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세상 하나뿐인 브랜드 나를 채우는 공간
명당의 품격
현무, 청룡, 백호, 주작
현대인들은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을 무조건 ‘명당’이라 한다. 복권 1등 당첨자를 배출한 복권 명당, 낚시터에서 입질이 잘되는 포인트 명당, 어느 특정 장소에서 전망하기 좋은 뷰 명당, 장사가 잘되는 대박 명당, 특화된 장소의 터줏대감 집터 원조 명당, 교통이 편리한 역세권 명당, 주변에 공원이 있는 숲세권 명당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명당은 차별화된 입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뿐이다. 반면 풍수지리 명당은 발복(發福, 운이 트여 복이 닥침)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세를 갖춘 곳이어야 한다.
‘명당’은 밝을 명(明)과 집 당(堂)이다. 밝은 것은 생명력인 에너지를 표출하는 동적인 양(陽)의 기를 말한다. 집은 공간이며 유·무형의 기를 생성하거나 머금고 있는 정적인 터인 음(陰)의 기를 뜻한다. 생명력의 원천은 자연 속 천기(天氣)가 필요하며, 공간은 지기(地氣)를 받도록 보국(保局)을 갖춰야 한다. 보국은 사신사(四神砂, 현무·청룡·백호·주작)로 이루어진 지세(地勢)를 갖춘 곳이다. 지세의 역량을 가름하는 것은 주산(主山, 땅의 기운을 공급하는 산)으로, 백두대간맥-정맥-지맥으로 이어진 용맥의 끝자락에 기봉하여 강한 정기를 머금고 있는 산이다.
현무봉(玄武峰)은 주산의 용맥이 행룡(行龍, 높았다 낮았다 하며 멀리 뻗어 나간 산맥)하다가 정기를 응집시키면서 솟아오른 산이다. 현무봉은 오형산(五形山, 목형산·화형산·토형산·금형산·수형산)을 이루어 각각의 지기를 품고 있다. 목형산(木形山)은 봉우리의 끝자락이 붓처럼 생긴 형태로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르며 학자나 청백리를 관장하는 기를, 화형산(火形山)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형태로 예술인을 배출하는 기를, 토형산(土形山)은 일자 ‘一’ 형태로 영상사(領相砂)라 하며 높은 관직과 명예의 기를, 금형산(金形山)은 둥근 형태의 노적봉(露積峯)을 뜻하며 거부(巨富)의 기를, 수형산(水形山)은 물결처럼 봉우리가 이어진 형태로 언론인의 기를 갖고 있다. 따라서 현무봉의 모양에 따라 어떠한 지기를 받는 터인지를 알 수 있다.
주산과 현무봉의 용맥은 행룡하다가 물을 만나면 멈추면서 땅으로 입수해 지기를 생성하는 소명당(小明堂)을 이룬다. 소명당 내의 융기된 터를 양택지는 ‘중심 공간’ 음택지는 혈(穴)로 정의한다. 그리고 소명당의 여기맥(餘氣脈, 혈을 만들고 남은 기운이 빠지는 공간)에 의해 앞쪽은 중명당(中明堂)이 형성된다. 이때 좌청룡과 우백호가 서로 감싸는 지세에 따라 규모가 정해진다. 즉 양택지는 넓고 수구(水口, 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곳)를 갖추어야 재물이 모이는 땅이며, 음택은 지당(池塘, 연못)을 형성하면 진혈(眞穴)이다. 현무봉과 마주하는 곳에 안산(安山, 앞에 있는 산)이 좌정해 있고 보국 안에 물길을 얻으면 명당지세를 갖춘 곳이다.
명당과 풍수는 현재진행형
조선 왕실은 태조가 북악산 정기를 받는 곳에 궁궐을 세워 국가를 위한 명당 입지를 정했다. 이후 왕실은 주산의 청룡지맥에 종묘(宗廟)를 조성해 선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고, 백호지맥에는 사직단(社稷壇)을 세워 풍년을 기원하는 천신제를 올렸다. 그리고 선대 왕이 승하하면 왕릉을 명당에 모시고자 도성 100리 안팎에서 터를 구했다. 지금의 동구릉을 비롯해 서울 근교에 40여 기가 조성됐다. 통치자로서 왕실의 안위와 국가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좋은 기를 받고자 몸소 행한 것이다. 500여 년 동안 신성한 공간으로 보존된 종묘는 1995년, 조선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소중한 문화유산이 됐다.
지역 문중도 가문이 배출한 인물과 입향조(入鄕祖, 어떤 마을에 맨 먼저 정착한 사람이나 조상)를 모시고자 고향의 길지를 찾아 묘역 공간인 세장지(世葬地)를 조성해 대대로 이어오고 있다. 이곳은 주산의 용맥이 혈을 이룬 명당에 귀(貴), 부(富), 손(孫)의 발복을 받는 좌향(坐向, 집이나 묘의 앞 방향)에 따라 터를 선택해 장례를 치렸다. 예를 들면 가문의 출중한 인물이 탄생하는 지기를 받기 위해선 귀절(貴節)의 네 방위인 자(子, 북)-오(午, 남)-묘(卯, 동)-유(酉, 서) 좌향으로 유택(幽宅, 무덤)을 정했다.
그리고 가문의 절손을 막기 위해 손절(孫節) 좌향인 건(乾, 북서)-곤(坤, 남서)-간(艮, 북동)-손(巽, 남동)의 용맥이 입수한 터에 용사(用事, 묘를 쓰는 일)를 했다. 또 가문의 번성을 위해 부절(富節)인 진(辰)-술(戌)-축(丑)-미(未) 좌향으로 혈처를 취했다. 결론적으로 가문과 나라의 동량을 배출하기 위한 터 잡기를 실행한 것이다.
종택 마을은 약 300~500여 년 동안 현존하고 있는데 당시 영남사림파 입향조에 의해 입지선정이 됐다. 주산을 중심으로 사신사를 갖춘 곳에 정주 공간을 정했고 종택의 정침 공간은 현무봉의 용맥이 입수하는 좌향으로 놓았다. 대문도 생기방(生氣方, 생기가 들어오는 방향)에 두어 기의 유입이 쉽게 했다. 또 사랑채 뒤편은 사당을 조성해 불천위를 통한 제례 문화로 가문을 응집시키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주택의 공간배치도 동사택(東四宅: 북, 동, 남동, 남)과 서사택(西四宅: 북동, 북서, 서, 남서)의 방위에 따라 대문·안채·부엌이 서로 혼합되지 않도록 했다. 이것은 동·서사택의 방위를 혼용하면 나쁜 기가 유입해 구성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당시 선조들은 자연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식했으며,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구성원들과 지속적으로 상생할 수 있도록 입지 및 공간을 설계한 것이다. 유택지의 좌향을 선택한 것은 조상을 매개로 동기감응을 받고자 한 것이다. 특히 양택지의 공간 배치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주산의 용맥이 들어오는 좌향으로 정침 공간을 정했고 후손 발복의 좋은 지기를 받도록 했다. 양택 3요소인 대문·안방·부엌의 공간배치도 구성원의 안녕과 가문의 번영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재벌가와 유명인사들은 선영을 명당에 모셔 발복을 받았다. 예전에 땅을 보는 일은 지관의 몫이었기에 아무나 명당을 찾아 발복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제도권에 풍수지리학이 들어와 융복합학문으로 정착했다. 신분 여하를 떠나 누구나 관심이 있다면 땅의 이치를 알 수 있으며, 자신이 직접 명당을 찾을 기회도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생활하는 입지가 어떤 곳인지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명당은 주산의 생기를 받는 곳이므로 그 지역의 산을 의지하는 입지를 선택하는 게 발복하는 일이다. 산에 오르면 기를 직접 느낄 수 있고 피부는 피톤치드를 흡수하게 된다. 특히 해가 뜨는 5시~7시쯤이 생동감 있는 태양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시간대다. 아침운동이 좋은 이유는 천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의 기와 몸 안의 기를 환기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져서 일의 능률이 오른다. 발복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산을 의지하는 곳으로 거처를 정하면 몸이 저절로 기를 받는 행동을 하는 게 명당 입지의 효과다. 명당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브랜드는 자신이다. 명당을 알고 실천한다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은 지력(地力)과 연관된 것으로, 땅을 역량에 맞게 입지하면 결과는 달라진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남향 집터를 구하기 위해서는 3년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좋은 터를 구하기 쉽지 않고 터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의미다. 좋은 땅은 생기를 받아 흥하는 곳이며 지속성을 갖는다. 즉 집터가 좋으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일어나며, 절터가 좋으면 기도발이 잘 받는 곳이 되고, 장사 터가 좋으면 재물이 따르는 곳이다.
이처럼 터의 역량에 따라 발복은 다르게 나타나지만, 입지 환경에 의해 개운(開運, 운이 열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듯하며 기울지 않고 토질이 단단하고 토색이 양명한 땅이면 좋은 기를 받는 곳이자 좋은 집터다. 정사각형과 직방형의 땅 모양은 기를 모으는 형태지만 삼각형과 마름모형은 기가 흩어지는 형태다. 특히 건물[陽]과 마당[陰]의 비율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생기를 받을 수 있다. 즉 건물과 마당의 비율이 6:4이거나 5:5가 가장 안정적인 비율이며, 건물은 후면배치가 좋다. 이같이 집터의 모양, 건물과 마당의 비율, 건물 배치는 터의 역량을 판단하는 풍수 지표가 된다. 집터 주변 형세는 상생한다. 앞에 지당이 있으면 재물의 기를 받고, 안산 봉우리가 목형[貴], 금형[富], 토형[富貴]을 이루고 1km 내에 있으면 조응한다. 따라서 좋은 집터는 주변 형세에 따라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터의 논리다.
산속에 입지한 사찰 초입에서 처음 마주하는 곳은 일주문이다. 일주문 현판은 ‘00산00사’처럼 사찰명 앞에 산 이름이 먼저 명시해 있다. 산을 먼저 언급한다는 것은 도량의 중요 전각들이 산의 정기를 받는 곳에 입지한 사실을 말해준다. 또 산사 경내에 산신각을 두어 산신이 존재하도록 했다. 주불을 모신 대웅전이 다섯 칸 건물이면 주산의 용맥이 석맥으로 입수하는 좌향으로 중앙에 주불을 좌정시켰다. 주산의 강한 정기가 머문 곳에서 기도발을 받도록 한 것이다. 대부분 부속 암자 터도 입석 형태의 거석을 의지하고 있어 기도발을 강하게 받도록 했다. 따라서 사찰이 오랜 세월 동안 현존한다는 사실은 좋은 땅의 기를 계속 받아왔다는 뜻이며, 향후 많은 고승과 불자를 배출하는 명찰로 발복이 지속될 것이다.
도심 공간에 자리하면서 역사가 오래된 초·중·고등학교의 교가 속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00산’의 정기를 받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산은 영험적 공간의 대상으로 예로부터 산악숭배 사상과 지모 사상이 내재되어 강한 기를 머금고 분출하는 곳으로 인식했다. 그러므로 학교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주산의 정기를 간접적으로 받는 명당 터임을 강조한 것이다. 풍수지리의 주산은 강한 기를 분출하는 산세를 갖춘 곳이라면 보조산은 역량이 미약하여 제대로 된 정기를 받지 못하는 산이다. 따라서 교가 속의 주산은 학생들에게 좋은 정기를 강하게 받아 인성을 갖춘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다.
3대 원조 터는 1대의 개척과 2대의 정착 그리고 3대의 확산으로 개운이 이어져 왔기에 가능하다. 1대는 독자생존의 정신력을 바탕으로 터를 지켰다면 2대는 주변 상권을 형성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정착하고, 3대는 그 지역을 기반으로 전국적인 마케팅을 전개해 본점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3대 원조의 기간은 60년 전후여야 가능하다. 좋은 터의 생기를 받아왔기에 올곧은 삶을 공유할 수 있으며, 향후 사회에 환원하는 선행으로 이어져 덕을 쌓는 계기로 만들면서 지속적인 공간으로 남게 된다. 시대에 편승한 단기간의 장사로 매출을 올려 갑부집이니 대박집으로 불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집터가 되는 셈이다.
종묘·천년고찰·종택, 지켜야 할 영지
영지(靈地)란 신성하고 영험한 땅으로 명당 속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풍수지리 측면에서 보면 하늘도 감추고 땅도 숨긴다는 천장지비(天藏地秘) 터인데 자연이 쉽게 열어주지 않아서 혜안을 가진 자만이 볼 수 있는 명혈지(明穴地)이다. 이곳은 살아 숨 쉬는 땅[生地]이라 강한 지기를 품고 있다. 또 신이 가진 공력을 빼앗아 천명을 바꿀 수 있는 탈신공개천명(奪神功改天命)의 발복지다. 풍수 문헌에 “신령한 터를 얻기 위해서는 평소 많은 적덕을 쌓아야 하고 다음은 국풍(國風)을 만나 재혈(裁穴)을 잘해야 명당의 지기를 온전히 받는다”고 했다. 요약하면 영지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이뤄지고 자연이 허락해야 얻는 땅이다. 터의 역량에 맞게 조성된 공간을 오랜 세월 동안 품으면서 발복이 진행될 수 있도록 생기를 분출하고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영지는 자연을 담 삼아 천기를 조응하고 지기를 승생기(乘生氣, 생기를 타는 것)하는 곳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공간 설계로 입지한 곳에 생기를 머금고 있는 땅이다. 주산의 정기를 강하게 받으면서 현존하고 있는 도성과 왕릉, 천년고찰, 서원, 그리고 종택과 문중의 묘역 공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앞으로 영지는 사적 공간을 넘어 국민 모두 공감하고 향유할 공적 문화유산으로서 보존해야 한다.
한양 도성 내 주산의 청룡지맥에 입지한 종묘와 백호지맥의 사직단 터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 왕의 신위와 백성을 위한 천신을 만나는 신성한 곳이다. 조선의 500년과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국운 상승의 강한 기를 분출하는 터로 남아있는 이유다. 산중의 천년고찰은 주산의 혈처에 터 잡기가 이뤄졌고 주불과 산신을 위한 공간 설계로써 도량 내 지속적으로 생기를 받고 있다. 경내 허한 공간은 석탑과 부도탑으로 비보가 이뤄져 영지 터의 기를 정제하고 있다. 여주 신륵사의 나옹선사부도탑 공간, 천축산 봉정사 백호지맥의 산신각-관음전-삼층석탑 공간과 남원 실상사의 증각홍척국사응료탑-관음전 공간, 그리고 희방산문 희방산 봉암사의 청룡지맥에 입지한 부도군과 태조산 도리사의 세존사리탑-극락전-화엄석탑-좌선대 공간들은 지금의 사찰 내 대혈지로서 생기를 표출하고 있다.
서원은 지역의 인재를 배출하는 사립 교육기관으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공간배치가 이루어져 있다. 주산의 용맥이 사당 공간으로 들어와 머문 뒤 내삼문으로 크게 낙맥(落脈)해 강당으로 내려가 멈추면서 반듯한 중정(中庭)을 이루었다. 또 낙맥해 빠져나가는 기를 비보하도록 앞쪽은 루(樓) 건물을 조성했다. 용맥이 머물 수 있도록 지당을 조성했고 학문성취를 위한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용맥의 변곡점 주변마다 심어 가꿔 놓았다. 외삼문 밖에 거목(巨木)이 같은 맥락으로 심어서 가꾼 나무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강한 용맥을 승생기하는 곳에 입지함으로써 학문의 기를 증폭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일두 정여창을 배향한 남계서원과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도동서원, 그리고 서애 류성룡을 배향한 병산서원 등이 대표적인 학문의 영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까지 영지 공간은 늘 가까이 있어도 향유할 줄 몰랐었고 좋은 기를 항상 표출하고 있지만 느끼지 못하였고 그곳에 가서도 그냥 스쳐 지나쳤을 뿐이다. 이러한 영지는 주산의 용맥을 승생기하고 친환경 생태공간의 신성한 기를 표출하는 곳이며, 터의 내력이 훼손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신비롭고 영험한 자연의 에너지를 오롯이 품고 있는 생기 터라 할 수 있다. 발품을 팔아 그곳에 머물게 되면, 그곳은 자신의 기를 환기하고 자연의 강한 생기를 새로 흡착시킬 수 있는 발복처다. 따라서 영지 공간은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해야 하며 훼손된 곳은 비보로 즉시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 자연과 조화된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시킴으로써 모두를 위해 좋은 생기를 공유하는 문화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진. 유동영
박재락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한국연구재단 Post-Doc 풍수지리 분야에서 연구과제 ‘영남지역 종택마을 입지의 풍수지리 연구’가 국내 최초로 선정됐다. 영남대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으며 「시사저널」에 ‘박재락의 풍수미학’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