‘맛이 짭짤하구나’ 이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다섯 개의 식들의 맨 꼭대기에 있는 이 여섯 번째 의식을 ‘마인드 킹(Mind king)’, 즉 마음의 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왕은 다섯 가지의 식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식도 있습니다. 여덟 번째 식은 아뢰야식이라고도 불리며, 쉽게 말해서 저장소가 되는 곳입니다. 우린 이 아뢰야식에 모든 정보를 저장합니다. 아뢰야식은 마치 무궁무진한 하드디스크와 같아서 우리가 한 일, 기억하는 것, 이런 모든 걸 다 저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짓는 모든 카르마 즉 업도 아뢰야식에 저장됩니다. 아뢰야식은 이번 생에서 얻은 정보뿐 아니라 세세생생 얻은 모든 정보를 다 저장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불교의 지혜를 통해 마음이 작동하는 과정을 이렇게 자세히 배울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마음의 왕과 저장할 수 있는 하드디스크인 아뢰야식이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이를 말나식(末那識)이라고도 부릅니다. 일곱 번째의 말나식이 바로 이 정보를 구부리고 마사지하는 우리의 자아 즉 아상(ego)입니다. 예를 들어 한 아이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이게 음악이구나’하고 인식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줍니다. 음악을 들려주고, “이건 클래식 음악이야”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이건 클래식 음악이야”라는 정보를 팔식에 저장합니다. 그뿐입니다. 간단한 일입니다. 그냥 단순한 사실이 정보로 저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정보를 주무르고 마사지해버리는 말나식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말나식이 “이건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이야”, “질 떨어지는 클래식 음악이야”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아상은 “이것이 더 좋아”, “싫어”, “관심 없어”라는 말하며 정보를 막 주물러댑니다. 이렇게 우리의 아상은 정보를 왜곡합니다. 여섯 번째 의식 즉 마음은 ‘이건 클래식 음악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건 그냥 사실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정보가 저장소인 아뢰야식으로 갈 때, 일곱 번째 식을 거쳐 가면서, ‘으~ 난 이런 좋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라고 말합니다. 그 굴절된 정보가 아뢰야식에 저장됩니다.
아무튼 아뢰야식에 저장된 정보는 너무나 방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뢰야식에 저장된 정보에 항상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여기엔 우리 통제력을 벗어난 여러 조건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우리의 업장으로 인해 더욱 복잡해집니다. 우리가 원한다고 아무 때나 모든 정보에 접근해서 꺼내쓸 수 있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그런 건 부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전생에 다른 사람의 공부를 방해했습니다. 다른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또는 여러분이 전생에 아이들을 세뇌해서, 학교에 못 가게 했습니다. 이런 일은 후진국에서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게 업장입니다. 아이가 공부하고 배우는 걸 방해합니다. 나중에 여러분의 차례가 오면, 그 아이가 여러분이 공부하고 배우려는 것을 막을 겁니다. 여러분이 아뢰야식에서 정보를 가져오는 것도 방해할지 모릅니다. 그것을 업보(karmic retribution)라고 부릅니다.
요약하자면 우리의 마음 즉 의식이 ‘이건 클래식 음악이구나’라고 알아차리고, 그 정보는 자동으로 아뢰야식으로 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미래에 클래식 음악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감각 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정보는 끊임없이 저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상인 말나식이 그 정보에 ‘좋아!’, ‘싫어’, ‘별로야’, ‘너무 좋아’라며 쉬지 않고 말합니다. 그래서 8식에 저장되는 정보는 ‘이건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야!’입니다. 우리의 지식은 이렇게 구부러진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이 “좋다”와 “나쁘다”라는 식으로 구부러져 있습니다. 그건 무얼 뜻합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너무 확신하거나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행으로 변화가 생길 때마다 예전에 확신했던 많은 것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굴절된 마음이 아닌 곧은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덕 높은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여러분을 돕기로 결심한다면, 여러분은 수행으로 더 멀리, 더 빨리 발전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출가 전 2012년부터 영화(永化, YongHua) 스님을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매년 선칠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명상 모임을 이끌며 명상을 지도했으며, 2019년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했다. 스승의 지침에 따라서 2020년부터 한국 내 위앙종 도량 불사를 도우며 정진 중이다.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상주하며, 문화일보, 불광미디어, 미주현대불교 등에서 활발히 집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