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혼밥 한 그릇] 콩나물김치죽

꽁꽁 언 몸 훈훈하게 데워줄

2021-12-31     법송 스님

어제 걸어온 길, 내일 걸어갈 길

한 해가 저물고 있다.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달이라는 점에서, 새해를 앞둔 달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어떤 이는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고, 또 어떤 이는 곧 다가올 새해를 내다본다. 직장 동료, 친구, 가족들과 모여 술잔을 기울이면서 한 해의 회포를 풀기도 한다.

12월은 정말 특별한 달일까? 우리는 ‘연말’, ‘새해’가 가리키는 날에 고정불변한 본성이 있다고 보고 마지막이니 처음이니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는 편의상 붙인 말에 불과하다. 즉, 연말이라고 불러서 연말이 되고 새해라고 불러서 새해가 됐을 뿐이다. 각 단어가 가리키는 날들은 실제로 특별한 날이 아니며, 그날이 와도 우리 일상은 달라지는 것 없이 흐르던 대로 흘러간다. 12월은 긴 인생의 여정에서 한 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2월을 우리 삶을 뒤돌아볼 성찰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서산 대사는 선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에서 “눈 내리는 벌판 한가운데를 걸을 때라도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들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라고 했다. ‘어제의 내’가 간 길을 뒤따라올 ‘내일의 나’를 위해서라도, 내가 지나온 발자국을 헤아리는 과정은 필요하다. 각종 송년 모임도 좋지만, 요란한 연말 분위기를 즐기는 속에서도 짬을 내서 혼자만의 시간,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2021년 마무리는 ‘느린 혼밥’으로

다가오는 연말을 지난날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채우려면 어떤 음식과 식사법으로 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일단 여럿이 어울려 먹기보다 혼자 먹는 편이 좋다. 혼자 먹어야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쾌락에 치우친 메뉴는 성찰을 가로막을 수 있으니, 비싼 재료로 만든 음식, 비주얼이 화려한 음식, 각양각색으로 차려진 푸짐한 한상차림 대신 기능적이고 소박한 음식을 선택한다. 추워진 날씨에 얼어붙은 몸을 데워주면서 허기도 채워줄 음식이 적당하겠다.

성찰에는 시간적 여유도 필요하다. 사는 게 바빠 늘 쫓기듯 끼니를 때웠더라도 이때만큼은 음식 먹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음식을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1시간.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일에 1시간 정도는 투자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 식후 ‘설거지 명상’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귀찮은 일 처리하듯 후다닥 그릇을 닦아서는 설거지라는 아주 단순한 일상 행위에서조차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 지금 내가 그릇을 깨끗이 닦아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순간을 온전히 느낄 때 비로소 나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가능하다.

 

김치와 콩나물로 만드는 최고 아웃풋

흔히 ‘갱죽’, ‘갱시기’로도 불리는 콩나물김치죽은 위 조건에 잘 맞는 음식이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겨울 제철 식재료인 콩나물과 김치로 만드는 아주 소박한 음식이면서 그 효능도 아쉽지 않다. 비타민, 식이섬유, 무기질, 유산균 등이 골고루 들어 있는 김치는 싱싱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에 특히 빛을 발하는 재료다. 여기에 콩나물과 식은밥을 넣고 죽을 쒀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몸도 따뜻하게 데워준다. 감기 기운 있을 때 먹기에도 좋다. 간단한 재료와 쉬운 조리법으로, 승속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내려오던 음식이다.

밥과 콩나물, 김치, 김칫국물, 간장을 준비한다. 콩나물은 깨끗이 씻고 김치는 먹기 좋게 송송 썬다. 밥은 물에 넣고 퍼질 때까지 끓인다. 끓어 넘칠 수 있으니 뚜껑은 닫지 않는다. 밥이 퍼지면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특히 콩나물을 조리할 때는 뚜껑을 중간에 닫지 말고 끝까지 열어놔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김치와 김칫국물은 맨 마지막에 넣고 끓인다. 김치의 아삭함을 살리기 위해서다. 간을 봐서 싱거우면 간장을 조금 넣고 그릇에 담아낸다. 화려한 연말 파티 음식에 비하면 조금 볼품없는 모양새지만, 막상 맛을 보면 속은 물론 영혼까지 따뜻하게 감싸 안는 그 중독적인 맛에 빠질 것이다.

가래떡을 추가해 걸쭉하게 끓여 내는 방법도 있다. 밥만 넣고 끓일 때보다 씹는 맛을 더할 수 있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내려면 김칫국물 넣을 때 우유 반 잔 정도를 더해서 끓인다. 영양이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계란을 넣어 끓여도 된다. 완성된 죽에 치즈 한 장 올려 먹으면 또 다른 별미를 즐길 수 있다. 각자 취향에 맞는 콩나물김치죽을 해 먹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성찰의 시간을 마음껏 누려보자.

코로나19로 유난히 힘들었던 신축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음식을 소중히 여기고 건강하게 식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12개월의 소소한 밥상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독자들에게 가닿았길 바란다. 그동안 ‘건강한 혼밥 한 그릇’과 함께 해준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 올린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도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기를 서원합니다.”  

 

재료    밥 1공기, 물 5컵, 콩나물 1줌, 김치 1/2포기, 김칫국물 3큰술, 간장 1/2큰술

 

1. 콩나물은 깨끗이 씻고 김치는 송송 썬다.

 

2. 물에 밥을 넣고 끓이다 밥이 퍼지면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3. 마지막으로 김치와 김칫국물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4. 간이 부족하면 간장을 넣고 그릇에 담아낸다.

 

사진. 유동영

 

법송  스님
대전 영선사 주지. 세계 3대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 런던캠퍼스 정규 교육과정 최초로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했다. 저서로 『바다를 담은 밥상』(2021, 도서출판 자자), 『법송 스님의 자연을 담은 밥상』(2015, 서울문화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