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 스님의 선禪 이야기(3)] 위산사로 출가한 다국적 스님들

2021-07-28     현안 스님
미국 위산사. 1920년대에 설립된 교회 건물을 2017년 매입해서 절로 리모델링했다. 사진 서주 스님.

이번 글에서는 영화 스님의 두 번째 미국 대승 수행 도량이며, 제가 출가한 미국 캘리포니아 수행 공동체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위산사는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가 주석하며 법을 펼쳤던 위산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위산사 앞 지장보살. 사진 서주 스님.

영화 스님과 미국 수행 공동체 ‘위산사’

영화 스님은 중국 위앙종(潙仰宗, Wei Yang Lineage)의 9대 조사인 선화 상인(1918~1995)을 만나서 출가하셨습니다. 참고로 상인(上人)은 중국에서 큰스님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선화 상인은 영화 스님이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습니다. 영화 스님은 선화 상인의 문중에서 사미승으로 수행하다가 결국 미국 캘리포니아의 만불성(萬佛聖, City of Ten Thousand Buddhas)*을 떠나서 선지식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영화 스님은 살아있는 스승 없이 가야 하는 길이 불확실하게 느껴져 매일 뼈저린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만불성은 선화 상인의 여러 도량 중 가장 큰 본사 사찰에 해당합니다.

영화 스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아픔을 겪게 하지 않으려고, 언제나 질문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스승보다 법문도 늘 더 오래 하셨고, 선(禪)에 대한 지침도 서양 문화에 맞게 더욱 명료하고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영화 스님은 참선을 지도하기 시작하셨을 때, 한 가정집 거실에서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선을 지도하시다가, 노산사(盧山寺, Lu Mountain Temple)를 기부받은 후 선(禪)과 정토를 동시에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스님을 따라 수행하던 제자들이 하나둘씩 출가했고, 미국 노산사부터 한국 보산사(寶山寺, Jeweled Mountain Temple)까지 영화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출가한 스님은 이제 13명이나 됩니다. 현재 그의 미국 도량에는 한국 스님도 네 분 상주하며 수행 정진 중이며, 인종·문화·나이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재가불자와 함께 수행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 위산사는 사실 1920년대에 설립된 교회 건물입니다. 2017년 거의 폐허가 된 교회 건물을 매입해서 지금까지도 계속 리모델링 중입니다. 심지어 건물 꼭대기의 십자가도 아직 철거하지 않았고, 2층 유리창엔 스테인드글라스로 예수님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현판도 달기 전에 위산사는 이미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늘 붐볐습니다.

위산사 사부대중은 하루 일과를 능엄신주, 대비주(신묘장구대다라니) 등의 여러 진언과 반야심경, 위타찬, 삼귀의, 예조를 포함한 새벽 4시 아침 예불로 시작합니다. 이후 정해진 소임이 없이 상주하고 있는 스님들과 자진 봉사하는 수행자가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점심 식사가 끝나면 한국의 자비도량참법과 유사한 천수천안대비참회법을 합니다. 저녁 예불은 아미타경과 팔십팔불참회를 격일로 하고, 능엄주의 오대심주와 약사주 등의 진언으로 하루를 마칩니다.

베트남 출신 스승과 다국적 제자들

영화 스님은 베트남인이지만,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과 MBA를 모두 미국에서 마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하다 보면 ‘아! 스님은 진짜 미국인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 스님을 만나 가장 먼저 출가한 현계(XianJie) 스님은 스위스계 미국인입니다. 로스엔젤리스에서 태어나서 UCLA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했습니다. 현계 스님은 대학 때부터 불교에 흥미를 느꼈고, 일본 젠 센터에서 10년 가까이 불교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스님을 만나고 나서야 ‘지적 불교’가 아닌 진정한 ‘수행[行]’과 선정(禪定)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대만에서 태어난 현신(XianXin) 스님도 어릴 때 미국으로 가족과 함께 이민 왔습니다. 그래서 중국어는 할 수 있지만, 미국 문화가 더 익숙합니다. 현신 스님은 출가 전 큰 기업의 수석 엔지니어였습니다.

현인(XianRen) 스님은 베트남인으로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미국 이민을 왔습니다. 집안이 모두 천주교인이었고, 영화 스님을 만나기 전까지 본인도 천주교인이었습니다. 선화 상인의 법문집을 읽고 수행에 관심이 생겨서 영화 스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처음엔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는데, 노산사에 오자마자 3개월 만에 출가하게 됐죠.

현회(XianHui) 스님은 중국 상하이 태생으로 결혼 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예전에 선칠(禪七, 중국 정통선 수행법으로 한국의 안거와 유사) 수행마다 위산사에 와서 몇 달씩 수행하다가, 2019년 1월 동계 선칠을 마치자마자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출가한 두 사람을 제외하면, 미국 위산사 승가 중 가장 막내가 바로 저입니다. 2012년 영화 스님을 통해 참선과 불교를 접한 후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대중과 함께 수행하는 것이 더 큰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인이지만 중국의 승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위산사에는 베트남 출신 영화 스님을 스승으로 베트남인, 중국인, 대만인, 한국인, 미국인의 승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통 선맥을 이은 선화 상인의 가풍과 종지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불도 중국 스타일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스님은 예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최상의 법을 하고 있기에 그걸 완전하게 통달하기 전까지는 바꿀 필요가 없다.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선화 상인의 법이 최고였고, 예불도 그러하다. 그러니 예불도 중국식으로 하는거다.”

지난 수년간 미국 노산사와 위산사에 한국 스님과 수행자가 꽤 많이 왔습니다. 한국 불교가 아직도 강력하고 풍부한 역사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오픈 마인드의 수행자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인은 한국 문화와 역사에 자부심이 있지만, 선지식을 찾아서 밖으로 나가는 걸 꺼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일 좋은 것이라면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은 좋은 스승이 있다고 여기면 어려움과 불편을 마다하지 않고, 태국, 미얀마, 베트남, 대만, 유럽 그리고 미국까지 전 세계로 찾아갑니다. 그렇게 이들은 위산사까지 찾아가게 된 것이죠.

영화 스님은 수년 전 노산사에 있을 때부터 우리가 ‘아메리칸 챤(American Chan)’, 즉 ‘미국의 선(禪)’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산사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동양계 미국인이라 그렇게 말해도 믿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국 방문객에게 우리가 미국 절이라고 말해도, 자꾸만 “여기 베트남절인가요?” 또는 “영화 스님은 중국 스님인가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 미국 대승 불교를 개척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미국 위산사부터 한국의 보산사까지 우리는 어떤 종교와 문화 배경을 가졌든 상관없이 누구든 모두 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중국 정통 선맥인 위앙종의 법을 이어받아서 수행하고 있지만, 다양한 인종, 종교, 나이, 문화 배경을 가진 모든 이와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곳이 된 것입니다.

십여 년 전 노산사에서 참선을 배울 때 ‘한국인 도반들도 이곳에 찾아와 함께 수행하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건 어려울 것 같다’라며 단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제가 한국 청주 보산사에 와서 이렇게 고향 사람들과 함께 수행하며 안락하고 멋진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런 나눔의 기쁨은 혼자만의 수행으로 얻은 작은 즐거움보다도 훨씬 더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나눔의 기쁨을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수행과 불교 공부에서 생긴 질문이나 문제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는 질문이라면, 다음 연재에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현안 스님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중 노산사(盧山寺, Lu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만나 참선을 처음 접했습니다. 수행 정진하다가 불법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현재는 스승의 뜻에 따라 국내로 들어와 청주 보산사(寶山寺, Jeweled Mountain Temple)에서 참선(챤 메디테이션, Chan Meditation)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