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정현종 ‘비스듬히’
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비스듬히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정현종 시선집, ‘비스듬히’, 문학판 2020)
[감상]
‘비스듬하다’는 ‘수직이나 수평이 아니라 기울어져 있다’라는 의미의 형용사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수직이나 수평은 개념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반듯한 것도 조금씩은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시인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조금씩이나마 기울어져 있어 다른 것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런 현상을 한 단어로 ‘비스듬히’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실로 홀로 있지 않습니다. 뮤지컬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가 부처님이 되는 순간에 부른 노래가 <홀로 있지 않아>입니다. “홀로 있지 않아, 세상의 모든 게, 인연과 인연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가 이어져 있다”라는 부처님의 깨달음은 세상 존재의 법칙이자 우리 수행의 기본입니다. 홀로 있지 않기 때문에 연기(緣起)이고,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닌 이 세상은 연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중도(中道) 수행을 해야 하고, 홀로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보시하고 봉사하면서 살아야 하고, 모든 생명체가 홀로 있지 않기에 우리는 인간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모든 생명체의 안락을 함께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뿌리가 버텨주는 힘을 믿고 하늘로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땅이 보호해주는 뿌리가 버텨준다는 사실에서 나무는 이미 무언가에 기대고 있지만, 하늘로 줄기차게 솟아오르는 줄기도 공기에 기대고 서 있다고 시인은 해석합니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것 중에는 맑은 것도 있고 흐린 것도 있으며, 같은 것일지라도 때에 따라 맑을 때도 있고 흐릴 때도 있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는 맑아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맑다고 말할 수도 없고 흐리다고 말할 수도 없겠습니다. 맑을 수도 있고 흐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몸과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을 평온이라 할 수 있고, 그 경지가 지극히 높다면 열반(nibbhana, nirvana, 涅槃)이라 하겠습니다.
시인은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간단한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이 문장의 뜻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열반에 이르는 길을 잘 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