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부처님 될 수 있다는 믿음 단단히 만드는 최적의 도량
발원의 성지
분명 불교는 발원의 종교다. ‘세우는 원[發願]’도 중요하지만, 그 원을 성취하는 과정 역시 중요한 종교다. 사찰에서는 건강 등 이번 생의 행복을 원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이왕이면 출세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비슷하다. 수행의 종교인 불교에서 기복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복만’ 구하는 게 아닌 ‘복을’ 구하는 마음은 종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종교의 출발점에서 발원을 끌고 가는 힘[願力], 즉 원력을 더하면 발원은 수행이 된다. 원력은 끊임없는 지구력과 같은 개념으로, 기도와 수행을 밑천이자 동력으로 삼는다. 건강을 원하면 좋은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필요한 것과 같다. 다시 말해, 발원을 이루려면 부단하게 기도하고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발원하고 기도하고 수행하는 게 좋을까. 어느 절이든 좋지만,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라면 어떨까? 다행히(?) 한국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사진. 유동영
적멸보궁과 부처님 사리
적멸보궁이 왜 발원의 명당일까? 사리신앙과 관계가 깊다. 적멸보궁엔 여느 절 법당에서 보이는 불상이 없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해서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는데 구태여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상은 필요 없다. 예배와 존경, 신심의 대상이 진신사리이며, 적멸보궁은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이다. 진신사리가 없으면 적멸보궁도 없다.
장미란 교수의 「한국 사리신앙의 전래와 성격」에 따르면 한국에서 사리의 개념은 유골뿐만 아니라 경전까지 포함한다.
탑 등에 안치해 예배의 대상이 된다. 보통 유골을 진신사리, 경전을 법사리라고 칭한다. 초기의 사리신앙에서 사리는 뼈라는 개념보다 신통한 구제자를 상징한다. 사리를 매개로 믿기지 않는 일들이 생기고 이런 일화는 사리를 향한 신앙심을 견고하게 만드는 연결고리가 된다. 일연 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와 「통도사 사적기」, 『속고승전』의 「자장전」 외에도 수많은 경전과 불서에 사리의 신기하고 기이한 일을 기록해뒀다. 불에 타지 않거나 사라졌다가 나타나거나 광채를 발하는 등 믿기 힘든 현상이 적혀있다. 『삼국유사』에는 통도사 금강계단 진신사리를 친견하려던 고려 시대 지역 관리 2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관리들이 사리를 보려 했는데 처음에는 구렁이가 다음에는 큰 두꺼비가 있었단다. 일연 스님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라며 신심과 믿음의 중요함을 설했다. 「통도사 사적기」는 놀라운 일을 8가지나 기록했다. 법신의 향기가 산내에 가득하고, 인연 따라 보이거나 안 보이며, 밝게 빛이 난다고 한다. 친견하려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부정하고 하심하지 못하면 비위가 상하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도 한다. 앞의 두 가지 사례가 사리를 대하는 신실한 마음(사리신앙)을 강조했다면, 『속고승전』의 「자장전」은 신이한 일이 일어난 후 선행이 퍼지는 이야기를 언급했다. 「자장전」의 주인공은 한국으로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지고 들어온 자장 율사이며, 자장은 한국불교 적멸보궁의 시작과도 같다.
“(자장은) 또 별도로 절과 탑을 10여 곳에 조성하다. 한 곳에 절을 세울 때마다 온 나라가 함께 숭상하다. 이에 자장은 발원해 말하기를 ‘만약 내가 조성한 절과 탑에 신령스러움이 있다면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다. 문득 감응이 나타나 사리가 여러 두건과 발우에 있게 되니, 스님들이 자비심과 경이심으로 보시한 것이 쌓여 산처럼 되었다. 문득 계를 주고 선행을 행함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따르고 실천함과는 별개로 신기하고 기이함이 사리신앙을 단단하게 한 점은 분명하다. 적멸보궁에서 원을 세우고 기도하고 수행해서 바라는 바를 성취했다는 이야기를 증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쉽게 부인하기도 어렵다. 다만 발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무언의 동의와 믿음, 신심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절절한 마음이 머무는 곳 적멸보궁
오대산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에는 해인사 율주였던 일타 스님의 손가락 연비 일화가 전해진다. 월간 「해인」 1991년 1월호인 107호 ‘다향청담’에 그 이야기가 있다. 일타 스님은 인간적인 갈등과 속세에 대한 번민을 떨쳐버리기 위해 1954년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연비를 감행했다. 일타 스님은 “이로써 온갖 망상을 깨끗이 씻고 수행에 전력하는 대전기(大轉機)가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연비보다는 일타 스님의 발원에 주목해야 한다. 연비를 굳이 적멸보궁에서 한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번민을 떨쳐버리기 위한 결심이자 수행에 전력으로 임하겠다는 발원의 실천이 연비이자, 부처님 앞에서 결행한 위대한 약속이다. 연비는 적멸보궁에서 하루 삼천배 절을 시작한 지 1주일 되던 날 세운 원이었다고.
불보살이든 출가한 스님이든 원을 세운다. 불자도 예불 때마다 사홍서원(보살의 공통된 네 가지 큰 서원)에 담긴 발원을 한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깨달음의 피안에 도달하고, 많은 번뇌를 끊고, 부처님 가르침을 모두 배우고, 성불하겠다는 맹세가 사홍서원이다. 불보살과 큰스님이 아닌 우리는 왜 적멸보궁에서 발원할까? 저마다의 발원으로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기도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힌트를 줄 수 있다.
30여 년 세월 동안 매년 봉정암을 오른 엄마에게 “절에 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냐?”고 타박했던 딸이 있었다. 딸은 엄마와 함께 봉정암을 참배한 뒤 자신의 어리석음을 참회했다. 죽을 것 같은 산행을 마치고 봉정암에서 신비함과 장엄함을 느꼈고, 108배를 올렸다. 오직 스스로 올라야 하고 기도 역시 자신이 해야하는 봉정암에서 “부처님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딸에게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어주고 싶었던 엄마의 발원은 딸의 봉정암 참배기에서 성취됐다. 뿐만 아니다. 사별한 아내의 극락왕생을 위해 봉정암을 참배하는 남편, 석가모니불 정근과 함께 108배를 하며 가슴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해냈다는 사람, “부처님 불뇌사리가 모셔진 사리탑만 서 있을 뿐인데 (느껴졌던) 몸을 감싸는 온기와 가슴 벅참이 그립다”는 이도 있다.
발원을 굳건하게 하는 기도를 수식하는 시쳇말이 있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배고픈 아이가 어머니 젖을 찾듯, 중병 앓는 이가 의사를 찾듯, 닭이 알을 품듯 간절함이 배어야 한다는 표현이다. 적어도 적멸보궁에서 원을 세우고 기도 정진하는 이들에겐 간절함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태백산 정암사 수마노탑 앞에서 영하 20도의 겨울 칼바람 맞으며 묵묵히 절을 하던 비구스님, 한겨울에도 홀로 마지 메고 중대 사자암에서 적멸보궁을 오르던 비구니스님, 해마다 정월이면 한 달간 사시예불 마지를 거르지 않고 공양했던 사자산 법흥사 화주실의 한 보살, “나도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든 전각을 참배하며 하루 1,000배씩 올리던 80대 노보살….
적멸보궁은 절절한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아니 들끓는 성지다. 지금도 대중의 발원은 식지 않고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자장이 통도사 대웅전에 남긴 불탑게의 발원처럼.
만대까지 불법의 수레를 굴린 삼계의 주인(萬代轉輪三界主)
쌍림에 열반하신 뒤 몇천 년이던가(雙林示寂幾千秋).
진신사리 오히려 지금도 있으니(眞身舍利今猶在)
널리 중생의 예불 쉬지 않게 하리(普使群生禮不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