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2022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 | 2021 학교도서관저널 6월 추천도서 | 2021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반기 청소년추천도서 | 2021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 추천도서 어느 수줍은 국어 교사의 특별한 시리아 친구 이야기
저작·역자 | 김혜진 | 정가 | 14,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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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1-03-15 | 분야 |
1)사회>사회문제 2)청소년>청소년인문사회 |
책정보 |
135*200mm | 312쪽|ISBN 979-11-90136-40-2 (03300) |
“차별의 시각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낯선 존재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중학교 국어 교사인 저자는 어느 날 한 시리아 청년을 만난다. 압둘와합이라는 이 청년은 시리아에서 명문 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엘리트였다. 시리아와 한국 사이의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지만, 한국에서의 일상은 전혀 만만치가 않았다. 심지어 그사이 압둘와합의 모국 시리아는 민주화 혁명에 이은 전쟁으로 큰 혼란에 빠진다. 그의 가족도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음은 물론이다.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는 평범한 중학교 교사가 만난 한 시리아 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압둘와합이라는 친구를 두면서 비로소 무슬림과 난민, 이주민 등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친구의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와합과 함께 ‘헬프시리아’라는 구호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이른다. 압둘와합과의 만남에서부터 제주도 예멘 난민 이슈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압둘와합이 겪은 여러 이야기를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또한,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를 실었다. 시리아의 역사와 문화, 복잡한 현대사와 가슴 아픈 현실을 차근차근 정리한 이 글을 통해, 낯설지만 우리와 묘하게 닮아 있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열길 바라는 마음으로.
김혜진
시와 댄스를 사랑하는 중학교 국어 교사. 떠밀리듯(?) 시리아 구호 인권 단체 헬프시리아의 창립 멤버가 된 이후, 8년 가까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행동이 느리고 에너지도 부족한 편이나, 일단 뭔가 시작하면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기는 한다. 우연히 시리아에서 온 와합과 만나 친구가 되는 바람에 난민·차별·인권 문제, 그리고 세계 시민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교단에서는 본인이 경험하고 생각한 이야기를 직접 나누기가 쑥스러웠다. 글을 통해서라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썼다.
압둘와합은 누구인가요?
압둘와합 알무함마드 아가(Abdulwahab Almohammad Agha). 대학원 박사 과정 학생이자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시리아에서는 다마스쿠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전액 장학금이 보장된 프랑스 대신 국교도 수립되지 않은 한국을 선택해, 한국에 온 시리아인 유학생 1호가 되었다. 한국과 시리아를 잇는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을 공부하며 ‘아랍 법(이슬람법 포함)과 한국 법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평화로운 시리아로 돌아가 집 앞 맑은 유프라테스강에 발을 담그고 꿀같이 단 수박을 먹으며 한국에서 시리아를 사랑해 주는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시리아 구호 인권 단체 헬프시리아가 궁금하다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helpsyriaplease
블로그 https://blog.naver.com/helpsyria
책 머리에
1장 낯선 문명과 만나다
내키지 않는 약속 | 낯선 세계로의 문이 열리다 | 라, 라마단?! | 이 사람, 정체가 뭐야? | 유프라테스강이 부른 반전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 - ① 역사
2장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다마스쿠스가 다메섹이었어?! | 씩씩하고 쾌활한 와합의 속사정 | 유서 깊은 집안의 더없이 귀한 아이 | 일가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 한국인들의 대부 | 변호사가 되다 | 프랑스가 아닌 한국으로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 - ② 정치
3장 압둘와합의 좌충우돌 한국 생활
시간이 약 | “와합, 왜 매일 전화해?” | 힘겨운 대학원 순례기 | 운명적인 전화 한 통 | 헬프시리아가 출발하던 날 |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 - ③ 전쟁
4장 헬프시리아가 선물한 날들
항상 켜져 있는 와합의 핸드폰 | 꿈에 그리던 가족과 만나다 | 전쟁의 한가운데로 | 헬프시리아의 첫 구호 활동 | 얘들아, 너희는 특별하단다 | 삶은 지속된다 | “혹시 락까 사람 아닌가요?” | 모교 후배들과 함께한 캠페인 | 헬프시리아가 이루어 낸 기적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 - ④ 난민
5장 내 친구의 가족이 난민이 되다니
죽음의 바다를 건너야 하는 칼릴 | 모두가 잠 못 이루는 밤 | IS의 강제 징집과 어린 동생들 | “이제 우리는 난민이 되었구나.” | 칼릴의 올리브유 | 마지막 탈출 | 나올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길 | 뜻밖의 후원자와 따뜻한 크리스마스 | 폭설 속에 태어난 조카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 - ⑤ 문화
6장 그들을 만나고 나서
농담처럼 시작된 터키 여행 | 와합 가족과 함께한 여름 | 터키의 개와 고양이에게 묻고 싶은 것 | 와합의 여권 | 터키에서 만난 예멘인 선생님 | 난민이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걸까 | 만약 무슬림이 아니었다면 | 변화의 조짐
못 다한 이야기
감사의 글
전액 장학금 준다는 프랑스를 뒤로하고
한국에 와 생고생 중인 시리아 엘리트 청년
그를 만나 어쩌다 NGO 활동가가 되어 버린
한국의 평범한 중학교 국어 교사
그들이 친구가 된 뒤,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이주민이나 난민과 함께 사는 삶은 이제 더 이상 남의 나라 일도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한반도 밖 다양한 곳에서 온 구성원들이 한국 사회를 함께 지탱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학교에서 다문화 교육, 세계 시민 교육이 중요해진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많은 편견과 차별에 둘러싸여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말이 큰 반향을 일으킨 건 선의와 상관없이 이미 우리가 차별적 언행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편견과 차별이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편견이고 무엇이 차별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 대상자의 입장에 서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기에 낯선 존재와 친구가 되어 그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차별주의자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다.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의 저자 역시 압둘와합과 친구가 되기 전만 해도 ‘이슬람 포비아(공포증)’ 상태였음을 조심스레 고백한다. 하지만 와합과 친구가 되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의 눈에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시리아와 시리아 사람들의 삶도 어느덧 친근하게 다가왔다. 시리아 전쟁과 그로 인해 발생한 난민 문제도 더 이상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저자는 기대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와합과 그 가족 이야기, 시리아 이야기를 다른 이들도 알게 된다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시리아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또 시리아의 비극에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그가 이 책을 쓴 이유기도 하다.
“혹시 시리아 사람이라서 싫니?”
-불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압둘와합과의 첫 만남
중학교 국어 교사인 저자는 어느 날 서울 강남역에서 한 시리아 청년을 만난다. 압둘와합이라는 아랍풍 이름부터 무척 부담스러웠지만, 은사님의 요청이라 마다할 수가 없었다. 은사님은 “혹시 시리아 사람이라서 싫니?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도 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더더욱 거절할 수가 없었다. 명색이 교사인데 국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미루고 미루다 결국 만나기로는 했지만 뭔가 모를 불편함은 여전했다.
막상 만나 보니 그 시리아 청년은 한국어를 곧잘 했고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할 줄 아는 능력도 있었다. 경계심이나 두려움이 가신 것은 아니었으나, 고향에서 유프라테스강(세계 4대 인류 문명 발생지의 그 유프라테스강!!)에 발 담그고 달콤한 수박을 먹곤 했다는 이야기에 발동한 호기심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흥미로운 첫 만남 이후, 저자는 그렇게 낯선 문명에서 온 이와 친구가 되었다.
“난 이슬람이 싫으니까, 다른 교수 찾아 보게.”
-한국에 온 시리아인 1호 유학생이 겪은 일들
압둘와합은 시리아에서 최고 대학으로 인정받는 다마스쿠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프랑스로 유학 갈 예정이었지만, 어느 날부턴가 프랑스가 아닌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마스쿠스 거리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매던 한국인 유학생을 우연히 도운 것을 계기로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와 돈독한 관계가 되어, 어느샌가 ‘한국인들의 대부’와도 같이 되어 버린 압둘와합. 시간이 지나 그 친구들이 하나둘씩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와합은 그들이 무척 그리웠다. 그러다 그때까지 한국으로 유학 간 시리아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내가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가족, 지도 교수, 선배 변호사 들의 만류에도 기어코 선택한 한국행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출발은 막막하기만 했다. 시리아와 한국은 수교국이 아니라 국가 장학금은 신청도 할 수 없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원을 백방으로 찾아 나섰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면전에서 “솔직히, 나는 이슬람과 무슬림이 싫어. 다른 학교 다른 교수님을 찾아가 보게.”라고 이야기하는 교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비자 만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한 대학원의 입학 허가를 받았고, 그렇게 한국에서 법학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와합은 지금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랍 법과 한국 법의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이제 우리 가족은 난민이 되었구나.”
-친구의 가족이 난민이 되니 보이는 것들
와합이 겨우겨우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일상을 찾아가고 있을 즈음, 모국 시리아는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독재자 아사드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고, 정부가 이를 폭력으로 탄압하면서 결국 반군(자유시리아군)이 생겨나고 내전이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자유와 민주를 염원하는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반군이 승기를 잡는 듯 보였으나, 시리아를 둘러싼 주변국과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와합의 고향 락까는 그 악명 높은 IS의 본거지가 되고 만다. 와합의 가족은 IS의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 시리아 북부 지역의 유력 가문이기도 했던 와합의 가족은 그렇게 난민이 되어 지금 터키에서 지내고 있다.
시리아의 전쟁과 이로 인한 난민 문제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와합은 시리아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한다. 모금 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믿을 만한 단체가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와합은 바로 단체를 만든다. 그게 바로 현재 시리아 난민 구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헬프시리아’다. 저자는 자신의 말이 씨앗이 되어 진짜로 시민 단체가 만들어지자, 어쩔 수 없이(?) 이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헬프시리아는 그동안 작은 규모의 단체임에도 의미 있는 성과들을 내 왔다. 큰 규모 국제기구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작은 규모의 난민 캠프를 찾아 구호 활동을 펼쳐 왔는데,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비행기표 값을 아끼기 위해, 와합이 국내 취재진이나 연구진의 현지 가이드 일을 하게 될 때 며칠씩 따로 시간을 내어 인근에서 적절한 물품을 사 필요한 난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다 현지에서 물품보다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지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학교 세우기’에 집중하여, 2019년에는 시리아 쿠부리 지역 난민 캠프 근처에 9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등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과연 그들은 무슬림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만나 본 적이 있을까?’
-혐오와 협박을 쏟아냈던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서, 시리아를 돕는 뜻깊은 일까지 하면서 훌륭하게 지내는 것 같은 와합마저도 온갖 악플과 위협에 시달리며 지낸다. 와합의 SNS에 “한국에서 떠나지 않으면 죽이러 가겠다”는 내용의 살벌한 댓글이 달리기도 하고, 길에서 “테러리스트 아니냐”, “너희 같은 애들 때문에 정부가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여러 번 있다.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대거 들어왔던 2018년은 우리 사회에 무슬림과 난민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다. 신분이 노출된 난민들에게 섬뜩한 혐오의 메시지와 협박이 마구 쏟아져서 인권 단체들이 난민 혐오 범죄 대응단을 따로 꾸릴 정도였다. ‘와합은 주변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가족 같은 친구들이라도 있지만 아는 이도 없이 이런 혐오와 협박에 노출되는 이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저자의 걱정은 한층 확장되어 갔다.
무슬림은 강간범이고 이들이 들어오면 대한민국 여성들이 위험해질 거라는 주장을 보면서는,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과연 무슬림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만나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집필이 더욱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만난 무슬림 친구 압둘와합을 잘 소개하면 이들의 마음도 열릴 거라 믿기에.
시리아,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나라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의 역사·문화·정치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있다. 바로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다. 시리아인의 시각으로 시리아의 역사·문화·정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아주 소중한 글이다. 한국에는 늘 서구의 시선으로 소개되고 있는 시리아와 중동에 대한 이야기가 못내 불편했던 압둘와합은 이번 기회를 맞아 최선을 다해 자국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교차로에 정확히 위치한 시리아의 입지 조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로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살고 있는 도시 다마스쿠스, 로마 제국에 기독교 전파의 싹을 틔운 시리아 출신 황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리아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이런 시리아가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스스로 서기 위해 투쟁하고, 또 독립 이후에 내부 혼란을 겪는 이야기는 한국의 현대사와도 겹치는 점이 많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전쟁의 복잡한 양상도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조금씩 이해가 간다. 늘 이웃 가게를 배려하는 시리아 상인들의 독특한 문화는 읽는 이를 미소 짓게 만든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이 책을 읽고 시리아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가, 더 나아가 평화를 향한 꿈을 함께 꾸는 와합의 친구가 한 명이라도 더 늘면 좋겠”다고 말한다.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가 공존하는 삶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독자들의 좋은 친구가 되길 바란다.
와합과의 첫 만남에서도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왔다. 그가 “시리아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을 존중해 주는 나라”라고 했지만 그다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나라를 관용적인 나라로 보이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와합의 말은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기독교 관련 공휴일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공휴일이 있다는 것은 공식적으로도 인정을 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이슬람 공휴일은 이슬람 공휴일대로, 또 기독교 공휴일은 기독교 공휴일대로 쉬며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에 석가탄신일, 성탄절이 같은 공휴일로 있는 것처럼. 나의 편견으로 와합의 말을 그대로 믿어 주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2장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중 ‘다마쿠스가 다메섹이었어?!’에서
참 무심했던 나는 와합의 아픔을 처음에는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눈앞의 친구가 매우 안쓰럽기는 했지만, 뉴스로만 본 전쟁이나 폭격은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낯설고 머나먼 곳의 이야기였다. ‘분쟁이 있구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니 어떡해. 너무 안됐다…….’ 그 정도 생각뿐. 마음이 차가웠던 것 같다. 더구나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나는 시리아 상황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러나 변화는 있었다. 와합의 사정을 안 이후로는, 뉴스에서 시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귀가 기울여지기 시작했다. 그 뉴스에서 보도하는 상황에 따라 잠을 못 이루고, 예민해지고, 절망하는 친구가 생겼으니까.
-‘2장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중 ‘씩씩하고 쾌활한 와합의 속사정’에서
세세한 사정을 몰랐던 나는, 와합이 암울한 시리아 상황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매번 신나는 일들을 계속 SNS에 올리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철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했던 생일 파티 장면을 빠짐없이 다 올리고, 신나 보이는 경험들을 계속 올리는 이유. 모두 가족 때문이었다. SNS를 본 지인이나 친척이 와합의 가족에게 ‘아주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알려 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올렸던 거다.
-‘4장 헬프시리아가 선물한 날들’ 중 ‘항상 켜져 있는 와합의 핸드폰’에서
정부군은 일부러 병원을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의료진을 죽여서 평범한 시민들의 치료를 막고, 극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기 위해서였다. 다리를 절단당한 환자도 병원의 간호사였다. 다음 날 방문한 다른 병원의 환경도 마찬가지로 열악했다. 방공호를 파고 그 안에 병원을 감추어 겨우 남아 있던 그곳에서는, 의료 장비가 없어서 가정용 드릴을 이용하여 수술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마취제와 진통제도 없었다.
-‘4장 헬프시리아가 선물한 날들’ 중 ‘전쟁의 한가운데로’에서
난민 캠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캠프 밖의 세상을 전혀 모른다고 한다. 심지어 얼룩말, 사슴 같은 동물이나 작은 곤충들도 모를 만큼 기초적인 지식이 없기도 했다. 본 적이 없으니까. 들려오는 이야기라곤 온통 전쟁에 대한 것뿐이다. 그들에게는 캠프 안이 세상의 전부다. 그러나 이제 이 아이들에게 ‘미래’라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4장 헬프시리아가 선물한 날들’ 중 ‘헬프시리아가 이루어 낸 기적’에서
와합의 가족은 난민이다. 그러나 지내는 동안 나는 그들이 난민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적이 별로 없다. 그만큼 웃음이 많고 유쾌했다. 다정하고 유머 감각이 넘쳤다. 아마도 ‘난민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내게도 있었나 보다.
나에게 이즈미르에서의 시간은 난민을 만난 시간이 아닌, 그저 ‘친구의 친절한 가족과 함께한 아름답고 행복한 여름날’일 뿐이다. 난민이 되었지만 여전히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과 같이한 시간.
-‘6장 그들을 만나고 나서’ 중 ‘와합 가족과 함께한 여름’에서
와합과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대화 중간에 내가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얘기하는 중이었다.
“그때는 몸이 좀 웃겼어. 살이 많이 빠져서 삐쩍 말랐거든. 팔다리는 엄청 가늘고, 그런데 배는 볼록 나오고. 꼭 소말리아 난민 아이들처럼.”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소말리아 난민’이란 단어가 말 끝에 비유적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딸려 나왔다.
그때였다. 와합이 정색하며 말했다.
“누나, 과거에 소말리아가 얼마나 전통이 있고 번영했던 나라였는지 아세요? 누나 말을 들으니 나중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날도 오겠네요. ‘아이고, 불쌍한 시리아 난민 아이같이~’라고요.”
-‘못 다한 이야기’ 중에서
와합과 친구가 되지 않았더라면 시리아의 일은 그저 먼 나라의 문제였을 것이고, 난민 문제도 그냥 딱한 남의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와합과 친구가 되니, 그 친구가 무슬림이나 외국인이라서 겪는 많은 편견과 차별이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친구의 가족이 난민이니 난민 문제에도 저절로 관심이 갔다. 더 나아가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회 소수자에게도 점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들도 누군가에겐 친구이고 소중한 사람일 테니까.
-‘못 다한 이야기’ 중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그 시작을 함께한 시리아는 인류가 처음으로 정착하여 땅을 경작하고, 가축을 기르고, 도시를 계획하기 시작한 곳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토대인 문자(우가리트 문자)를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지요.
아담의 자손인 에벨이 유프라테스강에서 메소포타미아로 건너와 세운 나라인 ‘에블라 왕국’,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국가인 ‘수메르 왕국’, 고대 항구 도시였던 ‘우가리트’와 같이 인류사의 잉태와 함께한 이 땅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문명의 교차로’라고도 불립니다.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 ① 역사’ 중에서
시리아 사람에게 ‘시리아’를 한 단어로 소개해 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모자이크’라고 답할 겁니다. 다양한 민족·사상·종교(종파)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 평화롭게 함께 살아오며 서로를 존중했기 때문이죠.
(…) 시리아 현대사에서 프랑스 점령에 반대한 독립군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양한 민족과 종교에 속한 인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독립을 주장한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기독교인인 파리스 쿠리입니다. 그는 유엔 창립 회의에 시리아 대표로 참여해 창립 헌장에도 서명한 인물입니다. 유엔에서 오랫동안 시리아 대표를 맡았으며 시리아에서 장관·국회 의장·총리로도 오래 일했습니다.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 ② 정치’ 중에서
인터넷에서 시리아 혁명의 원인을 검색해 보면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로 종교 갈등, 한 종교 내 종파 갈등, 민족 싸움, 경제적인 이유 등이 원인으로 언급되지요. 이것들이 모두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외국 전문가, 특히 서방 언론들이 애써 주목하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정치입니다.
앞서 언급된 원인들이 시리아 혁명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지만, 핵심은 정치입니다. 대다수 시리아 국민은 알아사드 독재 정권을 싫어하고 반대합니다. 정권을 교체하여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의로운 정부를 세우고 싶다는 마음이 혁명의 출발점입니다.
(…) 알아사드 독재 정권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인데, 서구의 언론들은 늘 이 쟁점을 피하고 시리아 문제를 바라봅니다.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 ③ 전쟁’ 중에서
시리아에서 상인들은 아침에 가게 문을 열면 문 옆에 작은 나무 의자를 놓아두고 영업 준비를 합니다. 첫 번째 손님이 와서 물품을 구입하고 가면, 주인은 그 의자를 가게 안으로 밀어 넣지요. 그러다가 두 번째 손님이 와서 사고 싶은 물건을 말하면, 상인은 가게를 나와서 주변 가게를 확인합니다. 아직 의자가 문 옆에 남아 있는 가게가 있다면,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판매하지 않고 동종의 이웃 가게로 안내합니다. “저기 가게가 보이죠? 저 가게에 가면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어요” 하고 말이죠. 시장에 있는 모든 상인이 ‘첫 판매’를 해서 문 옆에 있는 의자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상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양보합니다.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 ⑤ 문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