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 향기 봄바람에 실어 보내는 효산 스님

불광초대석 | 여래선원 여여불교대학 학장 효산 스님

2021-06-25     최호승

시인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잔인한 4월이라던 봄, 부산의 한 불교대학에선 순풍이 불었다. 막 문을 연 도심 포교당에서 시작한 불교대학 첫 졸업생이 150명에서 딱 1명 모자랐다. 

감소하는 출가수행자, 이미 고령화에 접어든 불자들, 식어버린 불교대학 열기…. 아무리 ‘불교 도시’ 부산이라지만 설명하긴 어려운 바람이었다. 
그 중심에는 부산 여래선원 주지 효산 스님이 있었다. 두 개의 도량 살림을 도맡고, BTN불교TV 방송 진행자면서, 여여불교대학 학장이었다. 절 살림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이 시국에 2~4개 소임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스님이었다. ‘쓰리잡 스님’이라는 별칭(?)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궁금했다. 부산 여래선원으로 향했다. 

 

사진. 유동영

 

히트다 히트! 불교대학

효산 스님과 담소를 나누기 전, 한 재가자가 스님과 함께 부산 여래선원 불사에 땀을 흘렸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범어사 포교국장 시절부터 불교대학 운영에 남다른 열정과 능력을 보였다고 스님을 치켜세웠다. 그 역시 여래선원과 여여불교대학을 향한 애정이 커 보였다. 도량으로 안내하면서 계단 옆 빈 곳의 길이를 재고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메모했다. 도량 안도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재가자들이 스스로 사무를 챙기고, 북카페 소소(昭昭)의 여기저기를 매만지며 정리하기 바빴다. 도량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급히 돌아온 스님은 오자마자 도량과 마음을 섞었다. 카페 카운터 바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내려 재가자들에게 건넸다. 자연스러웠다. 오래됐다는 얘기다. 이 편안한 분위기를 틈타 편안하게(?) 질문했다. 

 

Q 불교대학 1기 수강생을 모집할 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돼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019년 10월 여래선원을 개원하고 2020년 3월에 불교대학 1기 신입생을 모집했는데, 입학식 공지를 보내기 일주일 전에 코로나19가 터졌어요. 빠르게 유튜브로 전환한 게 도움이 됐죠. 유튜브를 전문적으로 하진 않아요. 여여선원과 범어사 불교대학에서도 항상 유튜브로 불자 예절, 부처님 일대기 등 PT와 동영상 같은 부교재를 공유했던 경험이 쌓여서 곧바로 유튜브 전환이 가능했어요.”

어엿한 도심 포교당 주지이지만 촬영 환경은 녹록지 않다. 효산 스님이 촬영과 편집을 도맡아 혼자 북치고 장구를 쳐야 한다. 영상이 매끄럽지 않지만 필요한 내용을 충실히 싣고 불편함 없이 편집하노라면 시간은 순삭(순간 삭제)이다. 

 

Q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교대학 첫 졸업생이 149명이나 된다. 비결이 있나.

“도량의 접근성이 좋아요. 도량 인테리어도 한몫했죠. 예를 들면 법당과 선방을 연결하면 강의실로 탈바꿈하고, 동시에 빔프로젝터로 북카페에 앉아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했어요. 아예 도량을 구성할 때 불교대학을 염두에 뒀어요. 강의도 괜찮은 것 같아요. 부처님의 대기설법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어로 아주 깊은 법의 도리를 감동적으로 쉽게 풀어서 설명해야 명강의이자 명강사예요. 씹어서 삼키고 소화되지 않으면 그런 강의를 할 수 없더라고요. 어머니가 이런저런 음식 재료로 뚝딱 만드는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체화된 레시피와 손맛이죠. 이점을 늘 생각하고 준비해서 강의하는 편인데 어렵네요(웃음).”

Q 맛있는 강의 하나 들려달라. 

“부부는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한 몸처럼 지내는 인연이에요. 처음엔 서로 집착을 몰랐던 사람이 결혼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깊게 집착하는 존재들이 되죠.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는 도량이 바로 부부라는 도량이에요. 존재 자체로도 고마웠던 사람과 살면서 보니 아주 깊은 집착이 생기는 현상을 직시할 수 있어요. 전혀 몰랐던 사람을 자신의 삶 속에서 배려하며 산다는 게 보살의 원력이 없으면 힘들죠. 어떤 인연에도 끌리지 않는 무한한 자비심으로 상대를 한순간이라도 대할 수 있을까 자문하며 정진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요. 출가자가 아니더라도 재가자 역시 스님들이 선방에서 치열하게 정진하는 것처럼 부부라는 도량을 선방 삼으면 됩니다. 전 결혼을 안 해봤지만(웃음).”

 

Q 스님의 강의를 맛있는 음식에 비유할 때 별점 몇 개를 줄 수 있을까?

“★★★☆☆. 2개 정도는 아직 완벽하지 못해요. 더 노력해야죠.”

스님의 열정적인 강의는 물론 모든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여여불교대학 바람을 거들었다. 경전 강의는 물론 경주 남산 탐사, 출가학교, 불교로 푼 인문학 등 구성이 알찼다. 코로나19 발생 전 1기 등록자가 349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였다. 비록 코로나19로 프로그램이 취소됐지만, 유튜브로 꼭 필요한 경전 강의를 집중적으로 진행해 효과를 봤다. 부산 연산동 도심에 있는 도량 위치도 퇴근 후 직장인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도량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예쁘다!” 범어사 도심 포교당 부산 여래선원 첫인상이다. 곳곳에 정성이 묻어났다. 도량으로 향하는 계단 옆 벽면에 게시판과 사진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했다. 입구는 작은 등으로 장엄한 ‘붓다 트리’가 놓였고, 북카페 소소는 책 진열장을 비롯해 전통차와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좌식과 입식을 겸비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카페 천장 곳곳엔 등이 걸렸다. 과하지 않았다. 불자가 아닌 이들이 소소한 배려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여래선원 여여불교대학은 지난 4월 치러진 조계종 제26기 포교사 고시에서 부산 지역 최대 합격자 성적표를 받았다. 61명이 지원한 부산에서 48명이 합격했는데, 20명이 여여불교대학 응시자다. 20명이 지원해 20명 전원이 합격했다. 130여 명이 등록했다는 불교대학 2기 강의도 진행 중이다. 인천 용화선원 선방 도반이자 BTN불교TV ‘소나무’ 진행자 광우 스님도 ‘불교개론과 수행’을 강의한다. 덧붙이자면, 수시 모집이다. 

Q 여래선원을 개원하자마자 불교대학부터 시작한 이유는?

“불교대학에서 부처님 가르침, 즉 정법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문 강사가 인증된 교재와 커리큘럼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불교대학이에요. 불교가 갈수록 고령화되고 운영이 어려워도 해야만 하는 불사죠. 특히 도심 포교당에서 많이 투자해 항상 좋은 교육을 제공해야 해요. 스님으로서 제가 생각하는 서비스이자 역할이자 전법 원력입니다. 총력을 기울여서 더 나아갈 생각이에요.”

 

선업과 악업 나눠 가진 우리

효산 스님의 원력은 포교, 다시 말해 전법이다. 스스로 불교에서 고통을 푸는 열쇠를 발견했다. 이 좋은 가르침의 맛을 다른 사람도 맛보면 좋지 않을까. 불교대학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 어디쯤이다. 스님은 대학 시절에 찾아온 출가 인연에서부터 그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스님은 시를 좋아하는 문학청년이었다. 하지만 삶 자체가 괴로웠다. 선의가 남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얽히고설킨 인연의 실타래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는 현실의 족쇄가 아팠다. 창작교실이 보은 법주사에서 진행될 때였다. 일찍 잠들었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나왔던 문학청년을 발견한 지도교수의 한 마디도 인연이었다. “자네, 새벽예불 가려고 일어났나?” 내친김에 법주사 새벽예불에 참석했고, 의례와 염불의 장엄함에 전율을 느꼈다.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해주 스님과 인연도 문학청년에게 출가라는 길의 방향을 넌지시 내보였다. 시 창작 열의로 시험을 하나 놓쳐 뒤늦게 해주 스님 연구실에서 시험을 치른 적이 있었다. 꾸짖지도 않고 오히려 차를 내어주시면서 시험 범위를 알려주시고 답안 작성을 기다려주셨단다. 문학청년은 신세계를 접했다. ‘스님들은 정말 이렇게 자비롭구나.’

종립대학 동국대에서는 불교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졸업을 앞두고 불교학과 수업으로 학점을 꽉 채웠다. 뜻을 몰라도 너무 좋았다고. 소원 들어주는 기복적인 종교로만 알았던 불교의 다른 점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게 즐거웠다. 삭발염의하기로 했다. 은사 정여 스님에게 출가 결심을 밝혔다. “등골 빠지게 고생해서 자식 대학 보낸 부모님 심정도 헤아려야지. 중노릇 1~2년 할 것도 아니고, 졸업장은 따고 오거라.” 문학청년은 졸업식 바로 다음 날 부산으로 내려가 출가했다. 

 

Q 대학 시절 출가를 꿈꿨다고 들었다. 학점이나 취업 걱정보다 남다른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천수경』에 ‘죄무자성 종심기 심약멸시 죄역망 죄망심멸 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罪無自性 從心起 心若滅是 罪亦亡 罪亡心滅 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라는 구절이 있어요. 직역하자면 ‘죄는 자성이 없어 마음(생각)으로 쫓아 일어나니, 마음이 만약 멸하면 죄 또한 멸하니 죄도 잊고 마음 또한 멸해 둘이 함께 공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진 참회라고 한다’는 뜻인데,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죠. ‘죄는 모든 인연의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인데, 나도 너도 지울 수 있다’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서로 선업과 악업을 주고받는 삶에서, 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래서 서로 용서하는 길은 부처님 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은 자비심뿐이더라고요. 뭔가 용서받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Q 불교대학 학장으로 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불교는 역사인가, 철학인가, 사상인가, 종교인가, 인문학인가.

“불교는 자각의 종교에요. 믿음을 기반으로 하지만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렇죠. 우리 삶이 서로 고통의 조건을 나눠 가지고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해요. 사바세계의 모든 존재가 선업과 악업을 나눠 가지면서 살죠. 내가 하는 선업조차 남에게는 악업이 될 수 있어요.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동고동락하면서 해결해 나가는 종교가 바로 불교에요. 고통을 알아야 이해하고, 이해하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같이 벗어나려고 하는 자비심이 생기죠. 그래서 자각의 종교이고, 이것이 불교의 위대함입니다.”

 

Q 불교를 알아갈 때 혹은 믿음을 키워갈 때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면?

“바람직한 믿음의 첫 번째 조건은 부처님 말씀처럼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해요. 내가 체험했기에 남에게도 똑같은 자각 체험의 인연을 이어줄 수 있어요. 그래서 수행공동체가 중요합니다. 각자 그 믿음의 깊이가 다를 수 있지만 수행하고 나누면서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익혀가며 제대로 된 부처님 말씀을 헤아려야 하죠. 여기서 익어가는 믿음이 바람직해요. 부처님과 자신과의 일대일 믿음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곁에서 보기에 효산 스님 하루 일정은 빡빡하다. 4월부터 시작한 BTN불교TV ‘붓다테라피’ 녹화, 불교대학 강의 유튜브 제작, 여래선원과 경산에 자리한 절 삼성사 관련 업무, 여러 인연과 만남…. 늦은 저녁 개인적인 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불교대학 강의를 위한 독서를 한단다. 일요일이면 삼성사에서 불교대학 강의도 한다. ‘쓰리잡 스님’은 바쁘다. 

 

Q 지금 행보는 전법 원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출가초발심이 무엇이었나.

“선방 수좌라면 좌복에서 끊임없이 정진해도 좋겠고, 승가대학 강사라면 매일 부처님 말씀 공부하면서 깊은 뜻을 헤아리는 혜안을 얻어 후학을 가르쳐도 좋겠죠. 하지만 제 원력에는 불자들이 있어요. 전국 어느 절이든 스님이 없더라도 불법승 삼보에 의지해 수행과 포교를 함께할 수 있는 도량을 일구고 싶어요. 모범적인 선례를 남기면 좋겠어요. 여여불교대학 1기 졸업생이 첫걸음입니다.”

시인 천양희는 시 ‘첫 꽃’에서 사막만년청풀은 첫 꽃을 피우기 위해 사막에서 몇십 년이나 견디고, 연꽃 씨앗도 첫 꽃을 피우기 위해 늪에서 몇천 년이나 견딘다고 했다. 부산 여래선원 여여불교대학의 봄, 바람이 불었다. 2기 수업이 한창이니 스치고 지나갈 봄바람이 아니다. 효산 스님 원력이 바람 타고 법의 향기를 흩날리고 있다.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서 가지 못한다. 법의 향기 속 진리의 씨앗은 어디서 뿌리 내리고 언제쯤 싹을 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