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인도 16 인도 불적 답사를 마치며
불국토 순례기, 부처님이 나신 나라, 인도 마지막회
뉴델리(New Delhi) 역을 기점으로 시작된 답사길이 산치(Sanchi)를 지나 데칸고원의 크고 작은 석굴 사원에 머물렀다가, 대승 보살들의 발자취가 어린 남인도를 휘돌아서, 북인도의 8 대 성지를 둘러보고 상카쉬야(Sankasya)에서 끝을 맺는다. 근 달포 동안 인도의 동서남북을 종횡한 셈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인도에 살면서 인연닿는 대로 이런 저런 사람들과 둘러보았던 여러 불적 지를, 이번에는 연이어서 일주한 셈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세세한 일정을 미리 계획하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대략의 목적지를 정하고 발길 닿는대로, 차편이 허락하는 대로 따라 간 답사 길이었다. 인도에 대한 나의 애정이 맹목적이듯, 불적을 돌아보는 것 또한 맹목적이 고자 했다. 돌이켜 보건대, 목적을 잊어버린다는 것이 목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는 생 각이 든다.
인도의 불적 답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고행이다. 깨부수어야 할 고정 관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분명한 일정을 기약할 수 없으니 예약이 불가능하고, 예약 없이 타는 기차는 늘 밀 고 당기는 전쟁(?)이 불가피하다. 혹 운이 좋아 좌석을 얻는다 해도, 정작 타고 보면 이미 나의 좌석이 아닌 경우도 많다. 삼등칸의 혼잡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차 안에서의 식사는 ' 위생적이다. 비위생적이다'의 분별을 가지고는 불가능한 일에 속할 것이다. 열대 기후 속에 서 대여섯 시간씩 밤기차에 시달리며, 때로는 화장실 입구 통로까지 밀려나와 쭈그리고 앉 아 밤을 새기도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깨우치는 것이 있다면, 한 가닥의 허망 분별이라도 떠나 보낼 수 있다면, 고정 관념에 찌든 나의 현존을 직시할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생을 무릅쓰고라도 길을 떠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 문일 것이다.
이번 답사 길은 작정하고 나선 고행 길이었다. 물론 불적 답사가 구경거리나 찾아 다니는 관광일 리 없다. 나를 들어 역사와 대면하게 하는 것, 그 역사가 나에게 건네오는 장엄한 목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적벽돌의 흔적 위에 흩어지는 무상함을 곱씹고, 지푸라기처럼 가벼운 목숨에 실린 한없는 욕망과 번뇌의 무게를 가늠해 보는 것, 바위를 쪼아 삼차원의 형상으로 나타낸 신심을 읽어 내는 것, 대상을 통하여 정작 나의 진면목을 깨우치는 것, 이런 것이 잊어버리되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불적 답사의 본래 목적일 것이다. 물론 이번 답사 길이 꼭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건 유적이건 첫인상이 가장 강하게 남는다. 찰나간에 일어났다 문득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 안의 일상이란 다만 찰나간의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하겠지만, 다람쥐 쳇바 퀴 돌 듯,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또한 내일일 것 같은 나에게는, 이전에 본 것은 이미 처 음이 아니고, 두 번 대하는 것은 느낌이 덜하다. 숨은 의미를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보이는 물상에 사로잡히는 까닭일 것이다. 이미 처음이 아닌 북인도의 여러 성지보다는, 오히려 대 개는 초행이었던 데칸 고원의 석굴 사원들에 대한 인상이 더욱 강렬하게 남아 있다.
데칸 고원에서의 감동은 지금도 가슴 속에 되살아난다. 버려진 석굴에 남겨진 납자들의 흔 적들, 그 속에서 묻어나는 그들의 고뇌를 나의 현존에 대입하며, 그들이 누웠던 돌 침상 위 에 누웠던 나는 누구며, 그들은 또한 누구였던가? 손수건 만한 살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발 아래의 속세는, 푸른 안개에 쌓인 속세는 또한 그들에게 무엇이었으며, 나에게는 무엇인가? 납자들이 없으니 이미 절이 아니라 할 것이지만, 전해 오는 감동이 오히려 큰 것은 그것이 단지 첫인상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꾸미고 멋을 부린다는 것이 오히려 훼손을 가져오는 것은 경박한 시멘트 문화의 한계라 할 것이다. 쇠창살에 가두어 구차하게 존재를 연명시키느니, 차라리 세월을 따라가게 하는 것이 바랄 만한 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납자들은 가고 없고, 다만 '관 리'되고 있을 뿐인 불적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불 적은, 자연히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 순례자들을 부를 것이다.
거꾸로,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 순례자들은 구경거리에 불과한 불적을 만들어 내는 것도 당 연하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 인도 불적의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관리'되는 불적의 이면에 숨은 상업주의는, 이미 갈대로 가버린 이 시대의 문화 수준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전세의 연이었다고밖에는 설명 할 길이 없는 이번 연재를 마감한다. 그저 거기서 받은 감동을 되새기며 가슴에 묻어 두어도 될, 차라리 그랬어야 할 이야기들의 연재를 허락한 < 불광>에 감사 드리며, 읽어주신 불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릴 따름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