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품은 지리산] 웅혼한 생명의 근원

생명평화의 미래를 위한 거점

2021-12-28     유정길
바위채송화. 바위틈에 옹기종기 모여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山)의 정기 받은 한국인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고양시에서 서울로 오갈때면 필자는 항상 오른편에 앉는다. 지축역에서 구파발을 지날 때 아름답고 신령한 북한산 풍광을 감상하는 버릇 때문이다. 어렸을 때 서울 미아리, 길음동, 수유리, 정릉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북한산은 필자의 가슴 깊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산이다.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나올 때 뉘엿뉘엿 지는 노을로 붉게 물든 거대한 북한산, 도봉산을 보면 그 신령함과 거룩함으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곤 했다. 

북한산은 필자에게 웅혼(雄渾)한 기운을 느끼게 해 준 큰바위 얼굴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울타리이자 병풍이기도 했고, 저 산 넘어 피안의 이상세계에 동경을 갖게 한 근원이었다. 그 산은 아름다움의 감수성을 갖게 한 정서의 원천이기도 했고, 이상세계와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던 “내부화된 자연”이다. 

기(氣)라는 말은 동양에서는 익숙한 용어이다. 기운,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뜻한다. 여기에 정기(精氣, 正氣)라는 표현도 자주 써왔다. ‘지극히 크고 바르고 공명한 천지의 원기(元氣)’, ‘천지 만물을 생성하는 원천이 되는 기운’, ‘민족 따위의 정신과 기운’이라고 사전에는 설명돼 있다. 물리적으로 물질은 덩어리인 ‘입자’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인 ‘파동’으로 구성됐는데, 기는 일종의 에너지 파동이라고 할까? 

필자가 다녔던 모든 학교 교가에는 예외 없이 북한산의 정기를 받았다고 돼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 학교가 ‘산의 정기’를 받지 않았을까?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이가 든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분명 북한산의 정기를 받았을 거라고. 산(山)은 개인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의 정신세계와 성격, 기질의 형성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향을 준다. 산의 보이지 않는 기는 한국인 모두에게 내부화됐다. 이 기들이 연결돼 맥(脈)이 된다. 태백산맥, 소백산맥, 한북정맥, 한남정맥과 같이 산과 산이 연결된 산맥(山脈)은 산의 기운들로 이어진 거대한 줄기다. 민족적 자부심과 단결을 외칠 때면 우리는 항상 백두산에서 시작해 한라산에 이르는 수많은 글과 노래를 불렀다. 

조선시대 실학자 신경준이 편찬한 『산경표(算經表)』에 따르면 백두산에서 시작된 맥은 백두대간의 골간이 돼 지리산에서 그 장대한 끝이 마무리된다. 실제 천왕봉 정상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글의 비석이 있다. 백두대간을 행군하는 이들의 시작하는 곳이 바로 지리산이며, 우리 국토 맥과 정기의 시작이 바로 이 지리산인 것이다. 

 

천혜의 자연 품은 생명의 산

지리산! 말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산이다. 시인 김지하는 시 <지리산>에서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중략) 지금도 살아서 내 가슴에 굽이친다. 지리산이여”라고 노래한다. 한라산을 제외하고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1,915m)이며, 그야말로 “어머니의 품”이라고 할 만큼 거대해서 그 넓이(483km2)는 서울 면적의 4/5 정도 된다. 둘레만도 320km이다. 지리산은 그 자체가 우리 민족에게 신앙의 대상이었고, 고통받는 민초에게는 쫓기고 쫓겨 마지막에 스며들던 거대한 은신처였으며, 수많은 대립과 갈등 그리고 피와 땀이 묻혀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이상적 공동체의 땅이기도 했다. 

지리산(智異山)의 한문 뜻은 ‘다름(異), 즉 차이를 아는(智) 것’이라고 한다. 평화의 핵심이 바로 다름,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인데 지리산은 이미 평화의 지혜를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이밖에도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또 다른 의미심장한 뜻이 있기도 하다.

지리산은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등 3대 주봉을 중심으로 1,500m가 넘는 산이 20여 개 있으며, 이 넓고 깊은 심산유곡에는 온갖 희귀한 식물들과 약초, 이곳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 멸종위기의 야생식물들이 있다. 이뿐인가. 그 거대한 넓이로 인해 다른 곳에 없는 동물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포유류가 15과(科) 41종, 조류가 39과 165종, 곤충류가 215종 등 총 421종이라고 한다.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하늘다람쥐, 삵, 담비, 수달뿐 아니라 반달가슴곰이 사는 곳이다. 그동안 복원사업으로 반달가슴곰 28마리를 방사하기도 했다. 또한 지리산에서 1970년까지 한국표범(아무르표범)이 잡혔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2008년까지 목격담이 돌기도 했다. 

산이 높으니 골도 깊어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 피아골, 뱀사골, 한수골, 도장골 등 10km가 넘는 계곡들이 있다. 지리산의 수많은 풀과 흙, 나무와 숲들이 머금은 빗물들이 샘물로 흘러나와 계곡을 만들고 이들이 모여 남강과 섬진강이 돼 함양과 산청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남원과 구례에 사는 많은 사람이 마시는 식수가 되고, 농토의 물이 돼 곡식을 키우며 그 넓은 논밭과 땅을 적신다. 지리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자신보다 5~10배나 넓은 지역의 사람과 짐승, 풀과 나무와 곡식을 적시고 키우고 먹이며 살리는 근원을 제공하는 생명의 산이다. 

정감록신앙에서 재난이 일어날 때, 피난 가면 안전하다는 10곳의 십승지(十勝地)나 『도선비결』 등의 도참서 등에는 대부분 남원 ‘운봉 두류산(지리산)’이 포함돼 있다. 또 조선 말 온갖 수탈과 폭정의 고통 속에 일어난 농민 봉기와 민란, 의병투쟁에 실패하고 좌절한 유민들, 동학교인 등이 피난 온 은신처이자, 갱정유도회(更定儒道會) 신자들인 청학동 도인들처럼 일부는 신흥종교를 개창하기도 한 곳이 바로 지리산이다.

말나리. 큰 백합이라는 뜻으로 높은 곳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이다. 

 

환경파괴 시달리는 최초의 국립공원

지리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1955년 처음에 구례중학교 교사인 우종수 씨를 비롯한 교직원과 구례민들이 ‘구례 연하반’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많은 활동을 펼치면서 지역유지와 정치인들을 설득해 ‘지리산 국립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결국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이후 국립공원은 2021년 현재 3개 해상·해안(다도해해상, 한려해상, 태안해안), 1개의 반도(변산반도), 1개의 사적형(경주) 국립공원 외에 지리산을 비롯해 모두 17개의 산이 지정돼 우리나라는 총 22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국립공원 초기에는 놀고 즐기는 곳으로 ‘이용중심의 정책’이 강조되다 보니 온갖 리조트와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로 넘쳐나곤 했다. 그러나 환경보전이 날로 중요해지면서 국립공원은 미래 세대를 위한 보존의 가치가 높은 곳으로 인식돼 이제는 ‘보전중심의 정책’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지리산은 여전히 놀고 즐기는 곳으로 여겨져 개발사업에 시달리고 있다. 1991년, 경남 산청 내대리 고운동에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양수발전소 건립 계획이 발표됐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오래 저항했지만 결국 막지 못하고 상부댐과 하부댐이 모두 건설됐다. 이 댐 건설이 완성될 무렵인 1998년 함양군 문정리에는 부산지역의 식수 공급을 명분으로 높이 141m, 길이 896m의 초대형 댐 건설이 발표됐다. 지리산댐이라고 부르는 문정댐 개발계획이라 불리며 칠선계곡, 백무동계곡의 초입이 호수가 되는 무지막지한 개발구상이었다. 

당시 도법, 수경, 연관, 현응 스님과 환경시민단체들이 ‘지리산살리기 국민행동’을 결성해 필사적으로 반대했고 결국 2002년 건설을 중단시켰다. 이를 계기로 ‘지리산 생명연대’, ‘불교환경연대’ 등의 단체들이 결성됐다. 이후 지자체는 2012년, 2017년 지리산댐 건설계획을 다시 내밀었지만 결국 2018년 9월에야 실질적으로 백지화됐다. 그러나 지리산을 개발 파괴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계속된다. 

실제 지리산권의 구례, 남원, 함양, 산청 등 4개 지자체는 20년간 끊임없이 지리산 봉우리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집요하게 시도해 왔다. 급기야 2019년 하동 군수는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개발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악양~형제봉’까지 모노레일을 설치하고 ‘형제봉에서 도심마을’까지는 케이블카를, ‘삼성궁에서 형제봉’까지 산악열차를 2020년부터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본래 박근혜 정부 때 전경련이 제안, 탄핵국면으로 무산된 프로젝트였지만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이용해 부활한 것이다. 이뿐 아니었다. 집요하게 지리산 서부권에 산악열차를 계획해온 남원군이 최근에는 성삼재 근처까지 케이블카를 놓는 구상까지 발표하는 등 지리산은 개발의 야심을 품은 정치인들에게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지리터리풀. 지리산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풀이다.  

 

전환의 미래를 만드는 지리산 캠프

지리산의 흙을 한 줌 파면 수많은 민중과 생명의 피와 땀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아픔과 갈등의 터였지만 25년 전부터 실상사를 중심으로 이러한 고통의 역사를 평화의 역사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90년대 말 실상사 ‘장기귀농학교’가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젊은이가 귀농했다. 또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와 사단법인 ‘한생명’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지금은 2,000명의 산내면 인구 중 500여 명의 귀농자가 모여 사는 거대한 마을공동체가 됐다. 공동체 운동의 전국적 성지가 된 것이다. 

역시 실상사가 중심이 돼 좌우대립을 해원(解冤) 상생하는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를 개최하고 2003년 11월 15일 ‘생명평화결사’를 결성했다. 이어 2004년 3월 1일 도법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종교사회단체 인사들이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 함께 전국을 돌며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5년간 진행했다. 평화의 등불을 모으고 밝히며 ‘생명평화’라는 말을 진보적 담론의 중심 의제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지리산 실상사 산내면 일대는 수많은 젊은이의 활력으로 넘쳐나고 있다. 중고등과정의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 2년제 대안대학인 ‘생명평화대학’, 최근에는 생명평화운동의 선지식들이 중심이 돼 전환사회를 위한 ‘지리산 정치학교’가 진행되고 있다. 과거 70~80년대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가 살던 원주가 젊은 운동가들의 정신적 원천이 돼 이른바 ‘원주캠프’라고 명명된 바 있다. 문명전환기인 이때에 실상사는 미래지도력을 품고 키우는 ‘지리산 캠프’가 되고 있다. 

최근 25년간 지리산은 오랜 영욕의 시대를 넘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전환사회를 만드는 정신적 근거지이자 엔진이 되어가는 중이다.  

 

사진. 유동영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이자 녹색불교연구소 소장이다. 정토회 에코붓다 이사, 귀농운동본부 귀농정책연구소 소장, 국민농업포럼 공동대표, 환경운동연합, 한살림, 아름다운 재단 등에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조계종 환경위원, 백년대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과거 한국 JTS 아프가니스탄 카불지원 팀장을 지내는 등 환경, 생명평화, 개발구호, 남북평화, 공동체운동과 협동조합, 마을만들기 등 대안 사회운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