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감춘 암자] 지리산 도솔암
청매 조사의 푸른 기운, 법등과 자등으로 빛나는 지리산 1,200고지 도솔암
“산속에는 좋은 일이 아주 많아
속세의 즐거움에 비길만하다네
솔바람 소리는 거문고나 비파 소리와 같고
단풍 숲은 고운 비단 색 같다네
홀로 앉아 보고 듣기 충분하니
득실을 따질 일 없네
사람이 찾아와 텅 빈 쓸쓸함을 위로하면
나는 그이에게 미소지으리라.”
조선 중기 지리산 도솔암에 주석했고 올바른 수행자의 길을 이르는 「십무익송」을 남긴 청매 조사의 시다. 적적한 산사를 떠오르게 하는 시상은 스님이 도솔암에 머물며 지은 게 아닐까 싶다. 스님은 서산 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에 승장으로 함께 참전했으며, 문장이 뛰어나 170여 편의 선시를 남기기도 했다. 스님은 변산 월명암과 연곡사, 영원사 등에서 주석한 것으로 전해지며 승탑은 영원사에 모셔져 있다. 청매 조사 이후로는 조계종 10대 종정을 지낸 혜암 스님이 지금의 도량을 닦으면서 한두 철 지냈고, 뒤로는 상좌 정견 스님과 여러 수좌 스님들이 도솔암을 거쳐 갔다. 5년 전부터는 혜암 스님의 손상좌인 적능 스님이 수행 중이다.
노장님(혜암 스님)이 여기 사실 때 이야기는 당신 평전에 나와 있어요. 스님 여든 생신 때 상좌스님이 “그동안 정진하셨던 곳 중 어느 곳이 가장 기억에 남으십니까?”하고 여쭈니까 “정견이랑 능혜를 데리고 청매 토굴 살 때가 제일 좋았지”라고 하셨대요. 스님이 상무주에 사실 때 청매 조사가 사셨던 터가 방치돼 있는 기 걸리셨던지, 정견 스님한테 언제 한 번 가보라 하셨나 봐요. 어느 가을날 정견 스님이 처음 올라와 보니 산죽과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지은 움막이 반쯤 허물어져 있는 기, 그동안 수좌들이 다녀간 게 역력카더라네요. 그 뒤로 3년이 지나(1982년) 불사를 시작했고, 노장님도 불사하는 동안 동안거를 여기서 함께 나셨대요.
지대가 1,200고지다 보니까, 여름 되면 거의 안개가 끼어가지고 어떤 때는 한 달 동안 거의 해 보기가 어려워요. 내가 들어오면서 태양열 판넬을 설치했는데, 5년 되니까 이제 배터리가 약해져요. 안개가 아니더라도 여가 또 일조량이 적어요. 겨울에는 두 시면 해가 넘어가 버려요. 그러다 보니 이제 작년 겨울에 무지 차기까지 해서 배터리가 저게 방전이 되다시피 했어요. 일조량이 없는 때는 발전기를 써서 충전하는데, 있던 거는 고장이 나서 새로 하나 사야 해요. 인자 돈 준다케도 짐 져줄 사람도 없어요. 천상 내가 지게로 져요. 물은 얼지만 않으면 바위틈에서 콸콸 잘 나오는데, 겨울이면 얼어서 저 아래 물 솟는 데서 얼음 깨고 받아와요. 석간수라 물맛이 좋아요.
연등은 12연기 12줄을 달아요. 한 번 밖에 못 쓰지만, 종이 주름등이 좋드라고요. 초 녀가지고 일일이 켭니다. 예불 끝나고 30분쯤 탑을 돌면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해요. 거의 12시까지 타는데 그때까지 지켜봐요.
티베트 까큐파 수행을 해요. 인도에서 한 12년 살았어요. 우리 선원에서 12안거를 났나 그래도, 난 테는 통 성취가 없다 보이 인제 뭐 안 바르다고 여겼어요. 내 생각으로는 선만으로는 안 되겠고 삼신(법신·보신·화신)을 함께 성취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한국에는 그런 부분을 대답해 주는 스님들이 없더라고요. 그래 찾다 보니 티베트 불교가 모두 공부할 수 있더라고요. 티베트 불교는 논서를 철저히 보죠, 체계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뛰어나요. 근본불교에서 유식·중론·구사론 그리고 밀교까지…. 거기서는 경전만 보는 기 십몇 년이에요. 종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달라이 라마의 겔룩파는 좀 더 길어요. 경전을 배우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행을 안 시켜요. 경전을 외우지 않으면 토론을 할 수가 없어요. 십몇 년 동안을 외우고 논쟁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업식을 다 깨내는 거예요. 다른 견해가 들어올 수 없게 바른 법에 대한 기둥을 세와 놓는 과정이에요.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스승이 없는 거는 아니에요. 내가 못 봐서 그렇지.
여기 들어와서는 3년을 문을 닫았어요. 티베트 불교 과정에서 3년 3개월을 공부하면 업식이 많이 바뀐다고 하거든요. 사람들이 도솔암은 지금까지도 문을 닫은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3년 문을 닫는 동안, 부산에서 매주 한 번씩 오가는 거사님이 계셔서 반찬도 갖다 주시고 필요한 거는 배낭에 넣어서 올려주시고 그랬어요. 그분 아니고는 다른 신도님들은 안 계세요. 내가 뭐를 해도 남들보다 좀 빠르게 해요. 밥도 글코 반찬도요. 다행히 올라온 사람들이 힘들게 올라서 허기가 져서 그런가 맛있다 그래요. 내가 먹어봐도 도솔암 밥이 맛있어요. 올 부처님오신날에는 진주 떡집에서 날라온 떡을 오신 분들한테 나눠줄라고 해요. 힘들게 지고 올라왔어도 드실 분한 테는 드려야죠. 등을 달아주시면 좋고요.
상주에도 떨어지지 않고 단멸에도 떨어지지 않는 상태를 중도라고 그러거든요. 모든 실상을 보드라도 중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성이 없이 찰나찰나 생멸하니까 상주가 아니고, 한편으론 이름으로 존재하니까 단멸하는 것도 아니에요.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