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나태주 ‘발을 위한 기도’
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발을 위한 기도
너의 발을 위해 기도한다
너의 몸 가운데 가장 낮은 데 있고
가장 어려운 일을 자임하면서도
칭찬도 받지 못하는 발
어쩌면 너의 발이 너를
이리로 데려왔을까?
모든 어둠과 어려움을 이기고서도
이토록 눈부신 모습으로 데려왔을까?
앞으로도 어두운 길 험한
길을 비록 갈지라도
상하는 일 힘 드는 일 없기를
비노라 바라노라
한사코 너의 발을 부여잡고
울먹이며 기도한다.
(나태주 시/그림, ‘나태주 연필화 시집’, 푸른길 2020, 86쪽)
[감상]
발이 그 사람을 상징하는 경우는 드물지요. 누군가의 소식을 전할 때 발 사진을 같이 보내는 경우는 드뭅니다.
인도 신화는, 세상의 근원이 되는 원인(原人, 온 세상 크기만 한 거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푸루샤가 죽으면서 세상 모든 것이자 모든 생명체가 되었는데, 푸루샤의 머리에서 사제 계급 브라만, 양팔에서 왕족이나 무사 계급 크샤트리아, 넓적다리에서 농민이나 상인에 해당하는 바이샤, 발에서 천민인 수드라가 탄생했다고 전합니다. 신화에서도 발은 가장 천대시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인도에서는 위대한 분의 발에 이마를 대는 것이 좋은 인사법입니다. “당신의 가장 낮은 곳이 저의 가장 높은 곳보다 더 위대합니다” 하는 의미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너를 위한 기도”의 극존칭의 의미로 “[너의] 발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적인 발상이라기보다는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해줄 줄 아는 분의 ‘사랑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부시게 사랑하는 사람을 여기에 데려온 이는 곧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너의 발을 위한 기도’를 낳았습니다. 그야말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앞으로도 어두운 길 험한
길을 비록 갈지라도
상하는 일 힘 드는 일 없기를
비노라 바라노라”
사랑하는 사람의 발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한 사람의 위대한 품성의 발에 이마를 대고 예배하고픈 마음, 이 시는 바로 그런 마음을 만들어줍니다. 오늘은 세상 모든 사람의 발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세상 속으로 모신 모든 생명체의 발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두운 길 험한 길 위에서도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가기를!”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