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 피아니스트 “마음 바다 느끼며 번뇌의 파도를 서핑하세요”
명상 홀릭 | 피아노로 명상하는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니스트 임현정에게 피아노란 영혼을 표현하는 도구다. 그에게는 명상 역시 자신의 본질을 탐구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영혼의 표현이 담긴 음악과 명상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의 자택을 찾았다.
사진. 유동영
| 피아노는 나의 통역사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부모님은 베토벤의 ‘베’ 자도 들어본 적 없을 정도로 클래식에는 문외한이었다. 단지 ‘피아노를 치면 뇌를 발달시키는 데 도움 된다’는 말만 믿고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그렇게 3살에 처음 피아노를 접한 뒤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다.
12살이 되던 해 유럽 최고 명문이라는 파리 국립음악원을 가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프랑스로 떠났다. 생상스, 드뷔시 같은 전설적인 음악가들을 배출한 학교였다. 첫 학교로 콤피엔느 음악원에 들어가 5개월 만에 1등으로 졸업했다. 그 후 루앙 국립음악원을 3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파리 국립음악원에 최연소로 입학해 최우수로 졸업했다.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24살에 클래식 명가 EMI에서 데뷔 음반으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집을 냈다. 그리고 ‘한국인 최초 빌보드 클래식 종합 순위 1위’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 어렸을 때 홀로 유학 가서 힘들지 않았나?
“평생 고생할 것을 10대 때 다 몰아서 했죠(웃음). 1999년 당시만 해도 학교에는 동양인이 별로 없어서 인종차별이 심했어요. 언어도 통하지 않았던 제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건 음악 덕분이었어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음악이 통역사이자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됐어요.”
: 16살에 처음 명상을 접했다고 들었다.
“사실 첫 명상은 유학 초기부터였어요. 6개월 동안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강제로 침묵 명상을 해야 했거든요(웃음). 본격적인 명상 수행을 한 건 16살이 맞아요. 파리 국립음악원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법륜 스님의 수련회에 참석했어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 정신과 마음을 확실하게 세우고 싶었거든요. 수련회는 법륜 스님의 제자인 유수 스님이 지도했는데 그곳에서 그동안 갈급했던 ‘무언가’를 채웠어요.”
: 무엇이 그리 갈급했길래.
“거기에서 명상하며 오롯이 ‘나는 누구인가’란 본질 탐구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내 안에서 꿈틀대는 분노, 고통, 슬픔, 상처의 각 감정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거든요. 평소 어머니는 ‘천하의 양귀비가 제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늙으면 다 소용이 없다’고 자주 말했어요. 그래서 돈과 명예, 외면의 아름다움 모두 일시적이고 덧없는 거라고 어렸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죠. 불교에 귀의하면 저의 오랜 염원인 ‘절대적인 완전함’, 즉 저의 진정한 본질로 데려다줄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그래서 출가를 결심했어요. ‘네가 행복해지는 길이 그 길이라면 응원한다’며 어머니도 허락했지만, 스님이 만류하셨죠(웃음).”
: 스님이 어떻게 설득했길래 포기한 건가?
“음악가로도 얼마든지 세상에 공헌할 수 있다고요. 훗날 저의 멘토이신 서대산인 성담 스님도 이런 말을 했어요. ‘부처행을 하는 자가 부처님이니 지금 즉시 각자 자리에서 부처행을 하라.’ ‘절대적인 완전함’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것을 삶과 음악으로 표현하라는 거죠. 예전엔 산꼭대기에 있어야만 도를 닦고 본질을 추구하는지 알았는데 피아노를 계속 치다 보니까 그 말이 맞더라고요.”
| 눈꽃송이처럼 존재 자체가 유일무이한
피아니스트 임현정에게 피아노 연주는 ‘침묵의 소리’다. 작곡가와 연주자 그리고 청중과 음악으로 하나가 되면 그땐 말이 필요 없는 ‘침묵의 소리’가 찾아온다. 그래서 임 피아니스트에게 최고의 명상은 무대 위에서의 피아노 연주다.
: 무대 위에서 연주하며 명상한다는 게 어떤 건가?
“연주할 때는 악보에만 얽매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서 자유로운 경지까지 가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땐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면서 시공간을 초월한 무아지경의 상태가 돼요. 그 상태에서도 알아차림이 있으면 그걸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게 돼죠. 마치 제가 배우인 동시에 영화감독이 되는 거예요. 연주하는 나를 지휘하는 또 다른 내가 있는 것. 그건 굉장한 자유죠. 내가 나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그걸 예술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거니까요.”
: 내가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민가?
“진정한 나의 본질인 ‘참나’로 산다는 거죠. 알아차리는 정체(正體)가 참나예요. 에고와는 다른 거죠. 에고는 물방울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바다에서 작은 물방울 하나가 밖으로 나와서 ‘내가 잘났어’, ‘내가 너보다 더 나아야 해’ 그러다가 나를 내려놓고 바다로 뛰어들었더니 바다(본질)가 돼요. 소아(小我)에서 대아(大我), 즉 참나가 되는 거죠.”
: 예술가가 에고를 버리면 자칫 개성이 없어지는 건 아닌가?
“‘나(연주자)를 버리고 작곡가를 빛낼 것인가 아니면 작곡가를 버리고 나 자신을 드러낼 것인가’는 클래식 음악 연주가들의 오랜 논제예요. 하지만 무엇 하나 버리지 않아도 돼요. 작곡가의 음악에 깊이 빠져들고 탐구하다 보면 그 사람의 본질과 만나게 돼요. 연주자의 진정성이 담긴 해석(본질)이 작곡가의 본질과 만나면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죠. 똑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표현이 달라요. 그게 바로 개성이고요. 하늘의 눈꽃송이 결정체는 똑같은 게 단 하나도 없어요. 나는 존재 그 자체로 이미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 명상한 뒤 삶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비유를 하나 해 볼게요. 쓰나미로 파도가 일면, 그 파도와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서핑하며 즐기는 거예요. 파도는 파도일 뿐이고 나의 깊은 본질은 바다예요. 다만 감정이 일어나는 게 파도가 된 것뿐이죠. 명상하면 수면 위 파도만 보이는 게 아니라, 저 깊은 수면 아래를 포함한 바다 전체가 느껴져요. 나의 본래 자리는 이 깊고 넓은 바다라는 걸 인지한 상태에서 파도를 즐기게 되는 거죠. 파도가 일어나면 ‘파도가 일어나는구나’하고 서핑하고, 다시 잠잠해지면 멍때리고요(웃음). 알아차림이 중심에 잘 잡혀있으면 그 어떤 것에도 노예가 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돼요.”
: 인상적인 비유다. 인생을 서핑하는 피아니스트의 앞으로 계획은 뭔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사실 사명감으로 생각하는 게 하나 있어요. 한국에는 콩쿠르 입상의 압박으로 고통받는 입시생, 전공생들이 너무 많아요. 예술은 스포츠처럼 경쟁하는 게 아니잖아요.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경쟁하는 걸 한 번 상상해보세요…. 저는 콩쿠르에 입상하지 않고 피아니스트가 됐어요. 자신만의 유일무이함으로 길을 개척해 가는 게 가능하단 걸 알려주고 싶어요. 불행을 초래하는 이 경쟁 제도를 상생하는 제도로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