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한 아이를 구하면 온 세상이 행복해진다" / 김천
영화로 만나는 불교
국내 영화제 중 불교 영화를 소개하는 무대가 있다. 바로 울주세계산악영화제(UMFF, 이하 울주산악영화제)다. 울주산악영화제는 세계 곳곳의 산악 관련 영화를 모아 상영한다. 히말라야를 빼고 산을 이야기할 수 없고, 불교를 빼고 히말라야의 삶을 말하기 어렵다. 때문에 울주산악영화제는 매번 3~4편씩의 불교 영화를 함께 선보인다.
앤드류 힌튼과 조니버크 감독이 만든 <타시와 스님(TASHI & THE MONK, 2014)>은 2017년 울주산악영화제 출품작이다. 대략 40분이 채 못 되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길이에 비해 내용이 무겁고 깊다. 25개 이상의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력이 있고, 미국의 거대 케이블방송 에이치비오(HBO)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미국 방송가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Emmy Award)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수상했다.
| 85개의 꿈이 자라나는 곳, ‘잠체 갸찰’
영화 무대는 인도 북동부 오지 아루나찰프라데시의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학교다. 아루나찰프라데시는 북으로 티베트, 서쪽으로 부탄, 동쪽으로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으로 군사적 긴장감이 높으며 그 여파로 인도군의 핵미사일 기지가 아루나찰프라데시의 타왕 지역에 있다. 이 학교는 타왕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거기서부터 다시 걸어서 2시간을 더 가야 하는 험난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학교를 세운 이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롭상 푼촉이다. 뛰어난 학승으로 미국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던 그가 문득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세상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란 곳에서 불교 승가를 세워 이끌던 그는 결국 스님의 신분을 버리고 자신의 고향 마을로 돌아간다. 거기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자비의 도량’이라는 뜻의 ‘잠체 갸찰(Jhamtse Gatsal)’ 공동체를 세운다. 모두 85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며 성장하고 있다. 롭상 푼촉은 기꺼이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됐다.
여섯 살짜리 소녀 타시는 학교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다. 공부도 하지 않고 아무나 붙잡고 싸우며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는다. 타시의 어머니는 병으로 세상을 떴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라서 그를 돌볼 수 없었다. 타시는 “집에 괴물이 살고 있어서 엄마를 뜯어먹었다”고 기억한다. 말썽쟁이 타시에게 롭상은 “너는 지금 괴롭지만, 조금씩 자라서 나만큼 커지면 마음도 그만큼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타시는 겉돌기만 할 뿐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산골 오지의 삶은 거칠고 가난하다. 여인들은 도로 공사장에서 돌을 깨는 일로 근근이 먹고살거나 가난을 견뎌야 한다. 아이들도 이런저런 노동을 해야 집안에 보탬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죽어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를 롭상이 거둬주길 바라지만 학교 사정이 여의치 않다. 신입생을 받으려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학생을 받지 못한다. 롭상은 “열 명의 아이 중 한 명만 받아들인다면 아홉을 버리는 일이 된다”고 슬퍼한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한 이웃 마을의 11살 소년이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소년의 집에 찾아간 그는 “소년이 그처럼 마음 깊이 불행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져 괴로워한다.
영화는 옛날이야기를 해달라는 아이들에게 한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꺼내는 롭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어린 나이에 임신한 한 여인이 남몰래 아이를 낳아 숲속에 버렸다. 한 노부부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됐고 아이를 거둬 키웠지만, 그는 말썽꾸러기가 됐다.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 모두 그 아이를 견디지 못하고 절로 보냈는데 거기에서도 분란을 일으켰다. 모두가 그 아이를 비난하고 포기했을 때 오직 한 사람만이 소년이 ‘변할 수 있다’고 믿어줬다. 끝내 아이는 변했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이것이 롭상 푼촉의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 자비는 지혜이자 깨달음의 실체
남인도 강원에서 공부를 마친 롭상 푼촉은 미국에 불교를 전할 정예의 학승으로 선발됐다. 미국에서 마음 치유와 명상을 가르치던 롭상은 이상을 실현할 공동체인 ‘자비의 도량’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승복을 벗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가 된다.
인도말로 ‘아빠’는 공교롭게도 우리말의 ‘아빠’와 같다. 영화 속 아이들은 롭상을 “아빠”라고 부른다. 롭상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아빠와의 행복한 기억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는 “한 아이를 구한다는 것은 그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 그리고 그가 만들 가족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다. 아이들과 공유하는 롭상의 행복은 결국 85개의 행복으로 커질 것이다.
누군가는 “사람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다른 이는 “변치 못할 것은 없다”고 믿는다. 롭상 푼촉은 그를 믿어준 단 한 사람의 바람대로 변했고 성장했고 자신의 신념을 실현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를 이루고 다시 구름이 되고 빗방울로 대지를 적신다는 것이 세상 이치다. 롭상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학교 학생들 모두 성장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불교는 무상(無常)을 가르친다. 변치 않는 것은 없고,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믿는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불행의 짐을 지고 태어난 이도 있고, 더러는 과거의 그림자를 벗지 못해 고통을 내려놓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무상의 가르침을 믿는다면 오늘 불행하고 고통 앞에 서 있더라도 내일 행복하고 진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타시와 스님>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아이들과 함께 아루나찰프라데시의 산자락을 거닐면서 한 소녀가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된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그저 영화 속 소녀 타시에게 일어났던 선한 변화가 자신의 내면에서도 일어나길 바라면 된다. 나아가 마음 깊이 깃들어있는 자비의 등잔에 심지를 세워 불까지 붙일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다.
자비 없는 세상에 자비를 갖기란 한없이 어려운 일이기에 그것을 반야바라밀이라하고 보살도와 수행이라 하며 깨달음이라 부르는 것이다. 자비란 지혜의 다른 이름이며 깨달음의 실체다. 마음의 본래면목에서 자비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이 영화가 그것을 알려 준다.
● 영화는 ‘자비의 도량(잠체 갸찰)’ 홈페이지(https://www.jhamtse.com/) 또는 비메오에서 한글 자막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자비의 도량’ 홈페이지에서 영화 속 아이들의 근황을 알 수 있고, 후원의 보시를 할 수 있습니다.
●●● 사진출처 잠체 갸찰 홈페이지.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