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 해야 할 바를 다 이룬 사람
성聖과 속俗 잇는 영원한 성자
번뇌 끊고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불교 수행자를 사문(沙門, śramaṇa)이라 부른다. 기원전 6세기경부터 사회 계층 제도가 느슨해지기 시작하자 새롭게 등장한 인도의 수행자들을 일컬어 사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신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시한 기득권 종교 브라만교와 대립하는 사상을 설파하면서 상가(saṃgha, 僧伽)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했다. 이처럼 사문들은 브라마나(brahmaṇa) 전통을 이어 발전한 힌두교에 대한 반(反) 브라마나적·비(非) 전통적 경향을 주창했고, 이런 사문들에 의해 일어난 사상적 양상이 불교이다. 결과적으로 불교는 사문들에 의해 인간중심사상의 발전을 촉발했고, 동시에 신흥 종교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무명(無明)을 벗고 성자(聖者)가 될 기회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하지만 그 깨달음의 모습을 획일적으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고타마족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와 이후 수행으로 해탈에 이른 성자로서 석가모니 붓다(이하 붓다), 아비달마 불교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깨달음 단계에 대한 구분, 그리고 기원 전후부터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대승불교의 성불(成佛) 등 그 양상은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붓다의 깨달음을 닮는 것’과 ‘나도 또 다른 붓다가 되는 것’의 차이다. 즉 붓다의 일거수일투족을 표준으로 삼아 수행 정진하여 제2, 제3의 붓다가 되는 초기불교와 갖가지 방법의 수행으로 나 자신도 별도의 붓다가 될 수 있는 대승불교의 차이는 불타관(佛陀觀)과 불신론(佛身論)의 차이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성자 경지에 오른 초기불교 수행자
그렇다면 붓다를 닮아 최고의 성자 경지에 오른 초기불교 수행자들은 누구였을까? 붓다 이전부터 인도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이들을 아라한(나한, arhat)이라고 했다. 붓다의 제자들 가운데 이들이 도달하는 경지를 말하는 사향사과(四向四果), 즉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 가운데 최고 경지이면서 최후 단계가 아라한이다. 즉, 아라한은 불교 최초의 아라한이었던 붓다를 표준으로 삼아 수행해온 붓다의 제자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수행자로, 더는 배우고 수행할 것이 없는 존재이면서 윤회에서 완전히 해방된 존재이기도 하며, 그 이상의 단계가 없으므로 당시 깨달음의 최상위에 있었던 붓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가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초기불교에서 아라한은 수행자로서 최고의 단계를 의미한다. 이들은 중생교화를 위한 설법의 의무 또한 당연히 부여된 승속(僧俗)을 막론한 최고의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으며, 석존 입멸 후에는 세간의 실질적 지도자이면서 승단의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상좌부 전통에 따르면 해탈 열반한 성자(ārya)를 아라한, 벽지불(辟支佛), 불타(佛陀)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는데, 여기서 아라한은 모든 고(苦)를 멸한 사람이면서 행(行)해야 할 모든 일을 행한 사람으로 간주했다.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애욕의 최후 흔적이 소멸한 순간에 생기는 멸(滅)의 인식과 멸의 인식을 얻은 후에 더는 미래에 생겨나지 않으리라는 불생(不生)의 인식을 하는 자가 바로 아라한이다.
이즈음에서 불교 최초의 아라한이었던 붓다의 예를 들어 아라한의 양상을 살펴보자. 붓다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성도한 바를 설하면서 그 설법의 가치와 목적을 『장아함경』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위하여 법을 설하겠다. 이 법은 수승한 이치이며, 수승한 범행이며, 수승의 안온(安穩)으로 마침내 열반으로 들게 한다. 나의 설법대로 행하는 자는 유루에서 벗어나 무루를 이루고 심해탈(心解脫, ceto-vimutti)・혜해탈(慧解脫, paññā-vimutti])에 이르러 스스로 행하여 마침내 체득하게 되는데, 그것은 ‘생사를 이미 여의었고, 청정행도 이미 이루었으며, 해야 할 바도 이미 다 하였으므로 다시는 몸을 받지 않음’이다.”
붓다의 설법 가운데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생사를 이미 여의었고, 청정행도 이미 이루었으며, 해야 할 바도 이미 다 하였으므로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이를 행간을 바꾸어 객관적으로 나타내보면 ‘나의 생은 이미 다했고[我生已盡], 청정행도 이미 이루었고[梵行已立], 해야 할 바도 이미 다 하였으므로[所作已辨],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不受後有]’는 사구(四句)의 게송이 된다. 이 게송은 초기불교 깨달음의 경지에 관한 서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정형구로, 붓다로부터 유래한 이후 수행자가 아라한과를 증득했을 때 자신이 스스로 송출하는 게송이다. 그리고 이 순간 아라한의 양상을 『대비바사론』에서는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는 두 가지 의미를 갖추게 된다. 하나는 과(果), 즉 아라한과를 얻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界], 즉 무색계(無色界)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정형구에 대해 일본의 사토요시히로(佐藤義博)는 “불교성전에서는 유형화된 정형구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소 지루한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정형구는 전통적인 것을 표명하고, 또 불전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절대 그 가치를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그러한 정형구는 일시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정형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붓다가 처음부터 그러한 사구의 게송을 정형화하여 송출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그 형식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고, 붓다 입멸 후 수차례의 경전결집 과정에서 정형화된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아생이진(我生已盡) 범행이립(梵行已立) 소작이판(所作已辨) 불수후유(不受後有).”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실제로 한역 경전에서 이러한 사구의 게송은 각각의 구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면 ‘아생이진(我生已盡)·범행이립(梵行已立)·소작이작(所作已作)·자지불수후유(自知不受後有)’, ‘생이진(生已盡)·범행이립(梵行已立)·소작이판(所作已辦)·불경수유(不更受有)’, ‘제루이진(諸漏已盡)·범행이립(梵行已立)·소작이판(所作已辦)·불수후유(不受後有)’, ‘생사이진(生死已盡)·범행이립(梵行已立)·소작이판(所作已辦)·경불수유(更不受有)’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이들 중에서 ‘아생이진·범행이립·소작이판·불수후유’가 가장 일반적인 정형구이다. 아생이진은 오취온(五取蘊)으로부터 발생한 결박을 끊었고, 범행이립은 청정행으로 현세에서 열반에 이르렀고, 소작이판은 수행을 통해 허망한 번뇌를 끊어 과를 증득했으며, 불수후유는 해탈하여 미래에 다시는 윤회의 속박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구의 게송이 붓다에게서 유래했음을 초기불교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아함경』의 예를 들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만일 범행을 하는 자가 그대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어떻게 -나는 지혜를 얻어서 생사를 이미 여의었고, 청정행도 이미 이루어졌고, 해야 할 바도 이미 다 하였으며,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진실 그대로를 안다-고 말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대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세존이시여 ‘여러분, 그래서 모든 애욕이 다하고, 놀람도 없고 두려움도 없으며, 의심도 없고 미혹도 없다. 이같이 행하고, 그와 같이 수호하면 선(善)하지 않은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라고, 만일 범행을 하는 자가 와서 물으면, 저는 이같이 대답하겠습니다.”
이는 붓다 자신이 자증(自證, 스스로 체득한 깨달음)한 지혜를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그들이 교화 과정에서 응대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아라한의 사구 게송은 초기불교 경전에서는 별다른 명칭 없이 정형구로만 나타나고 있었으나, 대승불교 경전에서는 비로소 그 명칭이 사지(四智), 나한사지(羅漢四智), 이승사지(二乘四智), 해탈사지(解脫四智) 등으로 정착된다. 특히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 523~592)의 『대승의장』에서 ‘나한의 사지’라는 개념이 정립되기에 이른다. 『대승의장(大乘義章)』 「사지의(四智義)」에서 “사지는 아생이진・ 범행이립・소작이판・불수후유 네 가지이다. 이 네 가지는 사성제의 지혜와 같다”고 했다. 그리고 가상(嘉祥) 길장(吉藏, 549~623)의 『승만보굴(勝鬘寶窟)』에서는 “사제의 하나하나에 의거해 보면 모두가 이 ‘아생이진’ 내지 ‘불수후유’ 등 네 가지 의미를 구족하여 쓰고 있다”고 함으로써 나한사지는 곧 사성제의 실천 및 결과임을 말하고 있다.
아라한의 네 가지 지혜인 나한사지를 풀어보면 ‘나는 생사로부터 이미 벗어났고, 해야 할 제반의 수행도 이미 완수하였고, 수행자로서 해야 할 바도 이미 다 완성하였으므로,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를 세밀히 살펴보면, 아생이진은 ‘허망한 중생의 죽음[分段死]으로부터는 이미 벗어났다’는 뜻이고, 범행이립은 ‘현세에서 청정행의 실천으로 유여열반(有餘涅槃)의 과를 증득하여 사사롭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뜻이고, 소작이판은 범부는 물론 일곱 성자도 그 이전에는 끊지 못했던 허망한 번뇌를 ‘팔정도 등의 수행을 통해서 끊었다’는 뜻이며, 불수후유는 ‘아라한이 끊은 번뇌는 두 번 다시 미래에 윤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깨달음의 피안(彼岸)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아라한
“지금 내가 너희를 위하여 법을 설하겠다. 이 법은 수승한 이치이며, 수승한 범행이며, 수승의 안온(安穩)으로 마침내 열반으로 들게 한다. 나의 설법대로 행하는 자는 유루에서 벗어나 무루를 이루고 심해탈(心解脫, ceto-vimutti)・혜해탈(慧解脫, paññā-vimutti])에 이르러 스스로 행하여 마침내 체득하게 되는데, 그것은 ‘생사를 이미 여의었고, 청정행도 이미 이루었으며, 해야 할 바도 이미 다 하였으므로 다시는 몸을 받지 않음’이다.”
초기불교에서 아라한은 수행자로서 최고의 단계를 의미한다. 이들은 중생교화를 위한 설법의 의무 또한 당연히 부여된 승속(僧俗)을 막론한 최고의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으며, 석존 입멸 후에는 세간의 실질적 지도자이면서 승단의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라한은 모든 고(苦)를 멸한 사람이면서 행(行)해야 할 모든 일을 행한 사람으로 간주했다.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애욕의 최후 흔적이 소멸한 순간에 생기는 멸(滅)의 인식과 멸의 인식을 얻은 후에 더는 미래에 생겨나지 않으리라는 불생(不生)의 인식을 하는 자가 바로 아라한이다.
성자에서 보살로 편입된 아라한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초기불교에서 아라한은 깨달음을 성취한 자로 일체 번뇌를 끊어 고(苦)가 다한 경지를 성취하여 더는 생사윤회의 세계에 나지 않는 최고 단계의 수행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대승불교는 성자 아라한의 지위를 보살십지(菩薩十地) 등의 계위(階位, 지위나 등급) 안으로 편입한다. 그러면서 각종 경전이나 의례·의식에서 제대아라한(諸大阿羅漢)을 공양한다.
나한사지 또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초기불교에서는 수행자로서 얻게 된 결과적인 깨달음의 관점이었다.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성불로 가는 과정에서 수행자가 반드시 행해야 할 덕목임은 물론 대승보살의 필요불가결한 수행의 과정이나 절차의 일부분으로 흡수됐다. 다시 말하면, 아라한의 나한사지는 수행의 완성을 뜻하지만, 대승불교에서의 나한사지는 아직 수행 과정에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초기불교의 아라한은 나한사지라는 수승한 깨달음을 증득해 도피안(到彼岸, 피안에 이름)을 이룬 최고의 성자이다. 불교의 교조인 붓다 또한 최고의 아라한으로서, 그의 제자들은 붓다를 롤모델로 삼아 범행을 계율과 같이 여겼다. 하지만 아라한은 이론상 수행 계위로 보거나 교학적으로 대승불교보다 미열(微劣)한 수준에 있는 성자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승불교에서 아라한(나한)은 붓다와 미래불 사이인 현세에 머물면서 성(聖)과 속(俗)을 이어주는 우리 중생의 영원한 성자이다. 붓다의 깨달음인 나한사지를 증득한 불교 성자 아라한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으로 발전한 대승불교 철학을 경계하고, 현실적 삶과 다가올 미래를 연결하기 위해 지금도 시시처처(時時處處)에서 애증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강대현
위덕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실담장 관련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초빙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한의 사지에 대한 일고」, 「조선시대 진언집 실담장의 범자음운 및 사상의 체계」 등 다수의 논문과 『실담자기역해』 등 저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