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인공적 합성
트랜스휴머니즘과 불국정토
2009년에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감독의 영화 <아바타>는 스토리도 흥미로웠지만 독특한 등장인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바타’라고 불리는 인공적으로 합성한 생명체가 그 주인공이었다. 아바타는 자원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계의 행성 판도라로 향한 자원탐사대의 비밀병기였다. 판도라의 토착민인 나비 족의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를 조합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인공생명체로 외형은 나비 족과 똑같았다. 아바타는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에 의해 원격 조종되는 일종의 생체 로봇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아바타가 인공적으로 합성됐다는 점이다. 아바타를 탄생시킨, 혹은 합성해내는 기술이 바로 합성생물학이다.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인간 향상과 인간의 진화를 꾀하려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게 합성생물학은 주목할 만한 기술이다. 우월한 유전적 특성을 갖출 수 있도록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유전적 구성을 재설계하는 것도 합성생물학을 통하면 가능하다. 말 그대로 자연 선택이 아니라 인위적 선택으로 인간의 진화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꿈이다. 인간의 유전적 구성을 재설계하는 데에는 인간의 유전자는 물론이고 다른 종의 유전자까지 활용할 수 있으며,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전자를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합성생물학에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합성생물학의 대담한 시도들
합성생물학은 나노기술만큼이나 대담한 목표를 가진 연구 분야이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생명의 구성요소들을 재설계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생명을 공학적으로 다루는 연구 영역이다. 합성생물학의 최종 목표는 자연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학적 구성요소들로 생명을 창조하거나, 자연 속 생명을 모방해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합성생물학의 역사는 효소 등을 이용해 DNA 일부를 잘라 내거나 덧붙이고, 유기체들 사이에서 DNA의 일부를 바꿔 끼우는 공학적 처치 수단인 재조합 DNA(recombinant DNA) 기술이 등장한 197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대의 유전공학과 오늘날의 합성생물학은 목표가 다르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재조합 DNA 기술을 활용하던 시대의 생명공학은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는 오늘날처럼 새로운 생명체를 합성하거나 인공 세포를 만들어내려는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합성생물학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무엇을 목표로 연구하는지 살펴보면 된다.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합성생물학 연구자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는 2010년 5월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전체를 박테리아 세포에 이식해 유명해졌다. 이른바 최초의 인공 세포를 합성한 것이다. 2016년에는 최소 유전체를 가진 박테리아인 ‘Syn 3.0’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최소 유전체란 하나의 생명체가 가진 유전체 가운데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유전자만 선별한 것을 말한다. 최소 유전체는 맞춤형 인공 세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벤터가 2010년에 공개한 ‘Syn 1.0’에는 총 901개의 유전자가 포함돼 있었는데, ‘Syn 3.0’에는 473개의 유전자만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세균보다 더 적은 수의 유전자로도 생존하고 증식할 수 있는 박테리아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하버드대학의 조지 처치(George Church)는 자연종의 유전체를 재프로그래밍해서 인간에게 유용한 생명체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장기이식용 돼지를 만들기 위해 돼지의 배아에서 62개의 유전자를 비활성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처치의 기술들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목표인 인간 향상에도 활용될 수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나에게 지렛대를 주면 지구를 들어올리겠다”고 말했지만, 처치는 자신에게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학 교수인 드류 앤디(Drew Andy)는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생명 연구에 가장 공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자연이 만들어낸 생물체계를 해체해 더 논리적이고 유연한 형태로 재구성하는 길을 꾀한다. 앤디는 전자공학에서 전자를 다루는 공학적 방식으로 생물 분자에 접근하는 합성생물학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표준화된 생물 부품들을 등록해서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정보를 나누는 기관인 바이오브릭스 재단의 창립에도 역할을 했다. 그는 자연 선택을 인간의 자유의지가 적용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이유로 일종의 폭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유전자와 진화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는 합성생물학이 이러한 자연의 폭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준다고 믿는다.
합성 생명도 인연의 결과일까
우리는 합성생물학으로부터 다양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학술적으로 보면, 합성 생명의 연구는 생명과 진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생명과학 연구에 유용한 합성 생명체를 만들어서 활용하면 과거 불가능했거나 어려웠던 연구도 진행할 수 있다. 실명 연구에 다양한 방식의 실험적인 시도가 도입되고, 생명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합성생물학은 특히 의료와 에너지 분야에 놀랄만한 이득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박테리아나 약물의 원재료가 되는 물질을 생산하는 박테리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학 밖에서는 합성생물학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많다. 위력적인 기술이지만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합성생물학은 원자력처럼 다수의 연구자 집단이 필요하지도 않고, 입자물리학처럼 엄청난 연구 장비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이 혼자 지하실에 실험실을 조성하고 인체에 유해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합성할 수도 있다. 서양 철학자들 가운데는 합성생물학 연구가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행동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인공적으로 생명을 합성하려는 시도는 우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행위이며, 합성생물학 연구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행동한다는 비판이다. 비판은 여러 관점에서 제기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과학만능주의적 사고를 향한 경계다. 기독교와 같은 종교적 관점에서는 교리에 배치되는 행위로 이해될 수도 있다.
과학기술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불교적 관점에서도 생명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일은 무조건 긍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생명 현상이나 생명체에 해당하는 불교 용어는 ‘중생(sattva)’이다. 산스크리트어 ‘sattva’는 존재라는 뜻을 지닌 ‘sat’에서 유래한 말이다. 따라서 sattva는 존재자로 볼 수 있다. sattva, 즉 중생은 범부, 유정, 중연화합생으로 구분된다. 범부는 인간에 해당하고, 유정은 온갖 생물에, 중연화합생은 생태계를 비롯한 존재자 일반에 해당한다. 불교에서는 세계와 생명 현상을 ‘연기’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한다. 다시 말해, 모든 존재는 인연화합의 결과로 생겨난다고 본다. 모든 존재와 생명 현상에 그 결과를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 혹은 내재적 원인이 ‘인(因)’이고, 부수적인 원인 혹은 외재적 간접조건이 ‘연(緣)’이다. 인간을 비롯한 일체 존재와 생명 현상의 변화과정은 여러 원인이나 요소들의 이합집산 결과로 생겨나며, 연기란 이런 수많은 요소의 상호 관련성 혹은 상호 의존관계를 가리킨다.
인공적으로 합성한 생명체가 있다면, 그것을 연기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공적인 생명체를 만들어낸 어떤 연구자의 행위는 인연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연구자가 만들어낸 인공적 생명체를 인연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인공적인 생명체의 탄생에 관여하는 연기의 그물에서 연구자의 영향이 배타적으로 크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불교에서는 생명의 여러 단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전생에서 금생으로 태어나고, 죽어서 다시 내세로 환생하는 윤회의 과정은 ‘사유(四有)’를 통해 설명된다. 사유란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중유(中有)’를 말한다. 모태에서 생명이 결성되는 찰나를 생유라고 하고, 출생에서 임종 직전까지를 본유라고 한다. 임종의 찰나를 사유라고 하고, 죽은 후 내세에 생명이 다시 결성되는 것을 중유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합성된 생명은 모태에서의 생유 과정을 겪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성 생명은 우리가 아는 어떤 생명과도 다른 탄생의 과정을 겪으며, 따라서 우리가 아는 어떤 생명과도 다른 인연이 합성 생명의 탄생에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낯선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합성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인간에 적용해 인공적으로 합성된 유사 인간이 등장한다면, 이들은 오늘날의 인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들은 마치 영화 <스타 트렉>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낯선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존재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해야 할까?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괴물로 묘사한다. 사람들은 그 낯선 존재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 혐오와 증오심을 드러낸다. 불교적 관점은 낯선 존재에 대해서도 포용적 태도를 끌어낸다. 불교는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이 생명이라는 점에서 평등하며, 인간에서 동물까지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더욱이 불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범부와 성인,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지 않는다. 지구를 벗어난 외계의 생명이라고 해도 생명이라면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불교에서는 말할 것이다. 불교는 지구에만 국한된 진리뿐만 아니라 범우주적인 진리를 설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인간의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면서도, 서양적 사고와 달리 생명 간 경계를 넘을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생명에 대해 불성의 보편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다양한 설화에서 동물이 법을 알아듣거나 심지어 법을 설하는 것처럼 기술한다. 참다운 진리의 영역에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 차별이 없음을 말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불교의 윤회 사상은 모든 중생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중생이 종을 교차해서 윤회한다는 생각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우리가 지금껏 본적이 없는 외계의 생명체든, 일체중생 간 본질적인 차이와 경계가 없음을 가정한다. 즉,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는 동일 법성으로 인식한다. 생명의 종은 영원한 실체가 아니며,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 인공적으로 합성된 생명체에도 불성이 깃들어 있을까? 인공적으로 합성해서 만든 인공 세포들을 기본 재료로 한, 혹은 인공 생식세포를 배양해서 탄생시킨 합성 생명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합성 생명체도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이 합성 생명체는 어떤 인연의 그물 속에 있을지 모르겠다.
환원적 사고의 산물
불교적 시각에서 생명체나 생명 현상은 수많은 요소 간 관계의 산물이다. 일체 존재는 복잡다단한 인연의 그물 속에 있으며, 인연 관계를 이루는 조건들은 관계의 한 항일 뿐 그 관계를 벗어난 실체적이고 독립적인 요소가 아니다. 태아가 형성되는 것도 중유를 포함한 삼사(三事)가 화합해 일어나는 일이다. 실체적 요소로서 중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합이라는 과정 속 관계성이 중요하다. 불교적 관점의 핵심은 인연의 관계이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조건적인 요소들이 언급된다. 이 조건적 요소들은 실체가 아닌 관계의 항으로서 존재한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을 생명의 요소들을 통해 이해한다. DNA나 유전자, 세포 등이 생명의 기본 구성 요소라고 생각하고, 그런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생명체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이런 이해 방식을 통상 환원주의라고 한다. 불교적 관점은 환원적 사고와 구별된다. 존재하는 것을 몇 가지 필수 구성 요소들로 소급해 설명하지 않는다. 불교적 관점은 수많은 요소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고, 그 관계의 사슬은 삼세(三世)에 걸쳐 연결된다.
이상헌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 저서로는 『융합시대의 기술윤리』, 『철학자의 눈으로 본 첨단과학과 불교』 등이 있다. 「붓다의 시선으로 본 인공지능」, 「칸트 도덕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포스트휴먼」 등 논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