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겉옷은 설화 속옷은 대자비
탄생 비밀을 풀다
싯다르타 탄생 설화 관련 경전들
역사적 인물로서 붓다의 본명은 무엇일까. 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붓다는 ‘석가모니(Sakyamuni)’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이를 붓다의 본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성자’란 의미다. 붓다의 본명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고타마 싯다르타’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다. 고타마(Gotama)는 빨리어(Pāli, 팔리어)고, 싯다르타(Siddhārtha)는 산스크리트(Sanskrit)다. 그래서 올바른 표기는 고타마 싯닷따(Gotama Siddhatta), 혹은 가우따마 싯다르타(Gautama Siddhārtha)가 된다. 전자는 빨리어 표기고, 후자는 산스크리트 표기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삶을 그린 것을 불전(佛傳), 혹은 불전문학(佛傳文學)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불전문학으로는 『붓다짜리따(Buddhacarita, 붓다차리타)』가 있다. 이는 『불소행찬(佛所行讚)』으로 한역해서 전한다. 『랄리따비스따라(Lalitavistara)』는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으로 한역해서 전한다. 그 외 『불본행집경』 등이 있다.
싯다르타의 탄생 이야기를 담은 초기 경전에는 『맛지마니까야』에 있는 「아짜리야부후따숫따(Acchariyabhūtasutta, 아주 놀랍고 예전에 없었던 것의 경)」와 『숫따니빠따』 제3품에 있는 「날라까의 경(Nālakasuta)」이 있다. 「아짜리야부후따숫따」는 전형적인 싯다르타 탄생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편 「날라까의 경」은 싯다르타 탄생 직후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담겨 있는 경전이다. 대승경전 혹은 문헌의 경우, 『대지도론』의 「초품중바가바석론제사(初品中婆伽婆釋論第四)」에서 간략하게 게송으로 싯다르타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불전문학인 『불소행찬』 권1과 『방광대장엄경』 권3 「탄생품」에 그 자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 두 문헌은 대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 문헌에 영향을 받은 것이 조선 시대에 편찬된 『석보상절』이나 『월인천강지곡』과 같은 가사집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경전이나 불전문학 외에 싯다르타의 탄생과 관련된 내용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승, 특히 반야경 계통에서는 색신(色身)으로서의 붓다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법신(法身)으로서의 붓다를 말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불전의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초기경전은 『맛지마니까야』의 「아짜리야부후따숫따」와 『숫따니빠따』의 「날라까의 경(Nālakasuta)」을 중심으로, 대승은 『대지도론』, 『불소행찬』, 『방광대장엄경』을 중심으로 싯다르타 탄생 설화를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싯다르타 탄생 설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초기경전 속 싯다르타 탄생 기록
『맛지마니까야』의 「아짜리야부후따숫따」는 아난다가 붓다에게 직접 들은 바를 말하는 방식으로 싯다르타의 탄생 과정을 설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살이 도솔천에 머묾 → 도솔천에서 목숨이 다하여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옴 → 자궁으로 들었을 때, 일만 세계가 흔들리고 격동하면서 신들의 위력을 능가하는 광대한 빛이 나타남 → 사천왕이 어머니를 수호함 → 보살의 어머니는 본래 계행을 갖추고 있음 → 보살의 어머니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들을 부여받아 그것을 향유함 → 보살의 어머니는 어떠한 고통도 일으키지 않고, 몸에 피로를 모르는 안락함을 즐기며, 모태를 통해 보살이 모든 지체를 갖추고 감관이 완전함을 봄 → 보살이 태어난 지, 칠 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도솔천에 태어남 → 보살의 어머니는 정확하게 열 달 동안 보살을 잉태함 → 보살의 어머니는 서서 보살을 출산함 → 보살이 모태에서 태어날 때 신들이 먼저 받고 나중에 사람이 받음 → 보살이 모태에서 나올 때, 보살은 땅에 닿지 않고 사천왕이 받아서 ‘왕비여, 기뻐하십시오. 그대에게 위대한 능력이 있는 아들이 태어났습니다’라며 어머니 앞에 놓음 → 보살은 태어날 때 물에 오염되지 않고 점액에 오염되지 않고 피에 오염되지 않고 고름에 오염되지 않고 어떠한 부정한 것에 오염되지 않고 아름답고 청정하게 태어남 → 보살이 태어날 때 하나는 차갑고 하나는 따뜻한 두 가지 물이 공중에서 쏟아져 그것으로 보살과 어머니가 목욕함 → 보살이 태어나자마자 단단하게 발을 땅 위에 딛고 서서 북쪽으로 일곱 발을 내디디고 흰 양산에 둘러싸여 모든 방향을 바라보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존재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선구적인 존재다. 이것은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 나에게 더는 다시 태어남이 없다”라고 선언함.
이상이 「아짜리야부후따숫따」에 나오는 싯다르타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전체적으로 ‘도솔천 → 잉태 → 탄생 → 선언’의 과정이다. 싯다르타가 탄생 전 도솔천에 머물다가 잉태했다는 내용이 초기경전에서부터 이미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선언하는 내용은 다른 초기경전인 『장아함경』의 「대본경(大本經)」 내용과 다소 다르다. 대체적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구체적인 몇 장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대본경」에서는 북쪽이란 방향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우협 탄생이 언급된다. 선언 내용에서도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다. 중생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제도하리라[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고 표현되고 있다. 이 세 가지 장면이 「아짜리야부후따숫따」와 다르다.
한편 내용 구성에서 눈에 띄는 것은 보살의 어머니가 일주일 만에 돌아가신다는 내용이 출산보다 앞에 나온다는 점이다. 이는 기술의 관점이 ‘보살 → 어머니 → 보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각의 시점에서의 기술내용이 일종의 완결 구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탄생 이후 아시따 선인이 싯다르타의 운명을 예언하는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이 내용은 『숫따니빠따』의 「날라까의 경」에 기술되어 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도리천의 천신들이 기뻐하며 환희함 → 아시따 선인이 이를 보고 그 연유를 물음 → 보살이 샤끼야족 마을 룸비니에 탄생함을 알려줌 → 아시따 선인이 하강하여 숫도다나 왕의 궁전을 방문함 → 왕자를 보고 ‘이분은 위 없는 분,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임을 알고 환호함 →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아 붓다의 출현을 보지 못함에 한탄하며 눈물을 흘림 → 제자에게 훗날 ‘세존의 출현을 듣거든 출가하여 그 가르침을 받을 것’을 당부함.
날라까는 바로 아시따의 제자로, 이 경전의 후반부는 붓다와 날라까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도솔천에서 시작하여 아시따의 예언으로 이어지는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과 관련된 초기경전의 기술이 완성된다.
대승문헌 속 싯다르타 탄생 기록
『불소행찬』은 아슈바고샤(Aśvaghoṣa, 馬鳴)의 저술인데, 기원후 1세기 무렵의 작품이다. 『방광대장엄경』은 대승경전으로 알려진 문헌이다. 그리고 『대지도론』은 용수(龍樹: 150?~250?)의 저술이다. 우선 『불소행찬』의 내용을 중심으로 그 대강을 살펴보자.
코끼리를 타고 입태 → 어머니는 온갖 걱정에서 벗어나 평온함 → 편안하고 좋은 침상에 누워 오른쪽 옆구리로 4월 8일 태자 출산 → 일곱 걸음을 걸으며 사방을 보고 탄생게(“이생은 붓다 되기 위한 생으로서 마지막 생이 되리라. 나는 오직 이 한 생에 기어코 모든 중생 제도하리라.”)를 읊음 → 하늘에서 따뜻하고 시원한 두 줄기 물이 흐름.
코끼리를 타고 입태하는 내용은 초기경전에 없는 내용이다. 침상에 누웠다는 내용에도 차이가 있다. 탄생게의 내용 역시 다소 다르다. 『대지도론』에서는 “내가 모태에 나는 일은 다 했노라”고 간략히 표현하고 있다. 한편 『방광대장엄경』에서는 이들 문헌과는 달리 매우 자세하게 태어난 이후를 표현하고 있다.
동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는 온갖 선한 법을 얻어 중생들을 위하여 말하리라.”
남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는 천상과 인간에서 공양을 받을 만 하느니라.”
서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는 세간에서 최고로 존엄하고 최고로 수승하니, 이는 곧 생로병사를 다한 최후 한계의 몸이니라.”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는 일체중생들
가운데서 위 없는 우두머리가 되리라.”
아래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는 일체 악마를 항복 받고, 또 지옥의 모든 세찬 불과 여러 고통 주는 도구를 없애고 큰 법 구름을 베풀어서 큰 법 비를 내려 중생들이 다 안락을 받게 하리라.”
위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는 일체중생들의
존경과 숭배를 받으리라.”
『방광대장엄경』은 동서남북상하 6방향으로 각각 7걸음을 걷고, 방향마다 선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는 게 다른 불전과의 차이점이다. 그 외의 내용은 간략한가 자세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탄생 설화의 의미
초기경전과 대승경전·문헌 속에 나타난 싯다르타의 탄생 설화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잉태되기 전 천상세계인 도솔천에 머물렀다는 내용이나, 잉태 중 어머님의 상태, 태어날 때 일어났던 상서로운 일들은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적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 탄생 설화의 많은 내용 가운데 핵심은 무엇일까. 탄생 설화는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그 내용은 바로 탄생게에서 찾을 수 있다. 탄생게에 나오는 주어로서의 ‘나’는 일차적으로 싯다르타 자신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차적 의미도 있으니, 바로 ‘생명’이다. 일각에서는 탄생게를 ‘생명 해방의 선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주어 ‘나’를 이차적 의미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붓다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르게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탄생게의 의미를 살펴보는 과정은 여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붓다의 출현이 갖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붓다의 출현 자체가 참으로 흔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붓다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인연인지 보여준다. 둘째, 붓다의 출현은 ‘중생구제의 원력’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뭇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주겠다는 대자대비의 실현이 바로 싯다르타의 탄생이다. ‘나에게 더는 태어남이 없다’는 선언은 윤회의 고통에서 중생을 기필코 구제하겠다는 표현이다. 셋째, 싯다르타의 탄생으로 인해 얻게 된 귀한 인연을 세상을 위해 나누어야 한다는 적극적 보살행의 실천이다. 따라서 탄생게에 나오는 주어 ‘나’는 예경과 감사의 대상으로서 역사 속 실존했던 붓다이자, ‘나를 포함한 생명’에 대한 대자비심을 실천해야 할 이유다. 이 두 가지를 마음에 품고 산다면 하루하루가 ‘부처님오신날’이 아닐까.
그림. 윤진이
이필원
동국대 파라미타칼리지 조교수.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거쳐 일본 북쿄대학에서 「아라한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