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의 길: 괴로움과 즐거움
[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40)]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한쪽 길은 편안합니다. 필요한 모든 것이 있고, 편안한 라이프스타일이 있습니다. 다른 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기엔 괴로움만 있습니다. 아프고, 아립니다. 이렇게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때, 늘 이렇게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괴로워 보이는 출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은 절 한국에 보내서 더 많은 괴로움을 겪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걸 더 좋아했습니다. 참 신기하지 않나요? 그냥 겉으로 보기엔 괴로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즐거움을 위해서 하루 종일 노력하지만 행복하지 못합니다. 너무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이 미국에서 사업 잘하던 제가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절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직접 만나보니 너무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절에 찾아오는 여러 명상반 학생들도 저와 다른 스님들의 일과를 보면 너무 괴로울 것 같은데, 막상 얼굴은 너무 편안해 보인다며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와 수행을 함께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왜 우리가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들 머리를 긁적이며 명상하는데 왜 굳이 아픈 자세로 해야 하냐면서 의아해합니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 다리의 아픔과 불편함을 견디며 명상해 온 학생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칠 수행할 때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다리가 아픕니다. 마음이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 믿기 힘들 만큼의 기쁨과 환희가 있습니다. 왜 기쁨이 있을까요? 우린 고통 속에서 많은 걸 이해하고 깨어납니다. 우리가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고, 즐겁게 먹으면, 대신 명상은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망상합니다. ‘내일은 만둣국 대신 짬뽕을 먹어볼까?’ 그리고 더 많은 즐거움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게 고통입니다. 그렇게 명상하지 못하면, 선의 안락을 잃습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인해 병이 생깁니다.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면 먹는 것에 더 집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건 즐거움인가요? 아니면 고통인가요? 아내가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 먹기 싫어도 미소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제 먹는 동안 고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기 때문에 반드시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 먹으면 오히려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합니다. 이건 모두 각자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다음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일 뿐입니다. 이런 인생의 소소한 기쁨에는 동반되는 고통이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절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누구든 찾아와서 물어보면 참선을 가르칩니다. 사람들은 나보고 이제 앉으면 아프지 않냐고 묻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같이 참선하면 다리만 아픈 게 아니라 골반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다 아픕니다. 그런데 앉아서 아파하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흥 자기도 못 참으면서, 참선 가르친다면서 뭐 저래?’라고 말합니다. 나 자신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이제 사람들이 날 깔보고 멸시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걸 할까요?
하지만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을 인과의 관점으로 봅니다. 즉 여러분이 지금 번뇌로운 것은 예전에 누군가를 번뇌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사람 때문에 계속 번뇌롭다면,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업보(Karmic retribution)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불평하는 대신 참아야 합니다. 이렇게 앉아서 아픔을 참으면 병이 치유됩니다. 앉아서 느끼는 아픔뿐 아니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어려움과 괴로움을 견디면서 복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이를 번뇌롭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참는 게 낫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면서 내 번뇌로움을 풀려하지 마십시오. 사람들 마음속에 증오를 만들지 마십시오. 다른 이를 공격하면 큰 곤경에 처합니다. 그냥 놓아버리십시오. 다른 이를 화나게 하면 그들이 세세생생 여러분을 쫓아옵니다. 부처님과 데바닷다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그는 절대 부처님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처님을 보자마자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인생엔 ‘나는 부처를 죽이고 싶다’라는 단 하나만 있었습니다. 그러니 적을 만들지 마십시오. 다른 이를 화나게 하지 마세요. 그들이 여러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사람들을 해치지 마십시오. 그들이 나쁘고 악하다면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그건 여러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처님조차도 데바닷다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부처님을 죽일 수 있다면 다른 누구라도 죽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걸 무서워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학대하면, 수천 년이 지나도 그들은 계속 올 겁니다. 여러분은 계속 갚아야 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한 번 더 참아보세요. 오늘 갚는 게 내일 갚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그리고 이 길엔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이런 불편함, 아픔, 피로와 졸음과도 직면해야 하지만 거기엔 엄청난 기쁨이 있습니다. 경이로운 일이 생깁니다. 그건 여러분이 스스로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걸 해서 스스로 발견해야만 합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출가 전 2012년부터 영화(永化, YongHua) 스님을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매년 선칠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명상 모임을 이끌며 명상을 지도했으며, 2019년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했다. 스승의 지침에 따라서 2020년부터 한국 내 위앙종 도량 불사를 도우며 정진 중이다.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상주하며, 문화일보, 불광미디어, 미주현대불교 등에서 활발히 집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