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목욕재계와 성스러운 한 끼
| 고행을 포기하다
죽음 직전까지 가는 고행 끝에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아니야, 아니야! 고행은 아니야! 이 세상 누구도 나보다 더 지독한 고행을 한 이는 없을진대, 고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 더는 고행에 집착할 수는 없어. 분명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는 길이 있을 거야.’
싯다르타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쇠약해졌지만 정신은 오히려 명료해졌다. 그때 싯다르타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어린 시절 잠부나무 아래서 선정에 들었던 경험이었다.
‘그렇지.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기운을 차려야 해.’
싯다르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기 때문에 마치 자신의 그림자가 일어서는 것 같았다. 마치 몸에 바윗덩이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지푸라기처럼 야윈 몸을 바위처럼 무겁게 이끌고 일어선 싯다르타는 이제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시원한 강물 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그러자 다섯 비구가 수군거렸다.
“아무래도 싯다르타가 고행을 포기한 것 같아. 하늘도 부술 것 같은 기개가 어찌 저리 한순간에 무너진단 말인가. 싯다르타는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없을 것 같네.”
“그래도 조금만 더 지켜보세. 무슨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니.”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다섯 비구는 결국 그곳을 떠나버렸다.
싯다르타는 물속에서 조용히 하늘을 보았다. 한없는 평화가 하늘에서 강물로 들어오더니 이내 마음속으로 찾아왔다.
‘그래, 좀 알 것도 같군. 극단적인 고행도 아니고 극단적인 쾌락도 아닌 곳에 길이 있는 것 같아.’
결과적으로 볼 때 싯다르타의 목욕은 깨달음을 위한 중요한 의식이었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중요한 일을 앞두고, 특히 종교적인 의식을 앞두고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지 않던가.
싯다르타는 다시 기운을 차려 수행하기 위해서는 뭘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걸식을 나서기 위해 분소의(糞掃衣)를 주워서 깨끗이 빤 후 몸에 걸쳤다.
|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직전 먹은 ‘성스러운 한 끼’에 대한 묘사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팔리어 문헌을 토대로 정리한 밍군 사야도의 『대불전경』을 참고해본다.
싯다르타는 우루웰라 숲을 벗어나 반얀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동쪽을 향해 앉았다. 동쪽 하늘이 점점 붉어지면서 햇살이 나무 꼭대기서부터 천천히 내려와 성자의 몸 위로 쏟아지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그렇게 아름다움의 극치를 연출하며 싯다르타는 걸식하러 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아름답고 착하고 복 많은 여인 수자타가 붓다의 생애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온다. 수자타는 우루웰라의 세나 마을에 사는 부유한 장자 세나니의 딸이었다. 그녀는 싯다르타가 의지해 앉아 있는 바로 그 반얀나무를 섬기고 있었다. 그녀는 몇 년 전 반얀나무를 향해 기도를 올렸다.
“반얀나무 신이시여! 제가 훌륭한 가문으로 시집가게 되면 해마다 당신께 귀한 유미죽을 바치겠나이다.”
그 기도의 가피인지 그녀는 훌륭한 가문으로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게 됐다. 그 보답으로 그녀는 매년 특별한 날을 기해 반얀나무 신에게 유미죽을 공양했다. 싯다르타가 앉아 있던 바로 그날은 수자타가 반얀나무 신에게 유미죽을 바치기로 한 날이었다.
수자타는 특이한 방식으로 오늘의 공양을 준비해왔다. 먼저 젖소 1,000마리에게 감초나무 목장 풀을 뜯어 먹게 했다. 그리고 그 젖소들에게서 짠 우유를 다른 500마리에게 먹였다. 그 500마리에게서 짠 우유를 다시 250마리에게 먹였다. 250마리에게서 짠 우유를 125마리에게 먹였다. 125마리에게서 짠 우유를 다른 64마리에게 먹였다. 64마리에게서 짠 우유를 32마리에게 먹였다. 32마리에게서 짠 우유를 16마리에게 먹였다. 16마리에게서 짠 우유를 다른 8마리에게 먹였다. 그녀는 마지막 8마리의 젖소로부터 우유를 짜서 죽을 끓이기로 했다.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암소 젖 밑에 그릇을 대자 손으로 젖을 짜지 않았는데도 우유가 시원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렇게 막 생산된 신선한 우유를 솥에 옮겨 따른 후에 쌀을 넣었다. 아궁이에 불이 저절로 지펴졌다. 우유가 오른쪽으로 빙빙 돌면서 엄청난 거품이 생겨났지만, 한 방울도 솥 밖으로 흐르지 않았다. 이런 기적들에는 모두 천신들의 힘이 작용했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는 양산으로 우유 끓이는 곳에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신들의 왕 인드라는 불을 지펴서 적당하게 타오르게 했다. 천신들이 온 우주에서 온갖 영양소를 모은 후 끓는 유미죽 속에 넣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을 경험한 수자타는 노비 푼나를 불렀다.
“푼나야, 오늘 반얀나무 신이 나의 공양을 몹시도 기다리는가 보다. 유미죽을 끓이는 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연속해서 일어나는구나. 너는 먼저 가서 반얀나무 주위를 깨끗이 청소해놓고 오너라.”
반얀나무 밑으로 간 푼나는 깜짝 놀랐다. 반얀나무 아래에 성스럽기 그지없는 성자가 앉아 있었는데, 황금빛 광채가 그의 주위를 환히 밝히고 있었다. ‘반얀나무 신께서 나무에서 내려오셨는가 보다.’ 그녀는 성자에게 예를 올리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 수자타에게 알렸다. 그 말을 듣고 수자타는 크게 기뻐하며 푼나를 딸로 삼겠다고 말했다.
수자타는 귀한 황금그릇에 유미죽을 담아 올리기로 결심했다. 솥을 들어 올리자 유미죽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온통 황금그릇 속으로 들어갔다. 수자타는 유미죽으로 가득 찬 황금그릇을 황금 뚜껑으로 덮고 흰 보자기로 묶은 후 머리에 이고 반얀나무로 향했다.
수자타는 성자의 아름다운 모습에 큰절을 올린 후 가까이 다가가 황금그릇을 열기 전 황금단지에 담아온 물을 따랐다. 싯다르타는 옆에 놓아둔 발우가 없어져 오른손을 내밀어 물을 받았다. 발우가 없어진 것은 싯다르타가 황금발우를 받을 수 있도록 천신들이 미리 조치한 까닭이었다.
이윽고 수자타는 황금그릇을 싯다르타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성자시여, 저는 이 유미죽을 황금발우와 함께 당신께 공양하려 합니다.”
수자타는 유미죽을 황금그릇과 함께 싯다르타에게 바치고는 아무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싯다르타는 유미죽을 49등분으로 나누어 깨끗하게 공양했다. ‘붓다께서 성도한 후 49일 동안 선정에 들었다고 하는데, 그 49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에 해답이 있다. 천신들이 온갖 영양소를 유미죽 속에 넣었기 때문에, 붓다는 그 유미죽 한 그릇으로 49일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 황금발우가 물 위를 거슬러 올라가다
싯다르타는 붓다를 이룰 때가 됐다는 확신이 섰다. 그는 황금발우를 든 채 생각했다.
‘오늘 내가 붓다를 이룬다면 이 황금발우는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것이며, 만약 붓다를 이루지 못한다면 물의 흐름을 따라 아래로 흘러갈 것이다.’
싯다르타는 네란자라 강에 황금발우를 띄웠다. 그러자 황금발우는 강 한가운데로 가더니 그곳에서 물의 흐름을 거슬러 위를 향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큰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큰 소용돌이 속에서 황금발우는 깔라 용왕의 궁전에 이르렀고, 다른 황금발우 세 개와 부딪혀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내더니, 그 아래에 놓였다. 그 세 개의 황금발우는 과거의 붓다인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사빠가 성불하던 날 성스러운 끼니를 먹었던 그릇들이었다.
용왕은 황금발우가 맑은 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며 한마디 했다.
“어제 부처님 한 분이 출현하시더니, 오늘 또 다른 부처님이 출현하시는구나.”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긴 세월이 용왕에게는 하루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붓다가 깨닫기 직전의 신화를 들으며 생각해본다. 수행하기 전 ‘오늘의 수행을 통해 반드시 견성하겠다’, ‘오늘의 수행을 통해 선정에 들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꼭 목욕재계해야겠다고. 기도를 꼭 성취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합격을 위해 공부할 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승리를 위해 경기에 임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날 아침에는 성스러운 한 끼를 먹자. 이 음식에 얼마나 많은 이의 노고가 담겨 있는지 생각하면서, 이 성스러운 한 끼에 수많은 사람이 세상 온갖 영양소를 넣어주었음에 감사하면서 공양하자. 말 그대로 그것은 공양(供養)이다. 나의 수행을 위해, 기도를 위해, 합격을 위해, 승리를 위해 애쓰는 나의 몸과 마음을 위한 공양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목욕재계로 청정히 하고 공양으로 튼튼히 해준다면 우리는 견성할 것이며, 선정에 들 것이며, 기도 성취할 것이며, 시험에 합격할 것이며, 경기에서 승리할 것이다.
동명 스님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지홍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구족계를 받았다.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을 맡고 있다. 출가전 펴낸 책으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