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547번의 윤회 547번의 자기희생

보살로서의 삶

2021-02-24     이미령

 

개 이야기로 보는 붓다의 자격

공동묘지에 개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집 없는 개들은 한 우두머리 개의 통솔 아래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수많은 개가 공동묘지로 모여들었다.

“살려 주세요.”

“왕궁에서 병사들이 나와 개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죽이고 있어요.”

개들은 겁에 질려 꼬리를 잔뜩 만 채 우두머리 개에게 하소연했다. 이유를 묻자 도망쳐 온 개들이 말했다.

“지난밤에 큰비가 내렸는데 왕의 수레에 딸린 가죽 띠와 마구들이 그 비를 맞았다고 합니다. 부드러워진 가죽 마구들을 누군가가 먹어 치웠는데 왕은 우리들 짓이라고 하여 무조건 죽여 버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병사들이….”

우두머리 개는 생각에 잠겼다.

‘경비가 삼엄하여 성 밖의 개는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가죽 마구를 먹어 치운 범인은 혹시 궁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개들이 아닐까? 왜 왕은 제대로 조사해보지도 않고 힘없는 떠돌이 개들을 죽이려 드는가?’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죄 없이 죽어가는 떠돌이 개들을 살리고, 힘없는 이들에게 죄를 덮어씌운 것도 모자라 함부로 생명을 앗아버리는 왕의 무도(無道)함을 일깨워줘야 했다.

“겁내지 마라. 두려워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라. 내가 도와주겠다.”

우두머리 개는 길을 나섰다. 성안에는 이미 불쌍한 개들을 죽이느라 피 맛을 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우두머리 개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개는 생각을 고요히 한 데 모았다. 세상을 향한 사랑과 연민을 마음 가득 품고 이렇게 기원했다.

“누구든 내게 흙을 던지거나 몽둥이를 휘두르지 말기를!”

매 맞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분노하고 폭력을 행사하다 악업의 과보를 받게 될 사람들이 안타까워 그들이 무기를 내려놓기를 바랐다. 이런 마음이 전해진 걸까. 무사히 성으로 들어간 우두머리 개는 왕에게 다가가 진범을 찾지 않고 약자들에게 죄를 덮어씌운 행위의 잘못을 일깨워주었다. 왕은 경솔하고 잔인했던 자신의 행동을 크게 뉘우쳤고, 무도하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움에 떨던 개들은 평화를 되찾았다. 이 현명한 우두머리 개는 바로 싯다르타의 전생이다. 
__  『자타카』 22번째 이야기

싯다르타의 전생을 다루는 글에 난데없이 등장한 개 이야기가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개 이야기가 아니다. 개의 두 가지 행동에 초점을 맞춰주길 바란다. 첫째는 폭력에 노출된 약자를 품고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준 일, 둘째는 권력자에게 법답지 못함을 일깨워 정의를 구현한 일이다. 대웅전 중앙에 앉은 황금빛 붓다는 바로 이 두 가지 일을 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붓다가 되기 위한 547가지 방법

이제부터 싯다르타의 삶을 소개하려 한다.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싯다르타의 삶 중 극히 일부다. 싯다르타는 이번 한 생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싯다르타에게도 뭇사람들처럼 전생이 있고, 그 전생의 전생이 있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보통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날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지만, 붓다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생사의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길을 결정하여 여기까지 왔다. 붓다가 되기 전까지 싯다르타는 ‘보살’이란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중생이 아닌 보살로서 나고 죽고를 반복하다가 이번 생에 인도 땅(엄밀히는 네팔 땅)에 태어난 존재가 싯다르타이다. 그러니 싯다르타의 삶을 말하려면 보살로서의 수많은 인생도 살펴봐야 한다. 그 수많은 전생의 일들이 이번 생에 붓다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보살로 살았던 삶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싯다르타는,

①   그냥 보통의 존재로서 울고 웃고 지지고 볶고 하면서 살다가

②   ‘존재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다 죽고 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마음공부 하는 수행자로 살기 시작한다. 수메다란 이름의 수행자로 경전에 등장한다.

③   수메다 행자는 연등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이때 바로 유명한 일화가 등장한다. 부처님 발 앞에 진흙이 펼쳐졌는데 수메다 행자가 머리카락을 풀어 진흙을 덮은 뒤 부처님에게 밟고 지나가기를 청했다.

④   이 모습에서 그의 순수한 열정을 간파한 연등부처님이 예언(수기)을 한다. “이 청년 수메다는 장차 석가모니라 불리는 붓다가 될 것이다!”라고. 머리카락을 밟고 지나가게 한 수메다의 행위에는 진리를 체현한 부처님을 향한 무한한 존경과 진리 그 자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치겠다는 맹세가 드러난다. 그저 ‘자기 깨달음’이 전부였던 수행자가 목표를 업그레이드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목표란 바로 성불, 즉 붓다가 되는 것이다. 붓다란 존재는 스스로 깨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도 깨닫게 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가고 있는 연등부처님을 향해 엎드린 행위는 그 길을 따라서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⑤   이제 수메다 청년이 보리수 아래로 나아가 성불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성불이 그리 쉽게 될 리 없다. 붓다가 되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을 지내야 한다. 이 말은 곧 룸비니 동산에서 싯다르타로 태어나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생사를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중생으로서의 삶이 아닌, 장차 붓다가 되리라는 예언(수기)을 받은 보살로서의 삶이다.

⑥   보살로 사는 삶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어느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어느 생에는 동물로 태어났다. 사슴으로, 비둘기로, 코끼리로, 뱀으로, 개로 태어나고, 한 나라의 왕으로, 신하로,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중생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마음속에 늘 품고 있었다. 중생을 돕고도 생색내지 않았다. 그저 딱 한 가지, 어떤 행위로 복을 지었다면 그 복이 훗날 붓다 되는 원동력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보살은 마지막으로 한 나라의 왕자(벳산타라)로 태어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말 그대로 ‘보시의 끝판왕’이 된다. 보살은 마침내 해야 할 수행을 모두 마쳐, 그 선업의 과보로 다음 생에는 도솔천에 올라가게 된다.

⑦   도솔천에서 천신으로 살 때는 ‘호명보살’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천상에서는 여느 신들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리며 살았는데, 호명보살이 도솔천의 다른 신들보다 보살행을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도솔천에서의 삶을 ‘일생보처보살’이라고 한다. 붓다가 되어 더는 윤회하지 않는 경지에 오르는 그 바로 직전의 마지막 삶이란 뜻이다. 도솔천에서 살다가 수명이 다하게 되자 호명보살은 인간 세상을 살피고 어느 곳에 누구를 부모로 하여 태어날지 결정한 뒤 자신의 의지대로 그렇게 태어난다. 이때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야부인의 흰 코끼리 태몽이나, 일곱 걸음 걷고서 외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나, 싯다르타 태자로서의 삶이나, 사문유관이나, 보리수 아래에서의 성도나, 쿠시나가라의 두 그루 사라나무 아래에서의 최후와 같은 일들이 펼쳐지게 된다.

그러니 룸비니에서 태어난 시점부터의 한 차례 삶은 싯다르타의 삶 중 빙산의 일각이다. 그 아래를 들여다보면 무려 547번(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이)의 자기희생을 해온 보살의 삶이 버티고 있다. 이 547가지 삶을 담은 경이 그 유명한 『자타카』다. 동물이 등장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운다고 하여 『이솝우화』와 비견된다. 『이솝우화』와 다른 점은, 『자타카』에 담긴 547편의 이야기는 싯다르타가 547번 이상의 윤회를 반복하면서 보살행을 해온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동물로 풍자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괴로움을 해결해준 싯다르타의 보살행 이야기다.
안타까운 점은, 이 547가지 이야기를 단순히 ‘우화’로 치부하거나, 아이들이 읽는 동화 수준으로 여기는 현실이다.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무시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타카』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붓다가 되기까지 겪은 547가지의 삶을 보여주면서 붓다가 되는 547가지의 방법을 제시하는 이야기다. 547가지 방법을 정리하면 6바라밀, 혹은 10바라밀이 된다. 보시와 같은 바라밀 수행을 완수해야 지혜를 완성한다는 사실을 동물을 주인공으로 들려준다.

 

세상을 향해 마음 쓰는 이가 붓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면서 아래로는 중생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행해져야 불교 공부의 목적이 완수된다. 그런데 깨달음을 강조하느라 정작 보살행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싯다르타의 전생담은 말하고 있다.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 심지어 다음 생에는 세상을 위해 더 크게 희생하겠노라 다짐하는 보살이 붓다가 된다. 아래 관련 이야기를 소개한다.

거대한 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기세가 대단해서 개미 한 마리도 얼씬 못 했다. 어느 날, 이 뱀은 단 하루라도 계를 지키며 살겠다고 맹세한다. 그리고는 조용한 숲속에 들어가서 깊은 사색에 잠겼고,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바로 그때 한 사냥꾼이 뱀에게 다가와 뱀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뱀 껍질을 벗겨서 왕에게 바치면 거한 하사품을 받으리란 생각이었다. 뱀은 즉시 잠에서 깨어났다.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개 인간이 나를 감히 괴롭히고 있구나.’
예전 같으면 대번에 죽여버렸을 테지만, 하루만이라도 계를 지키겠다고 맹세했기에 자신의 몸이 아닌 붓다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계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눈을 질끈 감고 숨도 쉬지 않았다. 숨을 쉬면 사냥꾼이 놀라 달아날 수 있고, 눈을 뜨면 사냥꾼의 행동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어 그를 죽여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사냥꾼은 뱀 껍질을 벗겼고 결국 살점까지 도려냈다. 도려낸 살점이 태양의 열기에 벌겋게 익어가자 이번에는 벌레들이 몰려들어 살점을 뜯어먹기에 이르렀다. 뱀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이 몸을 벌레들에게 보시하는 것은 붓다의 지혜를 구하는 까닭이다. 지금은 내 살을 베풀어서 저 벌레들의 몸을 살찌우고, 훗날 성불하거든 다시 법을 베풀어서 저들의 마음까지도 이롭게 해주리라.’ 
시원한 물 한 모금이 간절했음에도 작은 벌레들이 몸을 뜯어먹자 꼼짝 않고 고스란히 몸을 내준 뱀은 결국 죽고 말았다. 
__  『소타소마왕경(蘇陀蘇摩王經)』

막연하게 그저 ‘좋은 마음’으로 희생하는 게 아니라, 모든 행위의 목적을 ‘붓다의 지혜를 얻기 위함’으로 돌리는 것이 보살행의 특징이다. 내 목숨을 남에게 내주는 보살행이 영 내키지 않는 우리 중생에게, 붓다 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사소하나마 누군가를 보살피고 격려해주고 위로한 적 있는가. 작고 여린 생명을 살려주고 돌봐주고 지켜 준 적 있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세상을 향해 온기를 베푼 적 있다면 이미 붓다 되는 보살행을 실천한 셈이다. 이런 행위가 쌓이면 결국 붓다가 될 수 있다. 카필라국의 싯다르타에게는 이런 보살행이 차곡차곡 쌓이고 모여 있었다. 싯다르타로 태어나기까지의 전생 이야기를 알면 그저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 사색하다 출가하여 붓다가 되었다는 단순한 과정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싯다르타는 보살로서 무수하게 나고 죽기를 반복하다 금생에 보살의 자리에서 붓다로서 완성되는 존재다.   

 

그림. 김진이

 

이미령
불교 강사이자 경전 이야기꾼. 경전 강의를 진행하고 불교 칼럼을 꾸준히 써오고 있다. 동국역경원에서 『대당서역기』, 『직지』 등 다수의 번역서를 냈다. 저서로는 『붓다 한 말씀』, 『시시한 인생은 없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