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명 ‘내귀에 도청장치’처럼 마음 소리에 집중”
명상 홀릭 | 명상하는 로커 이혁(이진표)
록밴드 ‘내귀에 도청장치’의 보컬 이혁(이진표)을 만난 곳은 뜻밖에도 경기 양평의 한 물리치료 병원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밴드들과 겨루는 공중파 경연프로그램 ‘탑밴드’에 출연했고,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을 맞는 록밴드 보컬이 이런 곳에 있다는 게 다소 의아했다.
이혁은 한창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통해 록 음악을 처음 접했다. 거침없는 사운드를 듣는 순간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렸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저항과 자유의 정신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록은 대중성보다는 마니아적 성격이 강한 음악 장르다. 좋아하는 음악을 평생 하려면 일정한 직업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택한 직업이 물리치료사였다. 비교적 퇴근 시간이 일정하다는 게 선택의 이유였다.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한 이후 앨범 활동을 하느라 1년 정도를 쉬었던 때 빼고는 꾸준히 파트타이머로 일해왔다. 정규직으로 일 한지는 6년 정도 됐다.
사진. 유동영
: 비주얼 록밴드와 물리치료사, 언뜻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순수예술 혹은 비상업적인 음악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는 소득이 있는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게 좋습니다. 더구나 저는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편이라 규칙적인 생활이 없으면 쉽게 게을러지기도 하고요. 일을 쉴 땐 곡 작업을 오히려 더 안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다만 적당히 일해야죠. 돈의 노예가 돼버리면 정말 좋아하던 것도 힘들어지면서 포기하게 돼버리거든요. 또 물리치료사는 인체의 구조를 공부하는 학문이라 명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 명상은 언제 처음 시작하게 됐나?
“고등학생 때 가야금 명인 황병기와 현대무용가 홍신자 선생님의 <미궁>이라는 파격적인 공연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당시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꽤나 회자 됐던 공연이었죠. 마치 접신한 듯 절규하며 노래하는 홍신자 선생님의 모습에서 영적이면서도 거대한 무언가를 느꼈어요. ‘아 이렇게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하고 큰 충격을 받았죠. 진짜 음악은 이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 홍신자 선생님 공연이 계기가 됐다는 건가?
“본격적으로 명상 공부를 시작한 건 홍신자 선생님의 저서 『자유를 위한 변명』(정신세계사)을 읽고 난 뒤부터예요. 뭔가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달까.”
| 명상하는 로커
<미궁>은 그의 음악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해줬다. 그는 기술과 이론만 난무한 음악은 껍데기라고 생각했다. 음악적 테크닉은 내면의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 중요한 건 음악이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
명상과 노래의 연관성을 언급한 홍신자의 인터뷰를 보고 명상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홍신자가 영향을 받은 오쇼 라즈니쉬의 저서를 비롯해 많은 명상 관련 책들을 찾아 탐독했다.
: 명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명상은 자신을 관찰하고 자각하는 과정이에요. 명상을 통해 ‘나는 누구이며, 세상은 왜 만들어졌나’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며 나를 점점 더 알아가게 되죠. 명상하면 할수록 우주와 나는 하나로 연결돼 있으며 모든 만물 역시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걸 느끼게 돼요.”
: 음악적 영감을 얻는 데 명상이 도움 되는 편인가?
“물론이죠. 우리는 원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를 다 느낄 수 있어요. 간과하며 살아왔을 뿐이죠. 마치 그림자를 인식 못 하고 사는 것처럼요. 명상으로 뇌를 더 깨어있게 훈련하다 보니까, 감각을 잘 느끼게 되고 음악 듣는 귀도 좀 더 열렸어요. 자기 자신과 우주와 타인을 점점 알아가니까 음악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주제도 훨씬 다양해졌고요. 무대에 서기 전 명상하면 공연에 집중도 잘 돼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관객과 멤버들과의 에너지 교류(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게 이뤄지고요.”
: 명상으로 자신의 내면과 우주를 탐구한다는 게 ‘자신의 내면 소리를 듣는다’는 밴드 이름의 뜻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2010년에 발매한 4집 <Observation(관찰)>이 특히 명상 도움을 많이 받은 앨범이라고 들었다.
“4집 앨범을 더 깊이 있게 만들기 위해 멤버들과 같이 위빠사나 명상원에서 2주 정도 수련했어요. 수련이 끝난 뒤 내 안의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나쁜 거든 좋은 거든 모조리 끄집어내서 곡에 반영했어요. 이 과정에서 저 자신이 치유되는 걸 느꼈죠. 명상하다 보면 가슴의 뭔가가 복받쳐 올라오듯 울고 웃고 하잖아요. 그게 내면의 ‘상카라(行, Saṅkhāra)’와 에고를 쏟아내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걸 앨범에 녹여낸 거죠. 그래서인지 곡들이 평온하기보다는 불안정하고 그로테스크(기이하고 환상적인)한 느낌이 묻어나요.”
| 항구에 정박하지 않는 배
: 2014년부터 솔로프로젝트 브릴리언트 블루로 새로운 음악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내귀에 도청장치가 메탈록 사운드에 멜로디를 입혀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음악 스타일이라면, 브릴리언트 블루는 컴퓨터 전자 음악에 아날로그적인 전통 악기 소리를 결합해 만든 일렉트로닉 계열의 음악이에요. 일부러 파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주파 발전기나 한국,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토속 악기들을 활용해요. 언어와 멜로디보다는 파장을 표현하는 데 주목했죠. 명상에서도 에너지와 파장이 중요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브릴리언트 블루의 음악은 내귀에 도청장치보다 더 명상적이에요.”
: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명상이든 음악이든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험하는 게 인상적이다.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홍신자 선생님의 책에서 나온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으라고 만든 게 아니다’라는 구절을 좋아해요. 틀에 얽매이지 말라는 의미에서 굉장히 록적인 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음악을 통해 항상 표현하고자 하는 큰 주제는 명상과 깨달음이에요. 내면의 여러 인격, 몸의 기운 등을 물질세계와 연결해 음악적으로 더 잘 표현해내고 싶어요. 물론 물리치료 일도 계속할 거고요. 일, 음악, 명상 모두 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진심과 정성을 다해서 임할 거예요.”