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닿는 암자] 금강산에도 없는 금오산 약사암
기와 없어도 비 가릴 수 있으며, 창문 없어도 바람 막을 수 있다
백 길의 푸른 바위 하늘로 솟았으니
바위를 등지고 위태롭게 서 있는 암자는 언제 지었는가.
발아래 천 길 골짜기는 바라보기가 두렵고
굽어보니 아득하고 아득하게 보이는 세상이 점과 같네.
높다란 층층의 잔도는 원숭이마저 시름겹게 하고
궁벽한 곳에 핀 꽃에는 두견이 울고 있네.
-장복추의 『사미헌집』 중 시 ‘약사암’
금오산은 해발 976m로, 동쪽으로 구미가, 남쪽으로는 칠곡이 그리고 북서로는 김천이 에워싸고 있는 바위산이다. 금오산이라는 이름은 구미 도리사와 인연이 깊은 아도 화상이 금오산을 지나다 황금빛이 나는 까마귀가 석양 속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지은 것이라 한다.
산의 남쪽으로 가야산이, 서쪽으로는 덕유산이 보이는 높은 산인데도, 멀리서 보면 한낱 동네 산 정도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면적이 지리산의 1/10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혜폭포를 지나 헐떡고개를 올라보면 거칠고 야윈 산의 900여m가 얼마나 무겁고 숨 가쁜 길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가파른 길과 다르게 정상은 분지를 이루고 최고봉인 현월봉을 비롯해 보봉, 약사봉이 나란히 있어 삼형제봉이라 한다. 신라 때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약사암은 약사봉 바로 아래에 있고 직지사 대혜 스님이 그곳에서 홀로 지낸다.
“하나의 크고 높다란 바위가 공중을 떠받들고 우뚝 솟아 있다. 바위 중간에 입을 벌린 듯 큰 구멍이 나 있고 아래로 좁은 석문이 있다. 석문 안으로 십수 보 걸어가면 약사암이 있다. 암자는 암혈에 지었는데, 용마루와 기와 없이 비를 가릴 수가 있으며 또 창문 없이도 바람을 막을 수 있었다. 암자에는 한 분의 늙은 스님이 있었는데, 문에서 우리를 맞이하여 말하기를 ‘이런 암자는 금강산에도 없습니다. 금강산에 있는 보덕암이 은 기둥에 쇠사슬로 묶여 있어 기이하다면 기이하다고 하겠지만, 이 암자에 비하면 풍치가 하등급입니다’라고 하였다. 일을 만들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손발을 써서 어떻게 이렇게 높다랗게 매달린 몇 칸의 집을 지었는지. 암자 아래의 돌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약천의 물을 동료와 함께 표주박으로 떠서 마셨다.”
위의 내용은 조선 근대 영남을 대표하는 유학자 3인 중 하나였던 사미헌 장복추의 『금오산유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터랄 것도 없는 바위 밑에 전각을 세워야 했으니 축대를 쌓아 겨우 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정도로만 공간을 만들고, 전각은 가능한 한 바위에 붙여서 지었을 것이다. 일주문을 거쳐 내려가는 길 또한 계단이 생기기 전에는 발아래로 아득하게 낭떠러지가 보이는 잔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려 초에 세 약사부처님을 지리산에서 모셔왔는데, 한 분은 수도암에, 또 한 분은 직지사에 그리고 한 분은 여기에 모시고 그랬죠. 내려오는 말이 그래요. 두 곳 부처님은 보물이 됐죠. 여도 보물이 될 낀데 개금을 해가지고 보물이 몬 됐죠잉. 여기는 그래 부처님을 높은 데로 모시고 오니까 모습이 좀 특이하죠잉. 수도암이랑 직지사 부처님은 광배를 가졌는데, 여는 등이 납작하고 다리는 짧고 그래요. 그래가지고 인제 얼마 전에 곰이 왔잖아요. 수도산에 왔어요. 아 그래 갖고 여도 왔어요. 재작년(2019년) 6월 6일 현충일에 여 와서 1박 2일 있다가 다시 수도산으로 갔다 하드만요. 여 왔다가 1박 2일인가 있다가. 허, 그거참 아주 신기해요. 부처님 모시고 온 길하고 비슷하단 말이죠. 그래서 아주 신기해요.”
주지 대혜 스님의 말이다.
범종은 1979년 어느 때에 만들어진 듯, 고 박정희 대통령 일가의 이름과 당시 정부 각료, 군부 실세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각료들 이름 위에 있던 이름은 어느 날 지워져 버렸고, 쇠사슬에 묶여 자물통까지 매단 당목은 좀처럼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산에 오르면 힘이 솟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대구 칠성시장에 있는 직지사 포교당의 중현 스님은, 전날 밤 8시 무렵 당신의 지게로 20kg이 넘는 전기보일러를 짊어지고 약사암까지 올랐다.
“공양주 보살도 없고, 일하는 사람도 없고 하니깨네 내가 다해요. 밥도 하고 간단한 반찬도 만들고, 보일러 고장 나 손도 보고 법당에 앉아 기도 접수도 받고. 사람들 오먼 인제 사탕 한두 개씩 주는 재미가 있죠. 등산객들은 영 파이고. 오먼 커피만 마시고 잔도 안 씻고 그러고 가버려요. 그중에 가끔 참배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지만. 한 사람이 ‘야 여 커피 있다’ 허먼 우르르 와서 마시고 잔도 안 씻고. 매너도 없이. 그래도 등산객들이 여까지 와 가지고 한 잔 먹는 기 어딥니까.
커피는 맥스웰 가루 커피 있잖아요. 자판기용. 거만 하먼 맛이 별로 없으요. 법당에 알갱이 커피 있잖아요. 그거 3:7로 섞어 먹으먼 맛이 틀리죠잉. 병에 든 알갱이 3, 맥스웰 7 그래가지고 설탕은 단맛 날랑말랑 연하게 해가지고. 물 먹듯이 그래 먹으먼 되죠. 여기 물이 좋은데 사람들이 좋은 줄을 몰라요.
“직지사에서 교무, 포교 소임을 보면서 포교 원력을 세웠어요. 2018년에는 20년 넘게 소년범 교화 활동에 매진한 공로로 ‘교정의 날’ 국무총리 포상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청소년 포교가 중요한데, 범종단 저인망식 포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위에서 그걸 못해요. 불교의식 같은 것도 한글로 하면 좋은데 진행이 잘 안 돼요. 그래서 『한글 신행의식집』을 냈어요. 49재 봉송 같은 거도 한글로 된 거 해주니까 아주 좋아하는 거예요. 하는 사람도 잘 모르는 말을 한 시간 두 시간 듣고 있으면 듣는 사람은 벌 받는 기지. ‘이 세상 모든 것 잊어버리고 좋은 곳에서 안락하게 계셔라.’ 이렇게 풀어주면 좋잖아요.”
짐이 조금 있거나 금오산성을 보고 싶다면 해운사까지 오르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단 휴일 방문이라면 케이블카 운행시간인 오전 9시 이전에 케이블카 주차장에 도착해야 주차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편도 요금 6,000원을 아낄 수 있는 대신 약간의 체력과 30여 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케이블카 주차장에서 대혜폭포까지는 완만하고 평이한 길이라 큰 짐을 지지 않았다면 걷는 데 부담은 없다. 대혜폭포는 명금폭포라고도 하며 폭포 우측으로는 도선굴이 있다. 대혜폭포로부터 곧장 이어지는 헐떡고개는 만만치 않은 여정의 준비단계로서, 남은 길을 단단히 준비케 하는 격려의 이름이라는 것을 고작 몇 발치 만에 알게 한다.
헐떡고개에서 마애불과 정상으로 나뉘는 갈림길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마애불까지 0.6km, 거기서 다시 0.6km를 더 가면 약사암에 오를 수도 있으나 같은 길로 내려온다면, 약사암에 가기 위해서는 정상 쪽 이정표를 따라가는 게 낫고, 마애불은 내려올 때 들르는 게 비교적 체력소모가 덜하다. 65L 배낭 안에 가득 찬 15kg 이상의 장비를 메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장비는 메고 가는 내내 나의 발목을 잡기도 했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업장과도 같이 질겨서 부처님 전이나 돼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 매번 그렇게 잠시 족하고 만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